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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27. 2022

배가 부르면 포근해진다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살이 십 키로는 넘게 찐 것 같다. 회사를 안 다니는 공백기에는 대게 식단 조절과 걷기를 병행하며 회사생활에서 찌운 살을 적당히 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건 영 반대가 됐다. 쉬니까 퍼지게 되고, 심심하니까 괜히 맥주를 마시게 되고, 그렇게 마신 알코올은 다시 살이 되어 붙고, 악순환이다.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 '먹는 건 줄여야지'라고 다짐을 해 놓고도 회사에서 제공되는 간식을 입에 물고 근무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왜 이렇게 무언가를 삼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뱃속에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무언가를 채워 넣어도 허전하냐고. 


  생각해보면 많은 날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배도 적당하게 불러야 노곤하고, 눕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던가. 나는 집에 오자마자 칼로리컷을 입 안에 한알 털어 넣는다. 지방이 분해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과 함께. 그러니까 '약간의 탄수화물은 먹어도 돼' 뇌가 내 머리 깊숙이 '먹으면 안 돼'에서 '먹어도 돼' 그리고 다시 '먹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건넨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나는 '먹고 눕는 게 제일 편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침대 시트에 양팔을 하늘로 뻗은 채로 눕는다. 세상 가장 편하다. 구름 위에 앉아본 적은 없지만 그 위에 떠 있는 기분 같기도 하다. 배가 부른 이 느낌은 마치 내 배에 포근한 배게를 갖다 댄 것만 같다. 잠이 안 오는 날은 생각에 생각,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면서 나를 쫓아다녔고, 무언가를 먹으면 금방 눈꺼풀이 감겼다. 나는 그동안 허기진 마음을 음식으로 대체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습관이라고 말했다. 배가 차야 잠이 오는 건 일종의 내가 보내는 신호 같은 거라고. 혹시 배가 고프지 않은데 배고프다고 느끼지는 않는지 되묻는다.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 나도 내 뇌 속으로 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배가 부르면 따뜻했고, 누군가가 날 안아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식을 넘기며 넘어갈 때마다 그날 메뉴들이 내 뱃속에 머물면서 '오늘은 꽤 괜찮은 날이었어'라며 위로하는 기분도 들었다. 나는 그동안 따뜻한, 이불 같은 이런 감정을 가슴 깊이 원했는지 모른다. 음식을 만드는 것 먹는 것 모든 일련의 과정 속에서 포근함을 느꼈던 건지도. 잠이 안 올 때 따뜻한 우유 한잔이 자장가처럼 토닥토닥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위로가 받고 싶은 날 나는 꾸역꾸역 집에 있는 반찬과 밥을 꺼내 먹는다. 밥은 햇반, 반찬은 얻어온 김치와 참치 통조림이다. 

  창밖에서는 어제 온 비 냄새가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전자레인지에 따끈하게 조리된 햇반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한 움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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