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로 보는 세계사 이야기
보통 ‘영국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피쉬 앤 칩스 ( fish and chips )가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영국으로 여행을 가는 관광객들의 가장 필수 코스 이기도 하며 개인적으로 영국 런던에 살던 시절 골목골목마다 어렵지 않게 피쉬 앤 칩스 가게들을 보았던 기억 또한 있다.
사실 피쉬 앤 칩스는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 국가들 대부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먹거리가 아닐까 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라면 필요한 재료도 매우 간단할뿐더러 조리법도 간단하고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 또한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노동자 계층의 삶을 주로 그려낸 화가 프레드 레이들러의 작품 중 피쉬 앤 칩스라는 작품이 존재하듯 말 그대로, 영국의 서민 계층을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로써 산업 혁명과 함께 튀김유 보급의 보편화 그리고 저인망 어업의 개발 등으로 인해 생겨난 음식이나 엄밀히 말해 완전한 영국 음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르게 말해 유럽 본토의 여러 음식 문화를 영국화 시킨 음식이라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생선을 딥 프라이 즉 튀기는 조리법은 포르투갈에서 왔다고 보는 설이 강하고 칩스(Chips) 즉 감자튀김 또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이민 온 벨기에 이민자들로 부터 전해 졌다는 가설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흥미롭게 집중해서 보고자 하는 부분이 사실 포르투갈의 튀김 역사이다. 우선 그렇다면 생선 튀김이 어쩌다가 영국까지 전해 졌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려면 우리는 지금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위치해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조금은 알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근교의 동네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신트라(Sintra)’에 가보면 ‘무어인의 성터’라는 유적이 있다. 여기서 무어인이란 한때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무슬림들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꼭 신트라뿐만이 아니라 포르투갈 곳곳에 무어인들의 흔적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전 스페인인 친구로 부터 스페인 전통 가요를 소개받아서 같이 듣던 중 개인적인 인상으로 아랍 음악과 기교나 선율이 매우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덕에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스페인의 전통 음악 ‘플라멩고’ 그리고 특유의 기타 선율들이 스페인이 중세시대 무슬림들에게 지배를 당한 시절의 영향이라는 것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절대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다.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마지막 무슬림 왕가가 살던 곳 이었자 그라나다는 그 당시 그라나다 왕국의 수도였는데 스페인이 그라나다 왕국을 다시금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게 되면서 자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절 가장 박해를 결국 많이 받게 된 민족들을 바로 유대교를 믿는 포르투갈계 유대인 들이었고 종교 박해를 피해 이민을 간 곳이 바로 영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튀김 문화가 영국에도 같이 전해지는 계기가 마련되게 된다.
애초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튀김 문화가 발달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로마시대부터 원활한 올리브유 공급을 위해 집중적으로 올리브 나무를 심었던 곳이 이베리아 반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 유럽 지역에 비해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름이 훨씬 흔했고 이에 따라 자연히 튀김 요리의 발달로 이어지게 된다.
동시에 일본의 튀김요리 ‘덴뿌라’ 또한 포르투갈어 ‘tempora’에서 기원되었다는 것인데 포르투갈은 일찍이부터 동양과의 무역에 관심이 많았다. 이미 16세기부터 일찍이 마카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고 일본의 나가사키를 통해 일본과의 무역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던 점인데 일본은 사실 포르투갈로 부터 받은 영향이 지대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하던 ‘조총’ 또한 포르투갈에서 받아들인 것이며 위의 언급한 덴뿌라 또는 ‘튀김’이라는 조리법 또한 이 당시 포르투갈을 통해 들어온 것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음식에 튀김 요리가 이렇게 대중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보는 게 맞다. 식용유 자체가 매우 귀했기에 상위 계층 에게만 허락된 음식이었으나 19세기에 들어 지금의 도쿄 즉 에도 근처에 유채꽃 재배가 폭발 적으로 증가하며 ‘카놀라유’의 증폭적인 생산 확대가 지금이 일본 튀김 요리의 다양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사실 튀김 요리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며 느낀 점으로써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너무나 역사적으로 잘 반증해주는 조리법이 아닐까 한다. 요즘 시대에 들어서 그 누가 튀김 요리를 고급 요리로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있다. 대부분의 정크 푸드들 중에 튀겨진 음식들의 비중이 참 많으며 튀김으로써 생기는 많은 미세 먼지들 그리고 영양학적 관점에서 갈수록 튀긴 음식을 거부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몇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튀긴 음식은 말 그대로 사회의 상류층들에게만 허락된 음식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유는 매우 간단한데 튀김에 필요한 ‘식용유’의 공급이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꽤나 간단하다. 지금처럼 농사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를 생각해보면 기름의 원 주재료가 되는 작물들을 키울 바에야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밀이나 보리 등을 경작하는 게 훨씬 유리했고 그로 인해 가령 지금도 프랑스 요리를 보면 어느 기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어느 지방의 요리인지가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올리브 재배가 가능했던 남프랑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돼지기름, 오리 기름, 버터 등의 동물성 지방을 주로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산업 혁명과 농업의 발달로 ‘식용유’가 흔해지면서 튀긴 음식은 날이 갈수록 하층민의 음식으로 전락해버린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장 좋은 예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즉 우리가 즐겨 먹는 치킨이 아닐까 한다. 치킨은 켄터키의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로 부터 처음 생겨난 음식으로 백인들이 먹다 남은 닭고기 부위들을 기름에 튀겨 먹었던 게 유래가 된 음식인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요리를 들여다보면 가끔 세계사 전체의 흐름이 보인다고 느낄 때도 있다. 결론이 힘이 강한 나라의 문화 즉 음식의 파급력이 결국엔 다른 나라에도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혹시 다음 세기에는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나라에 한식에 엄청난 영감을 받아 생겨난 그 나라만의 음식이 생길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