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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Apr 03. 2024

파주에서 만난 평화의 재료.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을 찾았다.

 군생활을 마치며 새로운 삶을 파주에서 시작하고 나서의 일이다. 지난 15년간의 군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로 말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병법서에서 유래한 이 격언은 국가가 왜 국방력을 왜 키워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이다. 동시에 전쟁이 아닌, 평화를 염원하기에 성실히 군에 복무했던 나의 논리이기도 하다.

 군대의 마지막 근무지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는 군생활을 마치고 파주로 간다는 내 소식을 듣고 발령도 아닌데 왜 그렇게 위험한 지역으로 가느냐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주는 국경과 맞닿아 있어 군부대와 군인, 민간인 통제구역과 DMZ로 대표할 수 있는 군사도시 중 하나다. 다시 말해 파주라는 지명에는 지리적으로 전쟁을 준비할 수밖에 없어 매일 매시 긴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항상 따라다닌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파주는 ‘평화를 위한 재료들’로 가득한 도시였다. 여기서 평화의 재료란 예술과 출판, 자연과 기술 그리고 사람처럼 평화를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요소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 이러한 요소들은 선택에 따라 증오와 분쟁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파주는 분명 군사도시지만 도시를 만드는데 평화의 재료들을 선택했다. 평화를 원하기에 전쟁이 아닌 평화 그 자체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파주를 돌아다니며 만난 도시 면면의 모습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간이 보유한 지성의 총합인 책들이 정갈히 꽂혀있는 출판문화단지와 일 년 내내 예술문화의 향을 느낄 수 있는 헤이리 예술마을,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DMZ, 임진강과 한강의 하구 그리고 구축된 신도시로 모인 사람들의 활력이 내가 목격한 그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은 평화의 재료들이 집대성하여 탄생한 곳이다. 평화누리 공원은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체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태계 가치를 보존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05년 조성되었다.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기반 위에 세계적인 명소로서의 상징성과 평화의 재료를 활용하여 결국 한반도의 화해와 상생, 평화와 희망을 되찾는 것이 공원의 목적이자 의미이겠다.

 평화누리 공원이 자랑하는 99만여 제곱미터의 넓은 잔디밭을 보자 첫째 아이가 방향 없이 나풀나풀 뛰어다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랜만에 여유로운 마음이 깃든다. 이번 방문에서 새로이 눈에 들어온 것은 공원 곳곳에 세워진 평화를 기원하는 설치 작품들이다. 그중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최평곤 작가의 ‘통일 부르기’ 작품이다. 수천 개의 바람개비 사이로 거인이 서서히 땅에서 솟아나며 나아가는 모습을 대나무와 철근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가까이 다가가 거인이 나아가는 쪽을 바라보니 우리 집에서 반대쪽, 다시 말해 저 멀리 북쪽을 향하고 있다. 최평곤 작가는 작품 의도를 담은 글에서 민족의 통일에 앞서 그에 정당한 부피의 염원을 갖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의 염원을 생각하고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시작하고 또 마쳤다고 말했다. 대립으로 보이지 않던 평화를 드러내기 위해 북쪽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거인의 모습과 작가의 고귀한 의도는 근대사의 파노라마와 맞닿아 장엄하다. 북을 바라보는 대나무 거인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우리에게 묻는 듯 보인다.

 “너희는 평화를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이냐.”

 분단의 위험을 내재한 지역이기에 파주가 외치는 평화의 목소리에는 남다른 호소력이 있다. 긴장을 다루기 위해 다양한 평화의 재료를 이용하는 노력이 곧 거인의 질문에 대한 파주의 대답일 것이다. 이제는 파주와 거인이 동시에 내게 묻는다.

 “그렇다면 너는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이냐.”

 대나무로 만들어진 거인 곁을 아이와 손 잡고 걸으며 대답을 고민한 후 말해본다. 군인이었던 시민이기에 낼 수 있는 목소리로 더 크고 나아진 평화를 외치고 싶다고. 그리고 내게도 있을 평화의 재료를 찾아 아이가 걱정 없이 지낼 미래에 보태고 싶다고. 그래. 이제는 평화를 원하기에 평화를 준비하고 싶다고. 파주가 했던 것처럼,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내 대답을 들은 거인은 여전히 말없이 북쪽을 바라본다. 대신 아이의 웃음이 공원을 따라 널리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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