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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Jan 09. 2024

양말 실종 사건 브리핑 전문.

양말 실종 사건을 맡고.


아내가 인정할지는 미지수지만, 바삭하게 마른빨래를 개는 일을 좋아한다.

순수한 섬유유연제 향이 은은 퍼지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종종 평화로운 무드가 깨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그 일이란 모든 빨래를 개고 나서 양말이 한쪽만 남는 일이 생기는 경우다.


사람의 신체 구조상 양쪽 두 짝이 있는 의류나 물품은 에어팟, 귀걸이, 장갑, 양말, 신발 정도가 있다.

에어팟이나, 귀걸이는 한 짝이 사라지면 즉시 눈물이 흐를 정도의 큰 사건이기에 항시 조심하며 다루고, 내가 만약 에어팟이나 귀걸이 한 짝이 사라지면 인터폴에 수사 요청을 할 것이다.

장갑이나 신발은 한 짝이 사라지면 한 손에만 장갑을 끼고 다니거나, 한쪽 신발만 신고 다니게 되어 주변에서 친절한 시민들이 즉시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양말, 빨래통이라는 혼돈의 도가니에 들어가는 양말은 적지 않은 빈도로 한 짝이 사라진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다시 빨래 개던 자리에서 일어나 빨래통과, 세탁기, 양말통 구석구석 살펴보지만 남은 한쪽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손쉽게 들킬 정도의 각오로 탈출한 양말 한쪽이 아니다.

남아 있는 양말에게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을 심문하고, 마음 같아서는 양말을 거꾸로 뒤집는 고문을 하고 싶지만 양말 족속답게 영원한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다.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오 하늘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그리고 양말은 왜 항상 한쪽만 사라지는 겁니까.

남은 한쪽으로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순간 내게 들려오는 (내) 목소리.


너에게 한쪽만 가져갈 때도 있지만, 두 쪽 다 가져갈 때도 있단다.


아.. 그렇구나.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은 한쪽만 잃어버렸을 때구나.

두 쪽 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두 배로 큰 상실이고, 종종 일어나지만 나를 괴롭게 하지는 않는구나.


나의 특기인 되지도 않는 연결법으로 빨래 개다가 얻은 깨달음을 인생과 연결시켜 본다.

그래서 나는 한쪽만 남은 양말을 ‘미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무 쓸모없는 미련은 망각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

몇 번의 빨래에도 실종된 양말이 돌아오지 않으면 남은 양말 ‘미련’을 쓰레기 통에 버리기로 한다.


미련이 없는 마음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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