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본래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한 건 사람일 뿐’ 항상 내가 읊조리듯 하는 말이다.
언어만 다를 뿐 ‘사람이 변하지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와 맥락적으로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내가 고교 시절 썼던 시(詩)의 대다수 내용이 자연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산 모롱이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 바다가 너울치는 모습 등. 나는 백일장을 다니며 주변 풍경들을 글감 삼아 썼었다. 어린 시절에는 자연의 모습들을 포착하며 향유하는 것을 꽤나 좋아했는데... 그러나 지금은 무언가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내가 자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빠가 퇴직 후 숲해설사라는 공부를 할 때였고, 이후에 기업에서 하는 ESG경영이라든지 리사이클링 등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연, 환경, 생태계에 스며들었으니까. 그래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라는 책은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온 건지도 모르겠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라는 책은 시인, 에세이스트, 해양생물학자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써 내려간 스무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오래간만에 펴는 책. 그 속에서 만난 ‘자연’이라는 단어에서 풀 내음향이 나는 듯했다. 특히 책 중간중간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로 써 내려간 문구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나는 자연을 통한 여러 사례들을 보며 자연의 몸짓과 소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연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와 자연을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을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으로서의 자연, "어머니" "대지의 무한한 사랑과 생명력을 지닌" 자연, "인종과 계급의 족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치유의" 자연, "무심하고도 모두에게 평등한, 자유 그 자체"로서의 자연 등 내가 몰랐던 다양한 ‘자연’의 의미들을 되새기며 크게 음성으로 내뱉어 보았다.
책의 내용 중 기억에 남았던 자연에 대한 정의는 후안 마이클 포터2세가 언급한 ‘무심한 자연, 어느편도 들지 않는 자연’이었다.
네 편, 내 것, 남의 것으로 규정짓는 사회에서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어주니까. 포장하지 않고, 굳이 예뻐 보이려고 하지 않고 보이는 데로.
이 밖에도 데이비드 해스컬은 브리슬콘 소나무가 천년을 사는 이유도 흥미로웠다. 소나무의 수명이 단순히 길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왔다고 표현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비단 브리슬콘 소나무뿐만 아니라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화 한 송이도 연약해 보이지만 자신만의 방식대로 수백 년을 살아간다. 자연은 정말로 수천 개, 수백 개의 시간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들만의 존재 사유를 끊임없이 외치며 자라나는 것은 아닐까.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라는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 책은 심각해지는 환경문제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자연을 보호하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려와 경고보다는 숲과 사막, 늪지와 산호초, 수백 년을 사는 나무들, 부서지는 파도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볼 것을 권한다.
자연이 말하는 소리를 귀담아듣다보면 무심하고, 욕심 없고, 이야기가 담겨있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된다.
마치 이솝우화 ‘해와 바람’처럼 말이다. 바람은 자신의 강함을 뽐내며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하는데 실패를 한 반면 해는 따뜻한 볕으로 나그네의 옷을 스스로 벗게 한다.
이 책은 자연의 모습을 알려주며 스스로 자연의 숭고함과 교훈을 느끼게끔 해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게끔 한다.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을 바라봐야지. 눈을 감고 이른 아침 해 뜨는 모습을 보며 귀를 활짝 열어봐야겠다. 자연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몸속 깊숙이 스며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