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맛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
부산 자갈치 시장에 들어서면 꼼장어 골목 즉 꼼장어 요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꼭 자갈치 시장뿐 아니라 부산 곳곳에 일명 꼼장어 골목이 있기도 하며 부산의 어느 곳이라도 해변에 밀접해 있는 곳이라면 꼼장어 요리를 파는 곳은 흔히 보이기에 ‘회’ 못지않게 부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해산물 요리가 아닐까 하며 나아가 부산 기장군의 ‘짚불 꼼장어’라는 향토 음식까지 있으니 부산 음식을 이야기하는데에 있어 꼭 언급해야 할 음식 및 식재료가 아닐까 한다.
사실 꼼장어라는 단어 자체도 부산 일대의 사투리 즉 방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울 때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을 보고 꼼장어를 마치 표준어처럼 사용하긴 하지만 원래 명칭은 먹장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부산 음식을 이야기하는 내용인 만큼 단어는 꼼장어로 통일시켜 사용하도록 하겠다. 게다가 이름에 장어가 들어가다 보니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어와 같은 부류의 생물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종의 생물이기도 하다. 이유인 즉 꼼장어는 어류가 아닌 원구류, 턱뼈가 없어 입이 둥근 부류에 속하는 척추동물 이기 때문이다.
신기한 점이 전 세계에서 식품으로서의 꼼장어 소비는 거의 대부분 한국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꼼장어가 숨을 끊어도 계속해서 꿈틀거리는 만큼 힘이 좋아 스태미나 및 원기 향상에 좋다는 미신 또는 인식이 꼼장어 소비의 이유에 힘을 보태주기도 한다. 원초적으로 생긴 외모나 심지어 알 조차도 꽤나 징그럽게 생기기도 한 데다 껍질에서 점액질이 마구 나오기에 생김새에 의해 잘 안 먹기도 하고 처치 곤란한 점액질 때문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비되지 않는데 일본의 극히 일부 지역과 한국에서만 소비된다는 것은 참 특이하게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골뱅이의 대부분이 영국에서 수입되고 있지만 실상 영국인들은 일절 소비하지 않는 것처럼 꼼장어 또한 국내 어획량 만으로는 양이 충분치 않아 근래에 들어 미국 등지에서도 오히려 수입을 하고 있는 점도 재미난 사실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도 꽤나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한데 그 특유의 쫄깃하고 단단한 식감이 재미나기도 하며 맛 또한 구웠을 때 비린내도 없고 굉장히 고소한 편이다. 그렇기에 살아있을 때의 비주얼을 보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꽤나 잘 먹기도 하고 본인 또한 유년 시절 비슷한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도 ‘소주’ 안주로 굉장히 좋다. 보통 껍질을 벗긴 후 소금 간을 한 후 연탄 불에 구워 먹거나 고추 양념을 베이스로 묻혀 다른 야채를 넣고 양념 구이로 먹는 것이 자갈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의 먹는 방법이라면 기장의 경우 ‘짚불구이’라고 하여 짚과 함께 태워 구워 먹기도 한다. 마른 짚이 불에 닿으면 빨리 연소되는 과정에서 꼼장어의 껍질은 불에 타서 벗기기 쉬워지는 동시에 껍질 속 살은 먹기 좋기 잘 익는다고 한다. 실제로 껍질에서 주로 나오는 점액질 때문에 꼼장어가 죽은 상태에서는 껍질을 벗기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짚불구이의 경우 조리 과정에서 껍질을 벗기기에도 쉽고 훈연 향도 줄 수 있어서 요리사의 관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조리 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이 부산을 대표하는 식재료 중 하나인 이 꼼장어 문화가 일제가 남기고 간 문화 중 하나라는 것이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6.25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 문화가 더욱 발전된 것도 있으나 애초에 꼼장어라는 생물을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 일제 강점기였고 당시 그 이유는 식용 보다도 꼼장어 껍질로 만드는 ‘피혁’ 산업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 하였 듯 일본에서 조차 극히 일부 지방을 제외하곤 꼼장어를 소비하는 문화가 그리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지금도 꼼장어 대부분이 부산에서 생산 및 유통되고 있고 부산 곳곳에서도 꼼장어를 파는 식당을 찾을 수 있으나 자갈치 시장과 기장군의 짚불 꼼장어 요리가 유명한 데에는 다 그에 따르는 이유가 있다.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지화시키며 꼼장어 즉 먹장어를 식용이 아닌 공업용 어류로 분류를 시켰다. 이유인 즉 가죽이 부드러우면서 질기다는 것이었고 이를 이용하여 나막신의 끈 또는 일본군 군용 물품을 만드는 데에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 원재료를 주로 잡아 오는 곳이 지금 부산의 동부 해안 기장군이었고 가죽을 벗겨 가공하는 공장은 자갈치 시장 인근에 있었기에 이 두 지역과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피혁 공장을 운영하던 일본인들은 가죽을 벗기고 나면 부산물로서 남게 되는 속살은 먹지 않고 대부분 닭 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즉 일본인들은 식용으로 전혀 사용하지는 않았고 최초의 우리나라에서의 식용은 앞서 언급한 부산 기장군에서 먹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일제가 세운 꼼장어 피혁 공장에서 가죽으로 쓰고 남은 것을 배고파서 구워 먹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기장에서 짚불 구이를 하시는 분의 증언에 의하면 주변에 논과 밭 밖에 없어서 땔감으로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이 짚이었기에 이러한 조리법이 시작되었다고 하며 이 짚불구이를 부산 꼼장어 요리의 시초로 보지만 실제로 일본 음식에는 ‘와리야키’라고 하는 짚불로 음식을 조리하는 조리법이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꼼장어를 먹지 않았기에 와리야키 조리법이 당시의 한국인에게 전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우연히 발견해 낸 조리법이 아닐까 한다.
일제가 남기고 간 꼼장어 피혁 산업은 광복 후에도 계속해서 부산 일대에서 남아 있었으나 90년대 이후로는 자취를 거의 감추게 되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1000만 달러를 수출할 수준이었다고 하니 확실히 먹는 식재료보다는 가죽에 더욱 가치를 두었을 것이라 보인다. 따라서 90년대 이전에는 지금 자갈치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상태의 활 꼼장어를 보기가 드물었다고 하는데 이유인 즉 꼼장어가 잡히면 대부분 가죽 공장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꼼장어 가죽을 벗기는 데에 화학 약품을 사용해 벗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나 이러한 방식으로 처리되고 남은 꼼장어 속살이 식용으로 사용되어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현재 꼼장어 구이 골목으로 유명한 곳으로 자갈치 시장 외에 부전역 부근과 동래시장 그리고 온천장 쪽을 꼽곤 하는데 여기서도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곳이 ‘동해남부선’ 철로와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원재료를 수입하기 이전의 꼼장어는 대부분 앞서 언급한 부산 기장에서 잡히게 되었고 기장에서 철로를 따라 부산 곳곳으로 유통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음식으로서 꼼장어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때로 추정하곤 한다. 옛 자료를 조사해 보면서도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부산의 음식들은 한국 전쟁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참 많다. 다 같은 이유에서지만 부산에 이북을 포함한 전국적인 피난민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당시 피난민들이 가장 모여 살던 곳 또한 지금의 원도심과 자갈치 시장 근처였다고 한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지만 지금도 원도심 쪽에 가보면 오래된 노포 식당 및 향토 음식이 많은 것 또한 이 이유에서 인데 꼼장어 또한 전쟁통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일명 꿀꿀이죽까지 끓여 먹는 상황에 하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떠오르게 되었다고 하며 자갈치 시장에서 버려진 것을 구워 먹거나 이를 파는 난전 또한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자갈치 시장 및 시장 근처의 부평동 시장 일대에 가보면 50년대에 문을 연 꼼장어 식당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대게 꼼장어 요리하면 다들 구이 종류를 떠올리지만 또 꼭 그렇지 많은 않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문화이기도 하고 90년대 초 부산에서 태어난 본인으로서는 본 적은 있어도 먹어본 기억은 없는 음식이지만 꼼장어를 손질하고 남은 내장 등의 부속물로 ‘묵’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보통 묵 종류의 음식을 만들 때 서양에서는 돼지 골수에서 뽑아낸 젤라틴, 동양에서는 해조류에서 추출한 한천 가루를 쓰지만 이 경우에는 꼼장어 껍질에서 나오는 특유의 진액 덕분에 자연적으로 묵이 되는 원리라고 한다. 영국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인 장어 젤리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긴 하나 우리나라 특유의 찍어먹는 초장과 같은 장 문화 덕분에 꼼장어 묵이 더 풍미가 좋다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다. 단 지금은 확실히 거의 보기 드문 꼼장어 요리법이 아닐까 한다.
요즘에는 우리 바다에서 이전에 비해 어획량이 많이 준 것에 가장 큰 이유라고는 하나 꼼장어 원재료의 대부분을 일본 및 미국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때로는 흔히 일본어 단어 ‘아나고’라고 불리는 붕장어 보다도 시세가 높을 때도 있다. 일제의 피혁 산업으로 시작해 구휼식품으로 먹던 재료가 지금 현대에 들어 부산의 향토 음식으로 그리고 높아진 가격을 본다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여기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