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요리 이야기
몇 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던 중 인상주의 화풍의 대표적인 선구자이자 네덜란드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인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여러 가지 고흐가 남겨놓은 작품들을 감상하며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가장 눈에 들어왔던 그림은 개인적으로 ‘감자 먹는 사람들’ 이 아닐까 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하층민 들로 고된 노동을 마친 후 찐 감자와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반 고흐 특유의 화풍과 함께 그려놓은 작품이나 개인적으로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저 당시의 사람들은 감자를 어떻게 먹었을지 왜 감자 외 에는 일을 마치고 왔음에도 먹는 음식이 없는 걸까 하는 요리적인 생각을 해보았던 때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지금 서양 음식을 생각해보면 감자는 알게 모르게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매우 높은 식재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감자튀김부터 시작해서 고급 요리에 들어서는 서양의 3대 진미라고 불리는 캐비아의 단짝 친구가 찐 감자인 것을 생각해봐도 말이다. 게다가 폴란드와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술 ‘보드카’의 원재료가 감자를 증류한 술이라는 걸 감안해보아도 감자의 역할은 특히나 서양의 식탁에서 필수 불가결한 식재료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점은 감자를 이렇게 대중적으로 소비한 것은 신기하게도 약 300년 가까이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감자의 등장은 굉장히 최근의 일이라 볼 수 있는데 남겨진 사료들을 조합해보면 19세기 중반 에서야 청나라를 통해 한반도에 감자가 처음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사극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서양, 특히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역사 시리즈에서 그 이전의 시기에 감자가 등장한다면 어느 정도 역사 고증에 오류가 있다고 봐도 무방한 사례가 된다.
그렇다면 감자가 어떠한 경유로 이렇게 퍼지게 되었던 지를 역사를 통해 본다면 흥미로운 구석들이 꽤나 많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꼭 머릿속에 외우고 있는 년도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바로 1592년이다. 이유인 즉 슨 조선과 일본 사이에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 이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왠 걸 임진왜란 연도 이야기인가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00년 전 1492년의 유럽에서는 자기네들의 역사를 뒤집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발견 함으로써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의 신호탄을 쏘게 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사건에 대해 대부분 그 이후의 정치적,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세계사에서 많이 다루곤 하지만 동시에 이 발견이 서양 미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건 이기도 하다. 콜럼버스는 신대륙 항해를 마친 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여러 가지 작물들 또한 유럽에 가져오게 된다.
그중 우리가 특히나 주목해야 할 작물들은 ‘담배’, ‘옥수수’, ‘고추’ 그리고 ‘감자’가 아닐까 싶다.
감자가 유럽 사람들에게 소비되어지는 데까지는 여러 가지 이후로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으나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런 ‘맛’이 없어서였다. 지금은 여러 가지 품종 개량을 거친 덕분에 튀김 용 감자, 쪄먹는 용 감자 등의 감자 속의 포도당에서 나오는 특유의 달큰한 맛을 느끼기가 어렵지 않지만 초창기 남미에서 넘어온 감자에는 그 자체에 맛이 존재하지가 않았다.
그래서일까 위의 이유로 인해 감자가 가장 빨리 대중화된 나라가 영국 바로 옆의 섬나라 ‘아일랜드’이다. 예전 아일랜드 더블린에 여행을 갔을 때 이곳 아일랜드의 로컬 푸드란 그 유명한 흑맥주 ‘기네스’와 감자밖에 없나?!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으나 아일랜드의 역사를 두고 본다면 이상한 점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 곤 한다.
이유인 즉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로써 대부분의 농작물 들을 늘 영국에서 수탈당하는 상황이 늘 빈번했으나 감자만큼은 예외였기 때문이다. 감자의 싹 및 줄기에는 독이 있으나 초창기의 사람들은 그 점을 알 턱이 없었고 감자를 먹고 죽는 경우도 빈번했는 데다 감자 자체의 맛도 없었기에 감자는 늘 영국의 수탈 작물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감자 덕분에 아일랜드 총인구수 가 늘어나기도 했다 라는 점이다. 이후 유럽의 역사에서 세계 대전 등의 시기 감자가 구황 작물로 각광받았던 이유를 찾을 수도 있는 게 ‘감자’ 그 자체의 영양 성분이 매우 풍부 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프랑스의 이야기로 넘어가 전통 프랑스 음식 중에는 ‘파르멍티에(Parmentier)’라고 불리는 음식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고기 등으로 만든 스튜를 바닥에 깔고 위에는 감자 퓌레로 덮어 놓은 요리인데 이름이 파르멍 티에인 이유는 프랑스에 감자를 대중화시킨 장본인의 이름이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 놓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여러 번 이야기 했듯 감자의 맛 때문에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18세기까지만 해도 말이나 돼지 등의 가축을 키우기 위한 용도로써 재배되었을 뿐 사람이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프로이센 즉 독일의 경우 포로들에게 빵 대신 감자를 먹인 경우가 빈번했으나 이때 포로 생활을 하던 파르멍티에는 이 경험을 토대로 감자도 사람이 먹을 만 함을 깨닫고 감자 관련 요리 연구나 왕실 요리에도 감자를 홍보하기 위한 노력 또한 많이 기울였으며 이 덕에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실의 문화가 부르주아나 하층민 계급에게 까지 넘어가면서 감자 먹는 문화가 대중화되어 갔다는 기록 또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요즘의 감자는 어떨까?
지금 현재 가장 미식의 트렌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남아메리카 페루의 수도 ‘리마’이다. 매년 산 펠리그리노에서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의 상위권이 위치해있는 리마의 식당들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재료적인 측면에서는 놀랍지가 않다 보는 점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의 종이 가장 다양한 곳이 페루와 콜롬비아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리마의 ‘센트럴’이라는 식당의 감자로만 이루어진 디쉬를 매우 인상 깊게 보았던 적이 있는데 감자의 고향이 안데스 산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지만 페루에는 감자의 종이 약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 감자들을 튀긴다거나 말린다거나 심지어 발효는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테크닉을 사용하여 플레이트를 구성한다고 하는데 고향을 떠나 유럽에서 그렇게나 멸시를 받던 감자가 오히려 자기 고향에서 다시 꽃을 피우는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다.
끝으로 우리가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을 먹는 매 순간 여러 가지 식재료를 마주 치곤 한다. 그러나 쉽게 지나치는 부분이지만 그 식재료 하나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늘 인류 역사 그 자체를 먹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