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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Apr 29. 2024

미안해 사장님

 부쩍 둘째 아이의 말대꾸가 늘었다. 특히 잠과 사투를 벌이는 아침이면 괜한 짜증도 심해졌다. 오늘 아침만 해도 지각할까봐 깨우는 나에게 실컷 성질을 부리다 혼이 났다. 그러고는 발을 쿵쿵 힘주어 걸으면서 억울할 것 하나 없는 일에 제 뿔난 마음을 표현한다. 어이없게도 말이다. 그래도 그 마음이 오래 가진 않는다. 빠르면 등교하기 전 현관 앞에서 일 것이다. 늦어도 하교하고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와 내 얼굴을 마주할 무렵이면 어김없다. 아이는 양쪽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슬금슬금 다가와 은근슬쩍 나를 안으며 젤리처럼 몰캉몰캉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해.” 


  대개는 그 말 한마디에 내 입 꼬리가 씰룩거리지만, 그 어이없던 감정이 채 가시지 않았던 어느 날엔 부러 아이를 밀어내는 몸짓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고집스레 더 엉겨 붙으며 미안해, 사랑해, 소리를 연발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별 수 있나. 못 이기는 척 껴안으며 한때 얼었던 마음을 풀고, 다음에 또 이럴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서로의 새끼 손가락을 건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여섯 살 즈음이었을 게다. 두 살 터울 언니와 투닥투닥 싸우고 나면 언제나 먼저 미안하다 말하는 쪽이었다. 어느 날은 만날 자기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왜 항상 나만 미안해 하냐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너무나 기발해서 한참을 웃었다. “내가 뭐 ‘미안해 사장님’이냐.” 뭐든 많이 가진 사장님처럼 넘치게 미안해거리는 자신을 아이답게 표현한 것이었다. 부루퉁한 아이의 진지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그 말이 얼마나 우습고도 사랑스러웠던지.


  정반대 성향의 큰 아이는 화가 나면 입을 꾹 닫아버리는 편이니 정말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러니 언니랑 싸우면 동생은 늘 안절부절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둘 다 잘 못한 다툼에도 둘의 반응이 참 다르다. 언니는 너와 달리 기분이 풀리려면 오래 걸리니 좀 진득하게 기다려라, 하고 아무리 일러도 둘째는 견디지 못한다. 결국은 먼저 미안해, 하고 손을 내밀고야 만다. 이런 성격이니 어찌 ‘미안해 사장님’이 안 되겠는가.


  다행히 나를 닮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미안해’라는 말을 참 안했다. 아니 못했다라고 해야 할까. 둘 다 일지도 모른다. 나를 실컷 혼낸 날이면 엄마는 속이 터진다고 했다. ‘미안해’ 한 마디면 될 것을 입 꾹 다물고 있다고. 입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안해’ 그 말 한마디 내뱉는 것이 나는 그렇게나 힘이 들었다. 질질 짜면서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으니 그때마다 엄마의 화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싸워도 자존심 때문에 먼저 미안해, 라고 말하는 것이 퍽 어려웠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지 않는 한, 그냥 그렇게 모른 척 시간만 흐르는 것이다. 싸운 친구와 반이 다르면 마주칠 일이 적으니 견딜만했지만 같은 반 친한 친구라면 마음이 지옥이었다. 냉전의 시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나는 친구가 어서 용기를 내주기만 바라고 있었다. 결혼하고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신혼 시절 남편과 싸울 때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더더욱 ‘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한 집에서 냉랭한 분위기로 지내는 것이 괴로울 뿐이었다.


  이런 똥고집쟁이가 ‘미안해 사장님’을 낳다니. 평생을 그렇게 철부지로 살까봐 하늘이 나에게 이 아이를 보내줬을까. 남편과 말다툼을 벌인 다음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뭐 그리 대단한 말이라고, 나서서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살고 있나. 어쩌면 나는 이때까지 먼저 ‘미안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 싸움에서 진 것이라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집안에 감도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없애고 싶고, 가슴에 얹힌 무거운 짐 덩어리 하나를 얼른 내려놓고 싶을 뿐이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나니 ‘미안해’라는 말이 하등 별 거 아니게 느껴졌다. 그래도 얼굴을 보고 말하는 건 아직 어려워서 문자메시지로 ‘미안해’라고 보냈다. 그와 동시에 마음의 짐이 싹 사라졌다. 솔직히 말해서 그 짐을 남편에게 토스한 기분마저 들었다. 먼저 미안해하고 먼저 후련해졌다. ‘미안해 사장님’ 덕분에 이 ‘똥고집쟁이’ 엄마의 마음도 아주 조금씩 넉넉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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