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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Feb 28. 2023

베스퍼 마티니, 제임스 본드

조그마한 칵테일 이야기

 셰프라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분주한 디너 서비스를 끝 마치고 얼마 남지 않은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겸 일하는 식당 근처의 칵테일 바로 종종걸음을 옮길 때가 있다. 칵테일의 종류는 사실 너무 무궁무진하기도 하고 만드는 바텐더에 의해 미묘하게 맛이 다른 경우가 많지만 대게 단맛이 두드러지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요즘의 칵테일들은 ‘단맛’이 너무 두드려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아 보통 메뉴판을 보지 않고 클래식한 칵테일을 주문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대게 스카치위스키와 드라이 베르무트 그리고 몇 방울의 비터를 섞어 만든 영국 태생의 ‘로브 로이(Rob roy)’를 주문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하루는 메뉴판에 적혀있던 ‘베스퍼 마티니(Vesper martini)’에 마음이 이끌려 주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칵테일 들은 사실 제대로 된 유래를 알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들어진지 역사가 짧게는 몇십 년에서 200년 가까이 넘은 칵테일 들도 많을뿐더러 관련하여 얽히고설킨 역사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사즈락(Sazerac)’이라는 칵테일의 유래를 살펴본다면 이 음료의 고향은 미국 뉴올리언스이지만 만들어진 것은 프랑스인 이민자들에 의해서인 것처럼 말이다. 초창기의 사즈락은 프랑스가 고향인 ‘코냑’과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를 때 마셨던 역시나 고향이 프랑스인 ‘압생트’를 섞었던 칵테일 이였으나 프랑스 보르도의 포도밭에 전염병이 돌아 포도나무가 전멸했던 시기, 와인뿐 아니라 보르도의 포도를 원재료로 만드는 코냑 또한 생산이 불가능했기에 코냑을 미국산 호밀 위스키로 대체해 만들었던 역사와 같이 비싼 가격만큼 뒷배경도 많은 술이 칵테일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퍼 마티니는 누가 이 음료를 창조했는지 그리고 관련된 영화를 보았다면 참 아련함을 주는 술이 아닐까 한다. 바로 첩보 액션물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007’ 시리즈가 기원이기 때문이다.


 곱상하게 생겼던 이전 제임스 본드들의 외모와는 조금 다른 결에 있다 보니 지금 시점 마지막 제임스 본드였던 ‘다니엘 크레이그’가 배역을 맡기로 할 당시 꽤나 구설수가 많았지만 그의 영국 스파이로서의 첫 작품이었던 ‘카지노 로열’을 떠올리면 한 명의 애주가로서 늘 ‘베스퍼 마티니’와 제임스 본드의 첫사랑의 아련함을 생각해 보게 한다.


 007 시리즈는 영화는 본디 영국의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이언 플레밍에 의해 쓰였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첩보물 시리즈이나 이언 플레밍이 1953년도에 처음으로 썼던 007 시리즈의 데뷔작이 바로 위에 언급한 ‘카지노 로열’이다. 그렇기에 원작 소설 속 제임스 본드는 이제 겨우 스파이로서의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였으며 그의 첫사랑이었던 ‘베스퍼’를 만나게 된다. 


 영화로 돌아와 본드는 영국의 정보국 M16의 지령을 받아 거액의 포커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그에게 자금을 조달하려 영국 재무국에서 파견되어 온 인물이 베스퍼였자 영화가 아닌 소설의 시점으로 본다면 본드의 첫사랑 여자가 된다. 영화 속에서 디테일하게 나오는 장면이지만 포커 게임 중 본드는 바텐더에게 칵테일을 하나 주문하는데 본래 그의 취향인 드라이 마티니를 주문하려다 취소하며 이렇게 말을 한다.


“Three measure’s Gordon’s, one of Vodka, half of Kina Lillet, Shake it over ice, Then add a thin slice of lemon peel (고든즈와 보드카 그리고 키나 릴레를 얼음에 띄워서 흔든 뒤 얇은 레몬 껍질 한 조각을 얹어달라)”


 고든은 영국의 대표적인 증류주 중의 하나인 진(gin)의 브랜드 이름이고 거기다 보드카 그리고 프랑스 보르도에서 개발된 와인에다 오렌지 리큐르를 섞은 키나 릴레를 섞은 것인데 오렌지 리큐르 때문에 원래 맛이 깔끔한 전통적인 드라이 마티니와는 달리 끝맛이 살짝 쓴 칵테일이 된다.


 당연한 결과로 포커 게임에서 본드는 승리하게 되며 본인이 포커 게임 도중 즉석으로 만든 이 칵테일에 ‘베스퍼’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에 베스퍼는 칵테일 이름을 본인 이름으로 한 것에 질문을 하나 던진다


 “Because of the bitter aftertaste? (씁쓸한 뒷맛 때문인가요?)”


 이에 대한 본드의 대답은 “No, because you’ve once tasted it, that’s all you want to drink (아니요, 한번 맛보게 된다면 이것만을 찾게 될 거예요)” 


 그렇게 이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베스퍼는 베니스에서 씁쓸하게 죽음을 맞는다.


 007 시리즈 안에는 술과 관련된 연출들이 참 많다. 본드가 주로 즐겨 마시는 고급 샴페인 볼랭져(Bollinger)라거나 드라이 마티니를 주문할때 늘 나오는 대사 Shaken not stir(섞지말고 얼음에다 흔들어 달라) 등 말이다. 드라이한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면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칵테일 바에 갔을때 첫사랑을 떠올려보며 '베스퍼 마티니' 한잔 해보시는건 어떨까하는 권유를 해보며 오늘의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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