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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Jul 08. 2021

네오 비스트로(Neo-Bistrot)

경제가 새로운 트렌드에 불어넣는 바람

 19세기 말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라는 전설적인 셰프의 등장과 함께 지금 서양 요리의 종주국의 위치를 프랑스가 가지게 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주방의 섹션을 2021년인 지금까지도 에스코피에가 만들어놓은 조직도에 의해 나누어지고 있고 전통 프렌치의 레시피에서 아직까지 그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으며 그에 따라 많은 언어들에서 주방 전문 용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를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본다. 가령 우리가 한국어에서도 매우 자연스럽게 쓰는 소스(sauce),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단어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인걸 생각해 봐도 말이다.


 그에 따라 전통적인 프랑스어의 의미에서 미식을 의미하는 단어는 갸스토로미(Gastronomie)로써 지칭되며 보통 가정식 음식을 파는 식당들을 비스트로(Bistrot)라는 단어로써 정의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의 새로운 열풍과 함께 비스트로노미(Bistronomie) 또는 네오 비스트로(Neo Bistrot)라는 단어 또한 프랑스뿐만이 아닌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전에는 볼 수 없는 어찌 보면 신생 단어이자 요리 장르로써 미식의 갸스트로노미와 가정식의 비스트로 사이에 있다는 느낌으로 비스트로와 같은 좀 더 캐주얼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미식의 영역을 탐닉할 수 있는 식당들을 주로 일컫는다. 청바지나 운동화가 금지되며 드레스 코드가 있는 기존의 갸스트로노미와는 꽤나 대비가 되며 그렇다고 이들이 갸스트로노미에 비해 음식의 질적인 면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네오 비스트로의 1세대 식당으로써 지금의 프랑스 파리의 상징적인 식당들 중 한 곳이자 월드 베스트 랭킹에도 상위 랭크에 오른 Septime, Le chateaubriand 등의 식당들이 있겠다.


 요리사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름대로 네오 비스트로 식당들의 공통점을 여럿 찾아보게 된다. 버터를 비롯한 지방을 쓰는 데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는 클래식 프렌치 요리들에 비해 비교적 음식들이 가볍고 단품이나 코스 요리 가격 또한 점심 코스에 기본 100유로를 후딱 넘겨버리는 갸스토로노미 식당들에 비해 부담도 덜하며 와인 리스트들 또한 기존의 와인들이 아닌 내추럴 와인들이 주로 이루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의 낮은 가격만큼 오히려 제철 재료들의 사용에 더욱 집중하는 듯한 느낌 또한 강하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미식의 종주국이라는 프랑스에서 왜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한 지의 뒷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요즘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을 보면 사실 유럽의 미래가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프랑스를 예를 들어 60년대와 70년대 초 늘 5%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이루던 때에 대비하여 최근 몇 년간 2%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건 거의 없는 일이라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특히나 서방국가들의 경제 위기 상태가 회복될 기미가 크게 보이지 않고 유럽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가 더욱더 대두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높은 인건비와 더불어 자국의 제조업 비율이 현저하게 줄었으며 유럽 내의 여러 국가들이 재정 문제에 매년 허덕이며 오히려 EU와 유로존이라는 공동체에 의해 서로가 발목을 잡고 있는 한계점 또한 드러나는 실정이다. 


 그 말인즉슨 사람들이 미식에 예전만큼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한다. 실질적으로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장 아끼게 되는 지출로써 외식을 꼽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1년에 약 9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도시이다. 관광객으로 그 미식의 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파리에서 요리사로 근무를 하던 시절 관광객이 많이 왔다 갔다 하던 곳의 미슐랭 식당이었으나 대부분의 단골들은 대게 프랑스인인 경우가 많았고 파리지엥들이 바캉스를 많이 떠나는 시기에는 매출 또한 감소하는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수 시장을 무시 못함의 가장 큰 예를 똑같은 프랑스 와인 산업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와인 생산량으로 1위 자리를 이탈리아에 내어준지 몇 해가 흘렀으며 요즘의 보르도를 비롯한 프랑스 와인 산업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로써 지금 현재 프랑스 내에서의 와인 소비량은 60년대에 비해 반의 반도 안 되는 실정이라 하기 때문이다. 수출로써 위기를 타계한다 하지만 모든 와이너리가 수출에 의존할 수 없는 만큼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써 자국 내의 와인 소비를 끌어올리는걸 해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와 더불어 파리에서의 네오 비스트로 식당이 몰려있는 위치를 보면 경제가 미식 트렌드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더욱 느끼게 하는데 ‘젠트리피케이션’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대게 파리의 갸스트로노미 식당들을 떠올리면 파리의 전통적인 부촌인 16구나 7구 또는 샹젤리제 주변과 고즈넉한 옛날 파리를 잘 보여주는 생제르망 동네가 떠오르지만 네오 비스트로 식당들은 전혀 그 환상에 부합되지 않는다. 비교적 위에 언급한 지역들에 비해 땅값이 저렴하나 치안은 그렇게나 훌륭하다고 볼 수 없는 동네들에 모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위의 경제적 문제와 함께 그만큼 젊은 프렌치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변해감에도 네오 비스트로의 등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전통적으로 3-4시간씩 밥을 먹던 프랑스의 풍경 또한 사라져 가고 있으며 비건이나 베지테리언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비교적 무거운 클래식 프렌치들을 꺼리는 경향도 많으며 기성세대에 비해 햄버거나 샌드위치와 같은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데에 그렇게 거부감 또한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때 프랑스 청년 실업률이 한국 청년 실업률의 두배 가까이에 이르렀던 만큼 그들에게 미식에 투자할 예산이 있을지 자체가 의문이 아닐까 싶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지금의 네오 비스트로 식당들이 새로운 트렌드로써 미식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지속되는 경제 불황과 작금의 코로나 사태와 함께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인간이 하나의 큰 삶의 즐거움으로써 꼽는 미식이라는 세계가 정말 다른 패러다임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예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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