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즈유 Sep 14. 2022

가위가 100만 원이 넘는다고?

무지로 인한 오해를 푸는 법

추석 연휴 전, 거의 2년 만에 파마를 했다. 파마는 아무리 빨라도 2시간 반 이상은 인내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래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파마를 미루는 편인데, 아무리 헤어 에센스를 발라도 탄력이 없고, 부해지는 머리를 감당할 수가 없어 파마를 결심했다. 

파마약을 바르고, 돌돌 말고, 디지털 세팅하고 한참 동안 있다 샴푸 하고, 고데기로 머리를 펼 때였다. 지루함에 하품이 나오려는데, 내 머리를 만지던 디자이너 두 분이 하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다. 

"지난주엔가 한 손님이 손톱에서 삐져나온  것 정리하겠다고 가위를 빌려달라는 거예요. 안 된다고 했더니 너무 기분 나빠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앞머리 자기가 조금만 자르겠다고 가위 좀 달라고도 해요. 우리가 쓰는 가위가 얼마나 비싼지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아요."

얘기를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헤어 디자이너의 핵심 장비이니만큼 가위가 비싸긴 할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얼마인데, 그렇게 깐깐하게 가위를 사수하는 걸까? 

"우리가 쓰는 가위는 한 개 당 100만 원이 넘어요."

헉! 100만 원? 비싸도 몇 십만 원일 거라는 나의 예측은 허망하게 빗나갔다. 헤어 디자이너들은 좋은 가위를 쓰지 않으면 손목이 버티질 못하기 때문에 비싸도 품질 좋은 가위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 비싼 가위로 손톱을 정리하면 날이 망가져 쓸 수가 없단다.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인이 그 가위로 머리를 잘라도 날이 상할 수 있다고 한다. 

헤어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면 그 비싼 가위를 빌려 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손님 입장인 나로서는 손님을 탓하기 전에 왜 빌려드릴 수 없는지 먼저 이야기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손님이 가위가 100만 원도 넘는 아주 예민한 장비라는 것을 알았다면 함부로 빌려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직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종종 오해가 생기고, 때로는 무리한 부탁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그런 일들은 자주 일어난다. 

나도 예전에 동시통역사였던 친구에게 영문 이력서를 부탁했던 적이 있다. 내 것도 아닌 후배의 이력서를. 그때만 해도 어려서 맨입으로 부탁하는 게 얼마나 실례되는 일인지도 몰랐다. 동시통역사이니 이력서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일쯤은 10분도 안 돼 뚝딱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친구가 영문으로 번역한 이력서를 주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그 사람 돈 내고 정식으로 의뢰하라고 해. 단순한 이력서도 아니고, 전문 경력 장황한 이력서를 이렇게 그냥 번역해달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동시통역사였어도 내가 부탁했던 이력서는 그냥 한 번 죽 보고 바로 번역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문 분야일수록 용어를 선택하는 것부터 신중해야 해서 영문 이력서로 번역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물론 상대방의 입장을 알아도 모른 척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알면 변하지 않을까? 그러니 적어도 한 번쯤은 내 입장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면 어떨까? 그랬는 데도 여전히 똑같이 안하무인인 사람들은 이후 아예 상대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병원은 위드 코로나가 불가능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