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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Dec 29. 2023

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동그라미.

지난 3년간 공군대학의 헬스장을 잘 이용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뜨거워지거나, 잡념을 떨쳐야 할 때, 일상에서 생기는 미세한 스트레스들이 먼지처럼 쌓일 때면 이곳에서 땀을 흘리며 무거운 것들을 드는 반복 운동이 도움이 되었다.

군인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곳이다 보니 청소를 하는 인력이 따로 없다.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거나,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청소를 강요하지 않으니 아무도 하지 않는, 그러니 더욱더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이 수북한 먼지로 시각화되었다.

공유지의 비극은 다들 알다시피 개방적인 자원에 개인이 사익에 따라 행동할 시 자원의 고갈을 일으키는 경제 과학적 상황을 말한다.


그러던 와중에 비극을 막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비역 교수님으로 예상되는 분께서 헬스장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시고는 일주일에 한 번은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자고 벽면에 적어 넣으신 것이다.

청소를 한 사람은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 서로에게 알려주자라고 제안하셨다.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52명의 동조인원만 있으면 헬스장은 1년 내내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어 공유지의 비극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나도 언젠가 한번 여기 비극을 막는 운동에 동참하겠다 마음먹었지만, 마음만 앞서던 날만 계속 됐다.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인 것인지 달력엔 두 달간 동그라미 표시가 없이 깨끗했다.


얼마 전 군에서의 출근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드디어 카푸치노 한잔을 들고 점심시간에 이곳으로 향했다.

청소엔 역시 카페인과 음악이 필요하다.

아무도 없는 점심시간의 헬스장에 노동요를 크게 틀고, 정말 많은 먼지를 강력한 청소기로 구석구석 빨아들였다.

내가 본 모습 중 가장 깨끗한 모습으로 만들고, 식은 카푸치노를 넘기며 결국 동그라미를 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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