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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Jun 24. 2022

장남과 맏며느리의 무게

장남과 맏며느리는 더 이상 특권도 의무도 아니다.

시어머니의 치매가 악화되었던 어느 날, 온 가족이 함께 모였다. 혼자서 시어머니를 보살피던 시아버님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며 가족회의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버님 혼자서만 어머님을 보살핀 것은 아니었다. 주중에는 다른 두 며느리가 낮에 어머님을 돌봤고, 나는 주중에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어 주말에 남편과 함께 시댁에 가서 어머니 시중을 들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버텼는데,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라 대책이 필요했다. 


대책이라는 게 별 게 없었다. 자식 중 누군가가 아버님을 대신해 오롯이 어머니를 감당하든지, 아니면 치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전부였다. 그 회의가 있기 전에 아버님은 장남 부부에게 좋은 요양원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속내는 장남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기를 바라셨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유독 장남 부부에게만 화를 내고 큰소리를 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나도 누군가가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면 당연히 맏며느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님도 끊임없이 그런 신호를 장남 부부에게 주었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었다. 하지만 장남 부부는 끝내 아버님의 의중을 모른 척했다. 

"아버님이 뭘 원하는지 알아.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안 나 못하겠어."

어느 날 형님(맏며느리)이 답답한 듯 속마음을 털어놓았었다. 친정 엄마가 이미 오래전에 치매로 고생하는 것을 본 큰 동서로서는 더 엄두가 안 나는 것이 당연했다. 형님 앞에서는 호기롭게 "형님 혼자 감당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얄팍하게도 아버님이 나에게는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겠냐'는 눈치를 주지 않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마지막 결론을 내기 위해 가족회의가 소집되었고, 아버님은 무거운 목소리로 자식들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너네들 생각은 어떠냐?"

"........"

"모두 요양원에 보내는 거 동의하나?"

모두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이미 자식들의 마음을 다 알고 계셨을 텐데, 아버님이 불편한 질문을 굳이 한 이유는 마지막까지 자식들이 모시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닐까?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형님이 고생이 많았다. 요양원에서 어머니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가족을 호출했는데, 그때마다 형님이 나섰다.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면 간병인을 구하는 일부터 병원과의 소통 모두 형님이 도맡아 했다. 모두들 형님에게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맏며느리이니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친정의 경우 장남에 대한 기대는 더 노골적이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아파 병원비를 마련할 때 언니들은 오빠가 장남이니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빠 앞에서는 직접적으로 그 말을 못 하지만 딸들만 모여 있을 때는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장남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언니들이 오빠에게만 부모님을 맡기고,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다. 각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는데, 그러면서도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장남인 오빠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고수했다. 그러다 보니 오빠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어지간히 뒷담화를 하며 오빠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나는 장남이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부담을 가져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마 시댁 쪽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4남매가 정확하게 1/4로 부담을 나누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오빠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어서 여동생들의 바람대로 혼자 묵묵히 장남의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말기를. 내가 보기에 오빠는 부모님께 할 도리를 다했다. 아버지 곁을 끝까지 지킨 것도 오빠고, 엄마가 혼자가 되었을 때 매일 밤 엄마 집에서 잤던 것도 오빠였다. 그로 인해 몇 년을 오빠네 부부가 별거 아닌 별거를 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여동생들은 오빠의 노고를 평가절하했다. 장남이면 그 정도쯤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오빠는 오빠대로 늘 장남 역할만 기대하는 여동생들을 섭섭해했다. "장남이라고 부모님께 특별히 받은 것도 없는데, 장남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는 게 너무 많다."며 속상해했다.  


시대는 많이 바뀌었지만 장남과 맏며느리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지금은 부모님의 유산을 자식에게 상속할 때 장남에게 부여되던 프리미엄도 없다. 다 똑같이 1/N을 하는 세상이다. 옛날처럼 아들만 좋아해 아들 중심으로 굴러가는 세상도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장남,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억지에 불과하다. 남아선호 사상이 많이 사라졌듯, 장남과 맏며느리에게 주어지던 삶의 무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덜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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