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아줌마에게 문자가 왔다. 이맘때면 늘 달력 사진 스타일로 된 이미지 파일로 새해 인사가 오곤 했었는데 이번엔 텍스트로 왔다. 일을 그만두신다는 내용이었다. 필요하기도 했고 보험 회사에 다니는 친구 녀석의 영업소장 시절 실적 쌓기 겸 가입했던 실비 보험이었다. 가입 후, 크게 아프거나 다친 적이 없어 보험금 신청을 한 적은 손에 꼽기에 친분은 없지만, 단체 문자이긴 해도 분기별로 안부 문자와 간단한 살림 팁 등을 고객 관리 차원에서 십여 년 간 보내주셨던 분인데 그분의 퇴직 사유가 ‘손주 돌봄'이라는 문구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달에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경단녀’라 불리는 경력 단절 여성과 싱글맘을 우대하는 단시간 근로 직원 채용이 있었다. 기존 직원들의 업무를 서포트하여 효율을 높이고 경력 단절 여성의 재고용을 통한 사회공익 실현 차원에서 신설한 근무 형태로 오후 한 시에 출근해 6시까지 단시간 근무지만, 보험과 연차 모두 정규직과 동일해 오전에 등교와 집안일을 챙길 수 있어 육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로 지내는 이들에게 호응이 높아 대기업도 아닌 작은 세무회계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채용 공고 하루 만에 입사 지원이 대거 몰렸고, 현재 두 명의 직원이 해당 근무 형태로 재직 중이다. 그런데 올해는 입사 지원서가 한자리 숫자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류 합격을 통보했던 이의 너무도 좋아했던 음성이 채 잊히기도 전에 죄송하다 울먹이며 면접을 포기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원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력서에 붙은 명함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이력이 전부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마음이 먹먹했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습니다.
지원자의 나이는 삼십 대 후반. 가족란에 쓰인 자녀의 나이는 한창 손이 가는 8세와 6세였다. 서류 합격 통보에 5년 만에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기쁘다던 지원자. 그녀는 모 저축 은행과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10년간 근무 후, 둘째를 낳고 일과 육아의 양립이 힘에 부쳐 퇴직했다고 한다. 서류 합격 만으로도 뛸 듯이 좋아했던 지원자는 코로나가 2.5단계로 격상되며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가정 보육으로 면접을 포기해야 했고, 상황이 이러하니 좋은 취지로 시행했던 금번 달 채용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였다.
나라에서는 저출산과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재취업 방안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는데 왜 나날이 그래프는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일까. 출산 지원금을 좀 더 주고, 근로 촉진을 위한 프로그램과 강연을 만든다고 아이가 태어나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모두 알 터인데 말이다. 며칠 전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틀어주려다 우연히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를 보게 되었다. 올 한 해 최대 이슈였던 부동산 급등의 여파로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게 시선이 쏠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저출산과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관할하는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경력 단절을 막는 방안 중 하나로 "부부간 소득격차에 따라 세금 비율을 다르게 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던 과거 발언에 대해 질의를 받았다. 야당 의원의 경단녀 해결 방안을 세금 부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에 당장은 실효성이 없다고 선긋기를 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방안의 하나일 수 있다고 뜻을 굽히지는 않고 넘기며 이와 같이 발언을 이어갔다. "여전히 성차별적 구조가 남아있고 경력 단절 여성(경단녀), 최하위 출산율, 한부모·다문화 등 가족 다양화, 세대·집단 간 갈등, 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한 여성 돌봄 부담 가중, 2030 청년의 '3포', 청년 여성 자살률 급증 등의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다양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성인지 예산제도, 성별 영향평가 등 성주류화 제도를 내실 있게 개편하고 공공 및 민간 부문의 대표성을 제고하겠다"며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겠다"라고 말했다. 분명, 언급한 이슈 하나하나 지금 우리 사회가 문제로 꼽고 있는 것들이 맞다.
그런데 내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그 어디에도 도대체 어떻게 경력 단절 여성이 재 취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내용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일까. 엄마가 된 여성의 경력 단절 해소를 위해 우선적으로 논의될 사안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 시설과 교육 기관의 확충 그리고 기업의 탄력적인 근무 형태의 확대일 터인데 이는 또 교육부 관할이거나 고용 노동부 관할인 것인지.
우리나라의 사교육이 문제라 모두가 말하지만, 어쩌면 일하는 엄마들에겐 방과 후 학원차라도 태워 퇴근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니 문제가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