온전한 나로서 관계를 다시 보다.
혼자 길을 걷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차를 마신다. 이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를 바랐다. 여러 관계의 역할을 잠시 멈추고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아내도 엄마도 딸이나 며느리도 다 잠시 꺼두고 나를 켜본다. 예상대로 혼자 예전 추억의 장소를 돌아보는 일은 예전의 나를 만나고 또 예전과 다른 지금의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을 고스란히 음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있으니 보이는 가족들이 있다. 젊은 연인들을 길에서 보면 남편과 둘이 가벼이 걸으며 연애할 때가 생각나서 설레기도 하고,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서는 아이들 어릴 적이 생각나 그리웠다가, 그리고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에 부모님 생각으로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정작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가족들 챙기느라 지나가는 타인에게는 눈길을 주기 어려웠다. 그런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움직이니 가족들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까지도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3일차 새 아침. 벌써 여행의 반이상이 지나간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행군을 시작한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지나 덴엔토시선의 출구 부근부터 오늘의 여행이 시작이다. 학교 가는 길. 참 많은 것이 그대로이고 또 많이 바뀌었다. 커다란 빌딩 1층. 주유소가 있던 자리였는데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공사 중이다. 이곳도 주유소의 형태가 대략 남아있어 기억이 났는데 또 다음에 와보면 다른 것으로 변해 있겠지. 없던 공원이 생기고, 오랫동안 있었던 건물을 허물고 있다. 공간도 인간도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하고, 새로 생기고 또 없어짐은 같은지도 모르겠다. 공원이 생기고 건물이 없어지듯 나에겐 남편과 아이들이 생기고, 청춘은 어스름해졌다.
길을 걸으면서 이어폰을 끼고 그 시절 듣던 노래들을 플레이한다.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25년 전으로 이동한 듯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가장 많이 듣던 Spitz 다음으로 Dreams Come True라는 귀여운 그룹의 '미래예상도'라는 노래를 듣는데 아이들이 생각났다. 이 노래는 두 연인이 오랜 교제에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잔잔하면서도 예쁘게 담은 노래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오토바이로 집까지 데려다주면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돌아가는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배웅한다. 남자친구는 모퉁이를 돌기전에 브레이크 램프를 5번 깜박이면서 "아이시테루(사랑해)"라는 사인을 보낸다.
이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손을 잡고 손가락으로 아이 손등을 세 번 문지르거나 아이 손가락을 세 번 쥐었다 펴면 그건 엄마가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해주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자려고 누워서도 손을 잡으면 언제든 세 번씩 톡톡톡 두드리거나, 꾹꾹 꾹 세 번을 누르거나, 쓱쓱쓱 세 번을 문지르며 사랑한단 표현을 해왔다. 내가 하면 아이들도 하고 가끔은 아이들이 먼저 하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추억이다.(둘째와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사인이 있다는 것, 우리만의 언어로 마음을 나누는 것은 정말 충만한 행복이다. 사랑의 추억은 연인들만의 소유물이 아닌가 보다. 연인들의 사랑노래에도 아이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노래를 들으며 금세 도착한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나무들이 더 자란 듯 느껴졌다. 실제로 그럴 테다. 25년 만이니. 높은 녹음 위로 맑은 하늘은 변함없어 보였다. 수업 듣던 건물에 들어가 보고 캠퍼스 안을 걷다 보니 벤치에 앉아 삼삼오오 이야기 나누고 공부를 하고 있는 청춘들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성숙한 척해도 미숙하고, 야무진 척 해도 어설펐으며, 겸손한 척해도 오만했던 젊은 날들. 때론 그때가 한없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젊으니깐 미숙했고 젊으니까 오만했던 것이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생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우 부조화스러운 인간이었으려나. 부끄러운 내 청춘에 이리저리 변명을 덮어본다.
종이 울리자 갑자기 양쪽 건물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삽시간에 20대 초반에 둘러싸인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 이방인의 느낌은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자식뻘 되는 군중사이에 홀로 낀 중년이어서 느끼는 이질감과 어색함이었던 듯하다. 아마 한국에서 모교를 방문했더라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듯하다. 스물다섯도 안되었던 그때 스물다섯 해 후의 내가 청춘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깐. 40대 후반인 지금은 40년 후나 5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종종 상상해보기도 하는데 20대 초반에는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가 겨우 20대 후반쯤이나 결혼을 언제 하게 될까 정도였던 거 같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청춘들도 그러할 테다. 엄마 친구로 보일 내가 있기에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본다.
혼자 일본여행을 간다고 하자 친정아빠가 갑자기 "동경에 있는 도서관인지 박물관인지 입구가 대나무 숲도 있고 바닥은 돌이 깔려 있고 산책길도 있었는데 거기가 어딜까?" 하신다. 아니 그걸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도쿄라는 것 외에는 어디쯤 인지도 모르시는데 그 수많은 박물관과 도서관 미술관을 다 검색해야 하나 막막했다. 그래도 아빠가 알고 싶어 하시니 찾고 싶어 졌고 나도 왠지 가보고 싶어졌다. 그간 난 챗GPT를 거의 쓰지 않았지만 이건 챗지피티가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의 질문을 그대로 복사해 물었다. 답이 나오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네즈미술관. 찾고 보니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학교수업 끝나고 그렇게 돌아다녀도 그 미술관을 발견하지는 못했었나 보다.
20대 초반이 바글거리는 학교에서 나와 구글맵을 따라 네즈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품을 볼 줄 모르는 나는 미술품보다 그 커다란 규모에 너무도 놀랐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담동에 비유되는 아오야마에 이렇게 넓은 땅에 이렇게 멋진 미술관을 지은 분은 누굴까... 거기 땅값도 모르는 주제에 이 땅이 얼마쯤 할까 머리를 굴리는 중년. 순간 현타가 왔다. 청춘이 아름다웠던 건 이런 계산은 하지 않았기, 아니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책로를 걷다가 다리가 아파 검색하다 보니 네즈 미술관을 건축한 건축가도 구마 켄고였다. 네즈 미술관 다음 행선지도 구마 켄고가 지었다는 하루키 도서관이었으니 쿠마 켄고를 따라다닌 하루였다.
하루키는 나에게 나이차이 좀 나는 오빠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나의 아버지랑 동갑인걸 알고 심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 그런가? 우리 아빠세대인 남자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듯 모를 듯한 청춘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들, 어두우면서도 찝찝한 느낌들이 그땐 왠지 좋았다. 뭔가 있어 보였달까. 허세에 가까운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는 너무 난해했기에, 하루키를 읽으며 '읽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다시 여행을 하려고 노르웨이의 숲을 꺼내 들었는데 도무지 그 불안정한 감정선을 타기가 힘들었다. 찜찜하다 못해 답답했달까. 10년 20년 뒤도 상상하지 못할 20대였으니 하루키에 그토록 공감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쯤부터 취업을 할 때까지도 꾸준히 읽었던 하루키였기에 하루키 도서관만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네즈미술관에서 나와 오모테산도 역에서 와세다 대학으로 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친구이자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쿠마 겐고가 지었다는 건물. 한국에서 검색할 때부터 기대가 컸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규모는 작은 느낌이었지만 들어가는 입구부터 재즈를 좋아하는 하루키의 리듬을 표현한듯한 조형물. 그리고 고급 원목으로 된 가구들. 분위기는 따스하고 흐르는 음악은 경쾌했다.
도서관 입구의 하루키의 글을 보고 내가 허세로만 이 작가를 좋아하진 않았었구나. 기분이 좋아졌다.
"숨을 쉬는 것처럼."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스스로가 공부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조금 지나서부터 '나는 사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하고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본래, 호흡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우리들은 숨을 쉬는 것과 똑같이 매일매일 많은 것을 자연스레 당연하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 소박한 도서관이 학교나 국경의 벽을 자유롭게 빠져나와 당신에게 '숨쉬기 좋은 배움의 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나도 스스로 공부를, 아니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학생 때는 때때로 평가와 과제의 무게로 공부에 재능이 없나 생각했던 때가 떠오르면서 이리 공감 가는 글을 이리 간결하고도 멋지게 쓰다니 하루키를 좋아했던 것이 분명 허세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모두에게 여행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여행이 설레는 이유는 색다른 나를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히 낯선 장소에 가서 낯선 사람들 속에 낯선 풍경을 보고 낯선 냄새를 맡고 낯선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런 낯선 환경에 있는 낯선 나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 여행은 낯설지 않은 곳에서 많이 보냈음에도 그 어떤 낯선 곳보다 설레었다. 공간만 먼 곳으로 온 것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나를 만났기 때문일 테다. 이 세상에 어딘가 청춘의 추억을 남기고 온 모든 사람에게 이런 여행을 권하고 싶다. 혼자였기에 공간과 시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가 가능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각들이 나를 더 잘 알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