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뮤지엄 밸리
정말 오랜만에 집과 사무실만 왔다갔다 하다 강릉에 갔다. 2년만의 일탈지로 강릉을 선택한 것은 후배가 강릉에 기가 막힌 미술관이 있다며 강력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사실 어디든 좋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서울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고, 괜히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10시쯤 사무실에서 출발했는데, 강릉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어 점심부터 먹었다. 포구에 위치한 소박한 횟집이었다. 작은 배를 갖고 있는 선장이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아온 생선들이어서 그런지 회는 달고, 매운탕은 시원했다.
그렇게 행복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주 목적지인 '아르떼 뮤지엄 밸리 강릉'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섰는데, 많이 어두웠다. 미술관이 대부분 밝지 않지만 이 곳은 더 어두웠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왜 어두워야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눈에 들어온 광경은 참으로 놀라웠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호랑이가 정면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호랑이는 사라지고 형형생색 꽃으로 뒤덮인 꽃사슴이 등장한다. 곧이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강렬한 불새가 힘차게 날개짓한다.
호랑이, 꽃사슴, 불새가 노니는 곳은 현실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숲속과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벽 앞에 앉아 있는데, 마치 그 사람들이 숲속에 있는 듯 보였다.
실사같이, 아니 실사보다도 더 멋지게 구현된 디지털 세상을 보면서 유퀴즈에서 봤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폭포가 흐르는 장면을 멋지게 구현한 회사의 대표였는데, 이 미술관을 만든 사람도 알고 보니 같은 회사였다. 타임스퀘어에 흐르는 폭포 물줄기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왔는데, 이곳에 구현된 세상은 또 차원이 달랐다.
숲속에서 눈을 돌리면 여러 개의 문이 있다. 그 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디지털 세상이 열린다. 제일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별빛방이라는 이름답게 사방이 별처럼 반짝인다. 공간이 넓지는 않은데 사방이 유리라 공간감이 엄청나다. 쏟아지는 별빛 속에 서 있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록색, 붉은색, 흰색 등 별들이 옷을 갈아 입어 더욱 환상적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직접 아르떼 뮤지엄을 찾을 분들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현장에서 느낀 감동과 놀라움은 사진에 담기 어려워 매우 아쉽다.
나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초창기인 1980년대부터 컴퓨터 세상을 알았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다보니 컴퓨터 잡지 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외국 <바이트>라는 잡지의 내용을 번역해 싣기도 했는데 그때 이미 '가상세계(Virtual)' 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하지만 개념일뿐,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온라인 게임도 그래픽이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불과 30여 년 만에 디지털이 만든 세상은 일취월장했다. 온라인 게임의 주인공과 배경은 실사처럼 정교해진지 이미 오래고, 디지털이 만들어낸 가상세계도 점점 발전해 현실과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
아르떼 뮤지엄을 본 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짜보다 더 진짜같고 실감나는 디지털 세상이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만으로도 오감을 자극하는 세상, 일단 기대된다. 물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세상에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