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품앗이
어릴 적 방학숙제는 내게 쌓아두었던 빨래를 한꺼번에 하는 일과 같았다. 방학숙제는 일기 쓰기 포스터는 물론이고 독후감, 만들기 등 주로 생각을 하고 표현하는 류의 것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포스터 그리기나 만들기 같은 미술 관련 과제는 질색했었다. 그리기나 색칠하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었고, 미적 감각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를 대고 반듯하게 포스터 글귀 틀을 잡고, 붓에 물감을 묻혀 일일이 색을 칠하다 보면 삐뚤빼뚤 흔들린 모양이 그대로 번졌다.
'아이코 어떻게 해' 나는 걱정의 탄식을 내뱉었다. 물감이 한 번에 쓱 발린 게 아니라 쥐라도 파먹은 거 마냥 붓의 기포가 사절지 위에 묻어났다.
그럴 때마다 내 그림을 수습해 준건 엄마였다. 나와 다르게 엄마는 손재주가 좋았다. 엄마는 망친 사절지 옆에 새로운 사절지를 두었다. 그리고 울퉁불퉁하게 칠한 포스터 문구와 밑그림을 눈대중으로 보며 말끔하게 다시 그렸다. 형광등 불빛이 방학숙제 중인 사절지를 향해 집중됐다.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가 칠하는 그림을 보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엄마는 새벽에 잠도 안 자고 밤을 새우며 내 그림을 완성했으니까. 나는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리던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아스라이 지나가던 새벽 공기가 엄마의 목덜미를 적시며 지나갔다. 엄마 덕분에 방학숙제를 완벽하게 마친 나는 엄마가 그려준 그림으로 포스터 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려?"
"엄마는 그리는 거 좋아해. 근데 배웠으면 더 잘했지."라고 말했었다. 조금만 더 배웠었다면. 엄마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엄마는 대학에 가고 싶어 방송통신대학과 보험회사를 병행하며 평일에는 보험일을 업무가 끝나면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공부를 했었다. 늘 너와 같은 환경이었다면 선생님을 하고 있었을 거라는 엄마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사이버대학은 과제도 시험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도 아침 5시? 6시? 였을까. 내가 제일 먼저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책상 앞에 엎드려 있었다. 어린 나는 엄마를 위해서 뭐든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엄마가 써야 하는 독후감 과제를 대신 써주겠다며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작은 손으로 타자를 쳤다.
'아침형 인간' 아직도 정확히 책 이름을 기억한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던 그 무렵의 나는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꼼꼼히 인사이트를 뽑아 내 생각을 기록했다. 단어가 만나 문장이 되고 문장이 만나서 생각이 되었다. 마치 엄마와 내가 태초에 만났던 그 순간처럼.
"엄마 우리 딸 덕분에 A 받았어"
에이란 말이 어찌나 기쁘던지. 그 순간은 내가 엄마에게 큰 하늘이 된 것만 같았다.
엄마는 내게 그림을 그려주고 나는 엄마의 대학 과제를 대신 써줬다. 어린 나의 모습에 기억된 나는 새벽 내내 졸던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민소매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친 채 열심히 펜으로 메모하며 공부하던 모습. 배움을 늘 열망하던 엄마의 또렷한 눈빛을.
그래서 쓴다.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뭐라도 쓴다. 또렷하게 선명하게 그리워하고, 생전 열심히 살던 엄마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쓴다. 엄마의 모습을 그림처럼 그리는 건 영 서툴러서. 그래서 엄마를 글로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