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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ug 04. 2022

[Review]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설치 예술  '바티망'을 보며 

나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 가운데 미술작품들을 훑어본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도슨트의 설명을 듣거나 설명 문구 혹은 책자를 찾아보는 편이다. 하지만 때로는 설명 없이 온 감각을 열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자극과 경험이 필요할까.  늘 보던 것이 아닌 새로운 활력소 같은 무언가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티망(Bâtiment)>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의 설치 예술 작품이다. 평소 우리가 보던 도시의 모습, 일상의 공간을 비틀기를 통해 또 다른 모습을 이야기해 준다.  


바티망 전시가 흥미로운 점은 타 전시들과는 다르게 단순히 감상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 스스로가 작품을 체험하며 해석할 수 있고 나아가 전시에 직접 참여가 가능하다.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작품을 계속 보다 보면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전시에는 거대한 파사드와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일상 속에 초현실을 집어넣어 진짜인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중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꼽아 소개한다.  


                         수영장(Swimming Pool),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환한 햇살과 수영장 물이 맞닿아 있고 그 아래 사람들이 들어가 손을 뻗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큰 호응을 받은 작품으로 밖에서 보는 관람객들에게는 수영장 안에 사람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텅 비어있는 모습이다.  

안과 밖이 다른, 마치 물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설치 작품이다. 작가의 작품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롱브뢰유라는 기법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롱프뢰유(trompe l'oeil)는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해 사물과 실제를 혼동할 정도로 환상 같은 느낌을 일컫는다.  


                        퍼니처리프트(Furniture Lift),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뿐만 아니라 ‘뿌리째 뽑힌’ ‘퍼니쳐 리프트’ 작품은 일상 속 생경함을 느끼게 했다. 마치 ‘이게 진짜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나는 작가의 작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사다리 혹은 리프트 위에 또 다른 집 한 채가 있는 모습은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왠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법도 하지 않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  

작품을 한 점 한 점 볼 때마다 왠지 미소가 새어 나왔다. 작품 속에 새겨든 공간과 깊이가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교실(Class Room, 2017),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교실 속 세트장이 있는 공간에 의자가 있길래 무작정 앉았다. 처음에는 관람객들을 위해 잠깐 앉으라는 건가, 교실 느낌을 감각으로 느껴보라는 건가 싶었다. 잠시 후 반대편에 투명 유리가 보였다. 유리 너머에는 내 모습이 환영처럼 반대편에 비춰 보였다. 그러니까 내 모습이 반대편에 똑같이 생긴 것이다. 마치 나는 이쪽에 있지만 나와 똑 닮은 도플갱어의 모습이 건너편에서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작품을 보며 스스로 내게 묻고, 대답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머릿속에 다양한 모습들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정말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와 실제 일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문득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배운 것들이 명확하게 정답은 아닐 수도 있겠다’를 생각하며 다음 작품을 보았다.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잃어버린 정원은 각진 창 너머로 초록 잎의 식물들이 보인다. 밀폐된 정원 속 반대쪽에서 내 얼굴이 비쳤다. 실루엣은 사선 방향에서도 보였다. 그러니까 정원 속 내 모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여러 군데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 신기해 같이 온 친구와 핸드폰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었다.  

실제 하지만 실제가 아닌 내 모습을 보며 ‘진짜 나’는 무엇일까 다시 물음표를 달아본다. 공간뿐 아니라 보는 이의 생각도 깊어지게 하는 작품이었다. 


                        빌딩(Building),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건물 1층에 설치된 작품으로 내가 제일 오랜 시간 동안 머문 곳이다. 건물 위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위태로운데 재밌어 보였다. 설치물 위에 큰 대형 거울로 비치는 모습은 건물 난간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착시 효과를 보여준다.  


거울 속 모습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앞, 옆, 뒤로 포즈를 바꿔가며 움직여본다. 벽을 타는 사람처럼 표정도 비장하게 지어본다. 잠시 후 곧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친구의 옷자락을 잡고 얼굴을 일그러 뜨려 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관람객들이 빌딩에 매달리는 여러 가지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바티망은“누구나 배우로서 작품을 완성시켜가는 특별한 무대를 선사하며 한국 관람객들이 각자 창의적인 방식으로 즐겨줄 바티망의 다채로운 모습을 기대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바티망을 감상하며 예술에 대해 생각한다.  

예술이란 정답이 없다. 어느 한 가지로 해석되고 답이 정해져 있다면 예술이 아니지 않을까. 거울 속에 비치는 또 다른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또 다른 내가 우주 너머, 지구 끝 그 어디쯤에 존재하지는 않을까. 나는 머릿속 한편에 둥둥 떠다니는 집 한 채를 그려 보았다.  



                                                               


▶ 원문 보러 가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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