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고 신입입니다
이십 대 초에는 언제 나이를 먹을까, 대학 졸업은 언제 하나 '아 이제 공부 그만하고 싶다'라는 넋두리를 했었다. 그런데 시간은 왜 이리 빠르게 가는지. 벌써 일을 한지 사 년이 조금 넘었다. 신입의 패기보다는 윗분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당연히 일을 익숙하게 해 내야 된다는 노련함이 뒷받침돼야 했다. 그래서 더 잘해 내야 된다는 압박감이 항상 나를 사로잡았다. 잠시 휴식기이자 공백기인 나는 또 이력서를 제출한다.
'이력서 제출이 완료되었습니다' 창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며 오늘도 지원 하나 했다 하고 팝업창을 닫는다. 글 한편을 마무리 지으며 티브이를 틀었다. 엠넷에서 퀸덤2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상큼하고 밝은 노래들을 좋아해서 걸그룹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좋아했던, 좋아하는 걸그룹 여자친구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여자친구다'라고 외쳤다. 여자친구는 멤버 세명의 비비지라는 이름으로 나와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MC의 멘트 중 '경력직 신입으로 다시 돌아온' 이란 음성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경연 프로그램이지만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서 보기 좋은 프로그램이라 나는 채널을 고정하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비비지는 '밤'과 '시간을 달려서'를 믹스해 새로운 감성의 무대를 펼쳤다. 세명의 멤버가 좀 더 몽환적인 느낌의 안무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노래 전문가, 가수 평론가도 아니기에 잘한다, 못한다, 아쉽다 등 이런 평가를 감히 내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무대나 공연 혹은 사람을 볼 때 주변의 분위기나 아우라를 본다. 시간을 달려서라는 노래를 할 때 인상 깊었던 것은 모래시계라는 오브제, 그리고 무대 엔딩에서 여자친구 데뷔 날짜와 비비지의 데뷔 날짜가 함께 교차되는 장면이었다. 이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뭉클함이 확 올라왔다.
시간을 달려서 이만큼 왔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대중들은 대부분은 느끼는 것이 비슷했다. 무대를 보고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는 옛 가수들의 퀸덤 2 시청 인증 영상(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이 SNS와 기사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시간을 달려서' 현재까지 무언가를 있게 해 준 힘은 무엇일까? 바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멤버 중 한 명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여자친구로 활동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나도 마찬가지다.
'비비디 바비디 부' ' 아브라 카타브라' '케세라세라' 한 때 잘 되기 위해 외쳤던 주문들이 떠오른다. 그저 미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 수 있다' '이루어진다'는 신념과 함께 읊조렸던 말속에는 큰 힘이 있다.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이다.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것, 공백기가 있어도 또 다른 새 출발을 내딛으면 된다.
시간은 평행선과 같아서 나와 함께 달리고 있지만 새로운 차원에 있는 것처럼 꿈꾸는 나를 위해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벚꽃이 만개했다 비가 내렸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벚꽃잎이 바닥에 떨어졌었다. 그러다 다시 해가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