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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Jan 12. 2023

에그 타르트, Pastel de nata

구도의 길에서 만든 포르투갈의 국민 디저트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 제일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의 미슐랭 식당에서 인턴쉽을 할 기회를 얻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보내고 왔던 개인적인 기억이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옆나라 스페인에 비교하여 포르투갈 미식이 조금 덜 유명한 것은 사실이나 요리사로서 매우 매력적인 곳 임에는 틀림이 없다.


 유럽에서 오렌지와 같은 시트러스의 종이 가장 다양한 곳이자 나라 전역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양질의 올리브유들 그리고 알렌테주 지방의 풍부한 해산물들을 다뤄 볼 수 있었던 기회 들은 요리를 하는 매 순간 두고두고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한다.

 

 사실 리스본에서 보내던 약 3개월의 시간 동안 평범한 일상에서의 가장 기억 남는 음식을 꼽으라면 두 가지를 쉽사리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는 하필 그때가 제철이었던 점도 있지만 골목 골목 식당이 위치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맡을 수 있던 'Sardinhas assadas'라는 정어리 굽는 냄새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 전 에스프레소 한잔과 함께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에그 타르트'(Pastel de nata)'가 아닐까 한다. 


 포르투갈어에서의 이름은 파스텔 데 나타(Pastel de nata) 그러나 영어로는 에그 타르트(Egg tart)라고 불리는 이 음식에 사실 '타르트'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프랑스 제과의 정의에 들어가면 '타르트(tarte)'는 보통의 경우 빠뜨 브리제(Pâte brisée)라는 도우를 이용하여 만든 틀에 필링을 채운 경우를 말하는 것이나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 경우 빠뜨 브리제가 아닌 프랑스어로는 푀이타쥬(Feuilletage), 영어로는 퍼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라 불리는 바삭한 페이스트리가 계란 커스터드를 받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포르투갈을 넘어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있었던 마카오에서도 대표적 디저트로써 입지를 다지고 있는 에그 타르트의 유래가 본디 카톨릭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만 드실 수 있었던 음식이었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대중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는 점에 신기함을 느끼게도 한다.


 그렇기에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방문할 경우 에그 타르트의 '원조'라 불리는 벨렘 지구의 제과점 Pastéis de Bélem의 방문은 꼭 필수 코스로써 꼽아지지만 사실 원조가 맞기도 하면서 아니기도 하다.


 이 음식의 탄생 과정을 본다면 위에 언급한 Pastéis de Bélem 제과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16세기 마누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곳은 유럽 최초로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그리고 독재 정권 시절 포르투갈의 가장 대표적인 저항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묻혀 있는 곳으로써 포르투갈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유적지이기도 하다.


 18세기 수도원의 카톨릭 미사를 올리기 직전 지금과 같은 다리미가 없었기에 옷에 풀을 먹이기 위해 계란 흰자가 다량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나 풀을 먹이고 남은 처치 곤란의 노른자들을 이용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 에그 타르트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 당시 수도원에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고 온 수사, 수녀들이 많았기에 그와 함께 넘어온 프랑스 제과 기술이 이에 한몫을 했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이나 대중들에게 이 디저트가 공개되는 것은 사실 19세기에 들어서 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던 시기, 포르투갈 왕족들은 전쟁을 피해 그 당시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이주를 하게 되는데 영국의 도움으로 결국 프랑스군은 격퇴가 되고 브라질은 하나의 독립국으로써 독립을 하는 등의 어지로운 정세 속에 19세기 초의 포르투갈에서는 자유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은 역시나 종교인들이었고 결국 생계를 위해 수도승들이 직접 만든 타르트를 밖에다 파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나 찬란한 종교 문화를 대변하던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재정 문제로 그렇게 문을 닫게 되며 타르트 레시피 또한 설탕 정제 공장에 넘어가게 되는데 그것이 지금 리스본 벨렘 지구의 Pastéis de Bélem 제과점의 초석이 된다. 지금도 주인 가족 외에는 레시피를 모른다고 하니 170년 전과의 같은 맛은 낸다는 점에 줄이 길더라도 한번 즈음은 가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매년 포르투갈에서는 최고의 에그 타르트를 뽑은 경연 대회도 열리는 지라 리스본에 가서 현지인들에게 에그 타르트 맛집을 물어보면 위의 제과점이 아닌 다른 곳을 추천해 주는 곳들도 많다. 

 

 유럽의 미식 역사를 들여다보면 화려했던 귀족 문화에 뿌리를 둔 음식들도 많지만 카톨릭 수도사들이 남긴 유산들 또한 정말 다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마시는 샴페인 또한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최고급 샴페인의 이름이기도 한 카톨릭 수도사 '돔 페리뇽(Dom Pérignon)'이며 벨기에나 독일의 맥주 양조법이 발달한 이유 또한 그 당시의 수도승 덕분 이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다 보면 이런 조리법, 이런 음식은 과연 누가 개발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베샤멜 소스의 베샤멜처럼 이름을 남기고 간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의 이러한 레퍼런스를 남겨주고 떠난 이름 모를 조상들에게 감사함을 남기며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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