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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Jul 06. 2022

나도 박수홍이 될 수 있다

가족의 양면성 

삶의 굽이굽이마다 가족이 큰 버팀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나를 등져도 가족만 나를 믿고 응원해준다면 살 수 있다. 가족의 힘은 이렇게 세다. 

하지만 언제나 가족이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장 힘이 되어주어야 할 가족이 남보다 못한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가족이 아니라 웬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즘 박수홍 씨의 아픈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저 그런, 데면데면했던 가족이었다면 박수홍 씨가 지금처럼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수홍 씨는 형과 형수를 전적으로 믿고 존경했다. 그래서 수입을 모두 형에게 맡기고, 정작 자신은 용돈을 받아 썼다. 

하지만 믿었던 형이 박수홍이 번 돈을 무려 116억 원이나 횡령했다. 무척 큰돈이지만 소멸 시효 조항 때문에 최근 10년 치만 책정된 금액에 불과하다. 서로 믿고 함께했던 30여 년을 모두 계산하면 금액은 훨씬 더 클 것이다. 결국 박수홍은 그토록 믿었던 형을 고소했다. 형은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박수홍을 맞고소했다. 


사실 자세한 내막은 아무도 모른다. 형은 형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편견 없이 양쪽의 의견을 다 들어보지 않고 섣불리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박수홍 씨 가족은 개인보다 가족을 더 우선시했던 것 같다.  시인 겸 문화평론가인 김갑수 씨는 이런 박수홍 씨를 동정하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박수홍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여러 번 나갔다. 그래서 박수홍을 잘 안다. 사람이 굉장히 선량하고 섬세한 좋은 인상의 사람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게 몇 가지가 있다. 박수홍 씨가 벌은 돈이 집안의 돈이라는 관점에서 형이 다뤘다는 것이다. 어떻게 집안의 돈이냐, 박수홍 씨의 돈이지. 박수홍 씨 나이가 몇 살이냐. 과거 결혼을 해야 하는데 집안의 반대 때문에 못했다더라."

그러면서 김갑수 씨는 박수홍 씨가 형과 똑같이 30년을 가족주의 빠져 살다가 이제 와서 '나 불쌓하다'라고 하는 건 하나도 동정이 안 간다고 했다. 김갑수 씨의 견해는 가혹하지만 '가족의 구성이기 전에, 부모의 착한 아들, 형의 동생이기 전에 개인의 삶을 더 앞에 두고 스스로 책임지며 살았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말은 쉽게 해도 가족보다 나를 앞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족 중심이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돕고 의지가 되는 가족이 어찌 나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로 돕는 가족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가족 따로 있고, 도움을 받는 가족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관계가 어떻든 스스로 원하고 감당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나도 너무 힘든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이다. 어쩌다 한 번이라면 모르겠지만 반복되면 더 이상 가족은 힘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만다. 


나에게도 가족은 묘한 존재다. 물론 큰 갈등은 없다. 보통의 가족처럼 평범한데, 너무 자주 만나고 싶지는 않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아마 다른 형제들은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줄 모를 것이다. 만나면 반갑지만 모두들 앞다퉈 자기 이야기만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말이 많은 편이지만 더 말이 많은 형제들 앞에서는 들어주는 입장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좋은 얘기, 행복한 이야기는 들어줄 만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원망하고, 삶이 힘들어서 불행하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듣고 나면 더 이상 듣기가 힘들어진다. 처음에는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 마음에 맺힌 것을 다 토해내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들어주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 아니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흐르면서 그제야 알았다. 불평도 습관이라는 것을.... 


아무리 들어줘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몇 번 입바른 소리를 했다.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라고. 그랬더니 울며불며 나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형제 중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자기 맘을 몰라준다나 어쩐다나.


그런 형제들이 내가 어쩌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형제들 눈에는 내 삶이 참 편하고 행복해 보이는 모양이다. 대체적으로 맞는 이야기이다. 남편도 착하고, 하나뿐인 딸도 착하고 똑똑하다. 지금껏 맞벌이를 해서 경제적으로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정도의 여유는 있다. 

하지만 거저 얻은 것은 없다. 난 정말 치열하게 살았고, 남편과 딸도 열심히 살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가족 모두 큰 욕심 없이 소박한 사람들이고, 긍정적인 성향도 무난하고 평온한 삶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이해받기만 바라는 가족, 조언은 필요 없고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바라는 가족은 버겁다. 그러기에는 내 그릇이 작고, 마냥 착하기만 한 성격이 아니다. 내가 제일 중요하고, 내 행복이 먼저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언제까지 이야기를 들어줄 자신이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래서 형제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박수홍 씨도 좀 더 빨리 자신과 가족을 조금이라도 분리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그랬다면 지금처럼 온 가족이 힘든 상황은 맞이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법이 박수홍 씨가 잃어버린 돈은 찾아줄지 몰라도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가족은 다시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박수홍이 될 수 있다. 몇 몇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가족의 가치는 서로 상호적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뭔가 일방적으로 내 것을 나눠갖기만 하고, 그로 인해 섭섭함이 생긴다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당장은 야박해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더 건강한 가족을 만들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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