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한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여행과도 같은 일이다. 그 사람이 머물렀던 장소, 사용한 물건, 좋아했던 것, 취미, 살아온 환경 등 모든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 그 자체다. 아마도 사람을 면밀히 보고 싶은 감정이 생겨야만 가능한 일이겠다.
이처럼 오랜만에 내게 ‘영감’ ‘끌림’ 흥미를 주었던 인물이 최근에 생겼다. 바로 비비안 마이어다. 나는 분명 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왜 사진가의 작품에게 눈길이 가는 것일까? 이유는 쉽다. 문자가 아닌 사진이니까. 사진은 직관적이고 계속 보다 보면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작가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비비안 마이어 작가의 사진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도저히 시간을 내지 못해 갈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찰나! 그녀의 작품 235점이 수록된 책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를 통해 그녀의 시선이 담긴 作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여러 작품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비비안 마이어 그녀 자신이 굳이 세상에 작품을 꺼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는 삶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데 영감을 주는 용도로 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당시 뉴욕에서는 사진 잡지가 인기 있던 시절이었으며 여성들에게 사진 강좌는 물론 사진의 기초와 목적의식을 기르는 교육강좌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사진은 시간이 지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일부 여성 작가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진 찍기를 했다면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든 하루의 루틴이지 않았을까.
마치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회사나 학교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유년기는 수수께끼처럼 베일에 싸여 있지만 사진들을 쭉 보고 있으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에 대한 모습이 얼추 보인다.
1952년부터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 하나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마이어는 여러 가정에서 보모 일을 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부유하지도 사진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을 씻기고 보살피고, 양육하며 사진 찍는 일을 병행했다는 게 쉽지 많은 않았을 터.
그녀의 밝혀지지 않은 유년 시절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많이 외로웠고, 그녀 자신을 감추거나 숨겨져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마이어의 고용주는 이런 말을 했다.
“카메라가 마이어의 친구였을지 몰라요.
카메라라는 친구를 통해 다른 이들을 본 거죠.
사진은 마이어가 굳이 자신에 대해 털어놓지 않고도 사람들을 자기 삶에 불러들이는 수단이었을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작가에게 카메라는 사진을 현상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마이어의 흔적은 길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작품 열 점이 있다면 아홉 점은 배경이 야외이기 때문이다. 어떤 매체에서는 마이어를 설명하기를 길거리 예술가(사진가), 길에서만 사진을 찍던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시카고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마이어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저 단순히 셔터를 누른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기획하고 진정성 있게 찍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 속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당시 뉴욕의 삶을 다양하게 조명해 포착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남긴 사진들 속에는 인간 본연의 모습과 더불어 당시 사회의 모습이 잘 압축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그녀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 찍은 게 아니라 공원 벤치에서 자는 노숙자, 이민자, 홈리스, 구두닦이 소년들 등 빈곤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담았다.
마이어에게 사진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마이어의 삶이었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했을까. 그녀의 삶과 내 삶을 오버랩 시키며 괜히 비교해 본다. 아마도 마이어에게 사진은 특별한 경험, 이정표, 일기를 쓰는 도구이지 않았을까.
평생 함께 걸어가는 반려자 같은 존재.
그녀에게 사진은 뭐라고 정의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 ] 열려 있는 괄호와 같다. 어쩌면 비비안에게 사진은 작품도 예술도 아닐 수 있다.
그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부,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문득 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같은 작품을 봐도 사람들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 (여백, 색감, 인물의 표정, 배경) 등 각각 보는 시야가 다르듯이.
비비안 마이어의 삶 그리고 작품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사진은 그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 그 자체였을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따라가도 여전히 비밀스러운,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통해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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