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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Jun 08. 2022

함부로 조언해서는 안 되는 이유

내 경험을 토대로 하는 조언은 폭력일 수 있다

얼마 전 김영하 작가가 TV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MC가 그에게 요즘 청년들을 위한 조언을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영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게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는 말이 있다. 저의 청년 시기를 생각해보면 집집마다 차가 없고 골목은 비어 있고 돈은 거의 아버지 혼자 벌고 자식들은 별 걱정 없이 구슬치기 하고 대학 나오면 쉽게 취업이 됐고, 해외여행 거의 못 가고, 그런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환경 자체가 너무 다르니 젊은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게 힘들고 젊은이들도 새겨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나의 얄팍한 경험을 토대로 지적질이나 다름없는 조언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특히 나보다 어린 후배나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많이 했다. 그들은 나와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럴듯한 명분과 사랑을 빙자해서 말이다.


하나뿐인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딸이 대학입시 준비를 할 때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솔직히 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스카이가 목표라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목표가 낮아지고 수능을 보고 난 후에는 인서울도 감지덕지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인서울도 간당간당하다는데 자존심이 상했고, 한편으로는 딸이 못마땅했다. 그런 마음을 감추고 응원의 탈을 쓴 조언을 많이 했다.

솔직히  시대에는 대학 가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춘천의 고등학교에서는  반에서 대여섯 명은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했다. 인서울까지 확대하면  수는  많았다. 지방의 고등학교에서도  정도인데, 서울에서는  대학 가기가 쉽지 않았을까? 그런 시대를 살았던 내가 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처음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해하는 척하며 조언질을 했으니 딸이 착하지 않았다면 엇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분명 같은 세대인데도 완전 딴 세상에서 산 것 같은 느낌일 때도 있다. 당장 나와 내 남편만 해도 그렇다. 남편과 나는 같은 83학번이다. 그 시대 대학생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우리 부부도 대학공부는 별로 하지 않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끝까지 신념을 지키는 강단도 없어 둘 다 졸업할 즈음에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접고 취업준비를 했다. 여대를 졸업한 나는 취업하는 데 꽤 애를 먹었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에서는 대졸 여성을 잘 뽑지 않았고, 비교적 남녀차별이 없는 전문직종은 넘사벽이었다. 한 1년쯤 언론사 준비를 하다 다 떨어지고, 전문잡지 기자로 겨우 사회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군대에 갔다 오느라 나보다 2~3(?) 후에 취업을 했는데, 취업이 아주 식은  먹기였다. SKY인데다 과도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경제학과라서 그랬는지 취업 시험이 따로 없었다. 취업 시즌에 경제학과 건물 앞에는 대기업들이 보낸 버스가 즐비했다.  버스에 타면 회사로 데려가 견학시켜주고 서류를 나눠주면 그대로 취업이 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친구들과 놀다 삼성 버스를 놓치고 선경(지금의 SK) 버스를 타서 선경에 취업했었다.

명문대 경제학이나 경영학과 남학생들은 그렇게 취업이 쉬웠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취업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나도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믿기 어렵고, 상대적 박탈감에 허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남편은 졸업 후 1년간 고전하다 겨우 취업한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식은 죽 먹는 것보다도 더 쉽게 취업한 남편이 취업과 관련한 어설픈 조언을 나에게 했다면 빈정 상해서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함부로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하면 안 되는지가 명확해졌다. 어찌 젊은 사람들뿐일까? 사람은 저마다 다 상황이 다르다. 그 상황을 잘 모르면서 하는 모든 조언은 그저 말장난이거나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하는 폭력일 수 있다. 정말 상대방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어설픈 조언 대신 응원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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