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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보안관 Nov 05. 2020

내가 수능 영어 만점을 받은 이유

나도 반짝이던 때가 있었구나

시골에서 자란 내가 정식 영어 수업을 받은 건 중학교 입학 전 2월이었다.

학교와 집이 멀어서 학원차로 "통학"을 위해 엄마가 학원을 등록해준 것이다.

그 학원은 평상시엔 국/영/수만 가르치고, 시험기간엔 전과목을 다 케어해주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입시학원이었다.


아무튼, 찬바람이 세게 부는 어느 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학원 영어수업시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때 처음 영어 교재를 봤는데, 첫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 I am a student."


그리고 저 영어 문장 밑에 '나는 학생입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알파벳을 알기는 했지만, 영어 읽을 줄도 몰랐고, 영어된 문장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 봤다.

선생님은 무작정. 스펠링을 외우라고 했다.

그리고 난, 뭔가 모를 저 알파벳에 끌려 정말 무작정 외웠다.

학생. 에스 티 유 디 이 엔 티. 학생. 에스 티 유 디 이 엔 티.


딱히 동기는 없었다. 그냥 꼬부랑 글씨를 안다는 것이 똑똑해 보였고, 괜히 소질있어 보이는 것 같은 근자감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인칭 대명사 쪽지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이 마이 미 마인'부터 '데이 데얼 뎀 데얼즈' 까지 뜻과 스펠링을 써야하는 시험.


"다 맞춘 사람만 집에 가는거야.틀리면 맞출때까지."


'하..집에 언제갈 수 있을까. 추운데... 근데 대충 기억은 나는데...'라는 마음으로 죽죽 써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 한 오십명 남짓한 수강생 중에 정확하게 다 맞춘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수업에서 제일 먼저 집에 가게 되었다.


이 작은 사건은 내가 '영어 잘하는 애'로 통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주변 칭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나의 만족감을 위해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고3때까지 영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라떼는의 대명사같은 성문영어. 영어 소설. 영영사전 등등. 영어에 관련해서는 굳이 몰라도 되는 것들을 찾아봤고, 알아야 했다.

리스닝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그 당시 아빠 차로 고등학교 통학을 하면서 오가는 길 내내 모의고사 영어를 반복해서 들었다.


이렇게 공부한 세월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6년차. 대망의 수능을 봤고, 큰 이변없이 영어는 만점을 받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영문과 대신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 길로 나의 영어에 대한 반짝이는 열정과 흥미는 차차 사라져갔다.


공부한 시절까지 포함하면 이십년도 더 된 이 케케묵은 이야기가 도대체 왜 나왔냐고?


조금 과장을 빗대어 표현하면, 스무살 이후 나는 어떤 일에 가슴뛰게 기뻤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영문과 보다는 경영학과가 취업이 더 잘된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이끌려서) 경영학과에 입학을 했는데, 이 때부터 수동적인 삶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대학 수업도 흥미가 없어서 이수해야하는 영역별 최소치만 들었고, 자격증 시험 준비도 그냥 시류에 따라 했다. 경영학과 나와서 그 자격증 따면 먹고 살만 하다는 이유로.

시험은 당연히 떨어졌지만, 십대 시절 나의 혼이 담긴 영어 공부 덕에 토익 하나만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 덕에 쉽사리 입사를 했고, 팀에서도 그냥저냥 월급에 누가되지 않을만큼만 일했다.


물론 수능에서 겨우 한 과목 만점을 받은 게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며, 이슈냐고 반문할 사람들도 있겠다.

근데 그 점수는 누가 시켜서, 대치동에 끌려가서 기계적으로 만들어 낸 점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천재라서 어떤 영역이든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퍼팩트한 결과물을 창출해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계기가 어쨌든, 나는 어떤 한가지를 좋아했고, 무섭게 파고들었던 경험이 있다. 어떤날은 새벽까지 그냥 영어를 읽는 게 좋아서 영자신문과 사전을 펼쳐놓고 신나게 해석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켜켜이 모여 십대의 가장 큰 결과물인 수능의 한 과목에서 빛을 발했던 것이다.


수학이 내 발목을 잡은 게 아니라, 영어가 내 삶이었던 것이다.


요즘 온라인 사업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내가 하는 온라인 사업은 남의 물건을 떼다 파는 것인데, 이게 영 내 심금을 울리지 않는다.

사업이 심금을 울려야 하느냐고. 돈만 벌리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땐 그랬다.

'지금 내가 가릴 처지야? 주문이 들어왔잖아 주문이! 이대로만 가면 소원이 없겠어!'


매출액도 솔찬히 올랐고, 주력상품들도 생길만큼 안정적이게 됐지만 어쩐지 큰 흥미가 없다. 

애초에 남의 물건 떼다 파는 일이 내가 어떤 걸 만들어파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

그래서 진입장벽도 낮고, 조금만 파고들면 직장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돈도 벌 수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조금만 파고 들기' 자체를 하고 싶지가 않다.

남의 물건을 떼다 파니, 나한테 물건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일절 없고, 공급자가 원하는대로만 해야한다.

난 이런 상황이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하다.

(언제는 떼다 팔 물건 못찾아서 잠 못들더니..나란 인간도 참..)


아무튼 나는 내가 만든 무언가를 팔고 싶다. 물건일지 서비스일지 콘텐츠일지.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한테 휘둘려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아졌다.

물론 지금 사업은 사업대로 꾸준하게 해야겠지만, 내 스스로의 가치를 시장에 내다보이고 싶다.


'좋아하는 일과 돈 되는 일 중 어느 것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여러가지 논리적인 이유와 답변들이 많다.

그런데 둘다 경험해 본 바,

'좋아하는 일과 돈되는 일'이 무엇인지 구분하기 전에,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하는지'를 찾는게 먼저인 것 같다.

실제로 나와 반대로 '돈되는 일'을 하다보니 그 일이 좋아지고, 행복해진 사람들도 많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나니, 아이러니하게 머릿 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치만, 가슴뛰던 삶을 살았던 때를 떠올리니 왠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근자감도 살짝 생겼다.


삶에서 반짝반짝했던 시절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인 것 같다.

다시 내 삶이 반짝일 수 있게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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