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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이 Nov 02. 2021

할머니, 왜 버스를 안 타세요?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는데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집 앞 버스정류장에 서는 3개 노선의 버스를 모두 떠나보낸 할머니 한 분이 기억난다. 푹푹 찌는 더위에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손수건으로 땀을 연신 닦아내시던 모습. 왜 안 타시지? 나는 맞은편 카페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미 한 번 지나간 번호의 버스가 다시 한번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드디어 버스에 타셨다.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상버스를 기다리신 것이다. 그것도 30분 씩이나. 안 타는 게 아니라 못 타는 거였다.




 대중교통 속의 '대중'은 대체 누구인가.

 '대중(大衆)'이라 함은 수많은 사람의 무리를 의미한다. 이는 사전적 정의이나, 굳이 사전을 뒤져보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다들 알 정도로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다.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나 지하철 등의 교통. 바로 '대중교통'이다.


자,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은 지난 1년간 한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그리고 장애인이 탑승하는 걸 몇 번이나 보았는가? 필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건대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오르는 광경을 딱 한 번 보았다. 그나마 서울이라 한 번 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장면 속에는 휠체어에 앉은 사람에게 눈짓으로 불편함을 표하던 타 이용객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내가 있었다.


한국 대중교통 시스템은 세계 최고라 할 만하다. 대부분의 지방 시골마을에도 최소 하루에 한 번은 버스가 다녀간다. 물론 아닌 곳도 있겠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입장에서 보면 배차간격이 너무 넓어서 그렇지, 어쨌든 다니긴 다닌다. 최적화된 지하철 노선과 깨끗한 내부도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에 힘을 실어준다. 그래도 필자는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내가 수십 번 타고 내렸었던 캐나다 시내버스의 환경이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우리나라 버스와 정반대였다. 앞문이나 뒷문이나 계단이 없는 게 대부분이었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탑승하는 승객을 위한 리프트가 앞뒤로 설치되어 있었다. 하루에 최소 두 번은 그 리프트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 사람들은 휠체어 고정을 돕고, 휠체어를 탄 탑승객은 감사인사를 전하는 게 일상이었다.


대중교통의 존재 이유는 교통혼잡과 환경문제 절감에만 있지 않다. 누구나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도록 해주는 데에도 있다. 즉, 이동권의 보장이다. 평소에 이용하던 버스와 지하철 안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과연 '누구나' 쉽게 이용 가능한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지. 그런 면에서 캐나다의 버스는 대중교통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이 갈 길은 아직 멀다고 말한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차이이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
2020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국토교통 통계누리)

 정부는 2007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전국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전환율을 31.5%까지 끌어올리겠다 발표했지만 그 해 말 고작 12%에 그쳤으며, 201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중 41.5%를 저상버스 전환율 목표치로 설정했으나 실제 전환율은 19% 밖에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계획일 뿐이었다. 덧붙이자면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20년 저상버스 도입률은 27.8%에 불과하다.



저상버스 도입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으로 대두되는 가장  부분은 '예산 부족'이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고가 발생한  20년째, 저상버스 도입의 키를 쥐고 있는 기업체는  예산 부족이유로 든다. 이유만 든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니 당연히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차제, 기업체는 언제쯤  시원한 대안을 제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며 누렸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겐 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벅찬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당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간과했던 것들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1분 느린 시계 때문에 지각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분침을 똑바로 하듯, 삐그덕거리는 사회의 일부분을 발견하고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똑바로 하는 것은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끝으로 200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 속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하던 당시 역무원의 안내방송을 적어본다.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무심하고 매정했는지 알 수 있기를 바라며.


"장애인 여러분의 집단 승하차로 인하여 열차가 많이 늦어져서 선량한 시민이 피해 보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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