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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Mar 29. 2023

미국 초등학교 학부모 되기

실리콘밸리에서 두 달 살기

실리콘밸리 산타클라라(Santa Clara)에서 생활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서울에서라면 꿀잠을 자고 있을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밥과 스낵 도시락을 준비하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아이를 깨워 화장실에 밀어 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여행이라 여기면 길어도 제대로 배우고 살아보았노라 하기엔 짧은 시간인지라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익숙함과 편리함은 접어둔 채 떠나온 만큼 온전히 나와 아이에게만 집중하며 매일을 1박 2일 여행자처럼 부지런히 보내고 있다. 때로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온종일 누워있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지금의 이 경험이 아이가 살아갈 삶을 따듯이 데워줄 연료가 되어줄 것이라 믿으며 말이다.

 

오늘은 남은 한 달의 계획을 세우며 미국 산호세에서 초등학교 학부모로서 느낀 점과 미국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놓치지 않고 준비하면 좋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어보다 중요한 마음가짐

많은 엄마들이 미국 스쿨링이나 썸머 캠프를 준비하며 아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에만 걱정을 하는데 비영어권에서 온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언어의 문제보다는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새로운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제일 먼저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우리 아이 역시 한국에선 9시에 시작했던 유치원 수업이 이곳에선 7시 45분에 전체 조회를 하고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집에서 6시에 일어나야 한다. 산타클라라(Santa Clara)에 있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캠벨(campbell)에 있는 학교는 2시 40분에 정규 수업을 마치는데 애프터 수업을 신청하면 4시까지 학교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니 아이는 최소 7시간 가까이 낯선 환경에서 지내야 하기에 한국 유치원에서 살가운 선생님들과 같은 언어를 쓰는 친구들과만 지냈던 6세 아이에겐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작년 괌 썸머 캠프에 참여했던 한국 아이는 영어 유치원 2년 차라 일반 유치원을 다니며 쉬운 파닉스만 겨우 읽는 우리 아이의 영어 실력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 달이라는 캠프 기간 중 절반을 교실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하여 결국 절반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영어 실력은 없지만,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아이는 괌 캠프에서의 기억이 즐거웠는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어떠냐 물어보니 ‘어 그럼 새로운 친구들이 또 많이 생기겠네.’ 라며 좋아했다. 아이들의 성향이 같을 수 없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시기도 다르기에 미국으로 오기 전, 우선시해야 할 것은 아이에게 앞으로 바뀔 환경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과 너는 잘 지낼 수 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WE MAY ALL BE DIFFERENT FISH
BUT IN THIS SCHOOL WE SWIM TOGETHER.
벽에 붙여진 문구가 학교의 지향점을 말해주고 있다

콩 한쪽도 나눠 먹으면 안 돼

정에 죽고 정에 사는, 콩 한쪽도 나눠 먹는 한국인이지만, 미국 학교에선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 먹어선 안된다. 한국 유치원이나 놀이터에선 간식을 나눠 먹곤 했기에 이 부분이 우리 아이가 ‘왜?’ 냐고 물으며 가장 의아해했던 부분이었다. 아이들마다 땅콩, 계란, 복숭아 등 식품에 알러지를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학교에선 간식을 나눠 먹지 않는 것으로 지도하고 있다.

 

한 번의 기회도 없는 학폭 처분

학교 폭력은 한국에서도 민감하게 다루지만 미국 학교는 이를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 행위에 관한 한 선처가 없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 시 더는 해당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을 학생과 학부모 모두 인지하고 있다. 지난주, 우리 아이와 같은 테이블에 앉는 친구이자 아이에게 제일 먼저 같이 놀자고 다가왔던 A군이 장난으로 수업시간에 여러 번 툭툭 팔을 쳤다고 아이가 선생님께 말하니 바로 A군의 자리가 바뀌었고 학부모인 나에게 이메일로 한번 더 A군이 같은 행위를 할 경우 A군의 학부모를 소환해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진행하겠다는 담임 선생님의 즉각적인 메일이 왔다. A군이 악의를 갖고 했던 점이 아니어도 체격이 우리 아이에 비해 한참 왜소해도 담임 선생님은 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판단하셨다. 메일을 받고 처음엔 아이들끼리 장난친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이렇게 애초에 서로의 몸을 터치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니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학교를 다닙니다.

한국에서 미처 몰랐던, 실제로 와서 겪은 것 중 하나가 미국 초등학교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함께 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학부모가 참여하는 행사와 봉사활동이 많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이가 즐겁게 학교에 적응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이다. 하여 크리스천 스쿨답게 일요일마다 예배 후 학부모 모임이 열리는데 아이들은 다른 장소에서 주로 만들기

수업을 하며 보내고 학부모들은 커피와 다과를 나누며 한 주간 있었던 자녀와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갖는다. 같은 반 엄마 Ginny의 초대로 참석했던 나는 한 시간 반 정도의 대화 내용 중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였어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구태의연한 말이 첨단 산업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도 통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어가 부족하다 보니 상대방의 표정과 뉘앙스로 알아먹어야 했기에 눈을 맞추고 경청을 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입을 닫고 귀를 열으라는 말을 본의 아니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일요일엔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아이의 일상을 대화가 아닌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고 있는 게 섭섭하다는 내용이었다. 해결방안을 찾기보단 이곳에 모인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에 가까웠는데 두 달만 다니는 아이의 엄마인 나는 그들에게 뜨내기나 다름없을 텐데 이런 모임에 매주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등, 하교 시간에 아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고 아이가 옆 반 친구의 생일파티에도 초대받으며 학교 밖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만 있다면 내 MBTI가 'I'라 낯을 가리고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익숙해지기 전까지 주눅 들어 지낼 아이에게 먼저 웃어주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많아지는 게, 그래서 아이가 목청 높여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신나게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순간이 내가 아이에게 지금 해 줄 수 있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아이와 함께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매주 참여 중인 학부모 모임

미국 초등학교 등록 서류 꼼꼼히 챙기기

가고자 하는 지역의 학교가 정해졌다면 해당 학교에서 원하는 서류를 안내에 따라 준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영문 예방접종 기록과 TB검사 테스트라 불리는 결핵 피부반응 검사(tuberculin skin test)서 제출을 요구하는데 학교에 따라 영문 구강 검진 기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요구사항이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고 산호세 일부 학교의 경우 캘리포니아주 의사면허 소지자의 도장이 찍힌 서류만 인정하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외국인 학생의 경우 해당 국가에서 발급한 서류도 허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반드시 지원하는 학교에 이메일 문의를 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뿐 만 아니라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 영국 해외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처럼 예약 없이 병원을 방문해도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병원을 찾기 쉽지 않다. 더구나 한 번이라도 미국에서 소아과를 방문해 본다면 한국에서 받던 의료서비스와 보험 혜택이 얼마나 우수하고 신속하게 처리해 주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TB테스트를 진행하는 병원은 관할 보건소에 문의하면 안내해 준다. 참고로 이곳 산호세에선 TB테스트만 120~135$을 받는다. 그것도 예약 필수에 결과서는 10일 이후에나 받을 수 있고 한국에서 5만 원이면(병원마다 다를 수 있음) 받을 수 있는 영문 구강 검진 결과서는 200$~300$의 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반드시 학교에 사전 문의하여 한국 병원에서 발급한 서류도 가능한지 여부를 피드백을 받으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에 더해진 감정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미국으로 오기 한 달 전, 아이 유치원 친구 아빠가 계신 치과에 놀러 갔다 충치를 4개나 발견하고 부랴부랴 충치 치료를 출발 전 주까지 마치고 왔다. 특히 윗 쪽 어금니의 경우 신경 근처까지 썩어 그때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곳에서 고생스레 치과를 다녔을지 모를 일이다. 미국에선 마취비용도 모두 따로 추가 결재해야 하는데 웃음 가스 비용만 75$, 마취 주사는 200$정도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료 비용이 높다. 여행자 보험 중, 치과 치료가 커버 가능 한 보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되도록 한국에서 치료받고 오는 것이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편한 길이다.


리온치과 교정과 치과의원

비상약의 경우 다니는 소아과에 문의하면 항생제, 지사제, 해열제, 콧물 시럽 등 약의 보관 기한에 맞추어 처방해 준다. 의료비가 비싼 곳인 만큼 감기약을 비롯한 약들을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아이가 평소 복용했던 약을 준비해 가는 게 부작용에 대한 우려 없이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아울러 엄마의 비상약도 간과하지 말고 함께 처방받아 준비해 오는 걸 추천한다.


한국을 잠시 떠나오기까지

내 나름의 육아 철학으로 가르치겠노라 다짐하면서도 8 학군이라 불리는 강남에서 영어유치원을 안 보내는 나를 흔드는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에 내 아이만 뒤쳐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내년에 한국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수학 선행에 영어학원 레벨테스트 합격을 위한 새끼 학원 스케줄을 하나라도 더 잡으라는 주변 엄마들의 말을 흘려들은 건 아니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아이의 마지막 유년기를 단어 하나 더 암기시키는 것보단 행복한 경험을 채워 주기로 결론을 내리고 이곳으로 훌쩍 떠나왔다.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하는 이곳의 생활이 불편한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해졌다.


학교를 다니고 2주 정도는 목이 빠져라 엄마를 기다리는 것 같더니 언제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요즘엔 픽업시간에 딱 맞춰 가면 왜 이리 빨리 오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재는 누구누구라 인사를 시키는데 간단한 어휘지만 영어를 말하고 있었다. 한자로 제목이 쓰인 영어책으로 영어를 배웠던 97학번 엄마는 아들이 참 부럽다.

아이와 자주 가는 John D. Morga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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