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초창기, D사 다닐 무렵, 나는 그 회사에서 은퇴하는 걸 꿈꿨다. 급여, 복지, 분위기 모두 내 마음에 쏙 들었고, 이 정도 회사라면 30년도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꿈은 회사가 우리 부서를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고 이직했다. 이번에는 회사가 내가 맡고 있던 비즈니스를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접었다. 다른 자리도 있었으나 또 한 번 배신감을 느끼고 다시 이직했다. 이쯤 되니 내 사업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와 나를 한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확실해 진건 스타트업에 와서다. 스타트업에서는 내 사업처럼, 즉 회사와 나를 한 운명체로 인식하고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안정적인 회사를 마다하고 이직했지만, 초기 멤버 혹은 창업 멤버가 아니었기에 나는 다른 회사와 다를 게 없는 일개 직원일 뿐이었다.
결국 내 것을 해야 한다는 게 확실해졌다. 내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 의지나 결정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된다. 한두 번은 그려려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번 겪고 나니 더 이상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내가 창업하려는 이유 첫 번째다. 나는 내 의지대로 내 운명을 결정하고 싶다. 물론 창업을 한다고, 모든 걸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동 창업자가 있으니 ‘지분만큼’ 내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분이 없거나 지분이 아주 미미한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비하면 회사에 대한 내 권한은 상상을 초월하게 크다. (물론 책임도 크다.)
두 번째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상사 혹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 대한 의전을 혐오한다. 정말이지 너무 하기 싫다. 바로 전 스타트업에서는 이렇게 극혐 하는 이 의전을 요구하는 상사 밑에서 일했다. 의전의 본질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배려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을 벗어나는 형식을 요구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윗사람에 대한 보고도 싫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내 방식대로 하기 위해 윗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내가 옳다고 판단하고 일을 밀어붙이고 내가 결과에 책임을 진다고 한들 회사에서는 쉽게 내 방식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시간이다. 내 시간을 내가 알아서 쓸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지고 싶어서다. 얼마 전 홀로 푸껫에 가 내가 얼마나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해도 좋은지 실험해 봤다. 혼자, 그리고 특별히 할 일이 없음에도 하루가 알차게 흘러갔다. 일어나 운동하고, 아침을 먹고, 독서를 하고,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점심과 저녁을 챙겨 먹고, 산책을 하는 등, 자유로운 일상을 즐겼다. 이렇게 며칠 살아보니 창업을 해 ‘누가 시키는 일이 없어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의지대로 내 시간을 분배해서 하고 싶었다.
물론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창업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이건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아니다. ‘자유’가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사람마다 누리고자 하는 자유의 범위는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재량권 안에서 자유를 누리려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나처럼 재량권을 스스로에게 주고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나라는 걸 인생 50년 살아보고 깨달았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고들 한다. 다소 두렵게 느껴지는 문장인데, 그 대가가 어떤 것들 일지 앞으로 경험해 가보려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궁금할 뿐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