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용하던 옛날 카메라에 필름 한 통이 들어있었다. 나는 곧장 사진관으로 달려가 현상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주인은 해 봐야 안다고 대답했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필름 카메라는 바로 인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나는 곧 수십여 년 전 놀이공원에 찍은 젊은 엄마의 모습과 조우했다.
과연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
필름 카메라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 알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다. 현상이 될지 말지 모르는 비밀스러움, 바로 확인이 되지 않으니 어떻게 찍혔을지 갖는 궁금증과 두근거림, 그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비비안 마이어라는 책을 폈다.
보모로 일하며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풍부한 감정과 개성을 사진으로 담은 여성작가.
시카고의 한 벼룩시장에서 존 말루프가 10만 통의 필름을 사들이며 그녀가 세상에 알려졌다. 마치 카메라 속 현상하지 않은 채 간직한 오래된 필름처럼. 제3의 인물을 통해 죽은 후 빛을 본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은 실로 대단했다.
녹록지 않은 형편에 보모, 가정부, 간병인 등 생계를 유지해 나가며 카메라와 필름을 사 세상을 포착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엄청난 양의 신문을 수집하고 신문에 적힌 글씨를 사진으로 촬영할 정도로 세상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미스터리 천재 사진가’ ‘거리 사진가’ ‘보모 사진가’ 여러 타이틀이 붙어 있는 그녀는 정식으로 사진 찍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당당히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고 그녀가 찍은 사진들은 당대 작가들과 견줄 만큼 회자되고 있었다.
사실 셀피라는 단어의 시초는 그녀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한때 SNS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찍는 게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에서는 쇼윈도, 유리, 거울에 비친 모습들이 많다.
이런 점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시간을 거슬러 한 발자국 앞에 나가 있었던 작가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뉴욕, 캘리포니아, 시카고 등 세계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모습, 표정, 감정,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사진 속에는 사랑, 빈곤, 우울, 위트 등 여러 감정들의 찰나들이 모여 있다.
일각에서는 그녀를 저장장애, 편집증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토록 사진을 찍으며 느낀 감정들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궁금 해졌다.
비비안에게 사진은 그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세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촉진제였다. 비비안의 카메라는 세상을 향하는 문을 열어, 사회생활이 서툰 이 사진작가를 전 세계, 수천 명에 달하는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사람들에게 연결해주었다. 새로운 거리, 새로운 집에 들어갈 때면 목에 건 장비는 비비안에게 목적의식과 권위를 선사하고 안전한 거리에서 감정을 끌어낼 수 있게 함으로써 비비안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본문 中 (368, 369쪽) -
아마도 그녀는 사진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찍는 행위 그 자체에 희열, 환기,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녀의 소재는 거리에서 일어나는 상황 그 자체다.
비비안 마이어는 장르 불문, 소재의 스펙트럼이 꽤 넓은 작가다. 각종 범죄 사진과 파파라치 사진, 금방이라도 살아서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아이의 모습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뿐만 아니라 표정과 감정을 사진에 담는다.
실제로 그녀는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 여성,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인물이다. 이는 그녀 안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모두가 제대로 들여다 보지않는 부분을 보며 어루만질 줄 아는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그녀의 사진에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눈빛이 금방이라도 살아 나올 것처럼 찍혀있었다.
누군가는 편집증, 저장강박증이 있다고 하면 매우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광기 어리고 우울함과 부정적인 감정만이 가득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밖으로 통하는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고.
또 그녀에 대한 기록은 두 갈래로 갈린다.
소외됐고, 불행했고,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 사람. 무표정에 직설적인 말투, 고집이 세고 무례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녀를 오래 알았던 사람은 가식 없고 지적인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그녀는 일관성 없고, 부정확하고,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가 포착한 인물들과 사진 속 내용들 속에 답이 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찾지 않을 법한 여행지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보모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피사체를 찍기 위해 과감하게 사람들 앞에 다가갔다는 것을.
감히 말하자면 비비안 마이어는 그야말로 그녀 자체가 카메라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자서전을 통해 그녀의 살아 생전모습을 추측해 본다. 눈을 감고 당시 감성을 살려 그녀가 돼보기로 한다.
내가 글을 써서 감정을 환기 시키듯 그녀가 누르는 셔터 하나하나마다 세상과 이야기하는 창이 열린다. 그녀의 눈빛이 풀처럼 싱그럽다.
그녀야말로 세상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았던 용감한 이 시대의 진짜 예술인이지 않았을까. 누구나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는 사이 진짜 내 것을 못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저 예뻐 보이려고, 멋있어 보이려고, 나를 포장하고 만들기에 급급하다.
비비안 마이어, 그녀가 걸었던 길을 괜히 다시 본다.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머금어 보니 그녀가 더 또렷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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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