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한 콘티는 대부분은 해시 태그를 많이 달아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한다. 내가 인스타에 콘티를 올리는 이유는 ‘나는 꾸준히 콘티 작업을 하고 있다!’ ' 난 콘티 작가다!'라고 외치고 싶어서다. 그 밖에의 이유는 잘 그린 나의 콘티를 자랑하고 싶어서다. 인스타에 콘티 그림을 올리면서 일까?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나의 그림 계정에는 콘티 작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팔로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콘티 작가 지망생들의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댓글로 인사를 하거나 인스타 메시지로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만나서 상담을 요청하는 분도 계셨고, 메일로 몇 가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콘티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고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는지? 추천하는 공부 방식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분들의 콘티 그림도 보면서 피드백을 원하기도 했다.
나도 초반에 콘티 작가에게 만남을 요청하였던 기억 때문에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완벽한 개구리보다는 뒷발과 앞발이 생긴 올챙이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나도 콘티 작가를 시작할 때는 어디서 그림을 배우는지, 공부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도 찾기 힘들었다. 콘티 전문 학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난 그분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내가 했었던 연습 방식이나 도움이 되는 사이트를 공유해주었다. 나도 콘티 작가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럽기도 했다
때로는 단순 벌어가는 금액과 돈만 고려하려 콘티작가를 하고 싶은 분들의 질문을 받을 때면, 그 정도의 노력으로 콘티작가를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어떻게 콘티 작가가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특별한 해결책을 줄 수는 없었다.. 콘티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 그대로가 어떻게 보면 정답이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일이 들오고 그 일이 또 다른 일을 만든다’라고 나도 선배들처럼 똑같이 대답해주었다.
콘티 지망생들의 문의는 ‘나는 어느 정도 위치에 와있는 콘티 작가일까?’ 현재 나의 위치를 객관화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핵심적인 광고주, 광고 에이전시, 유명한 광고 프로덕션의 관계망에 들어가 있는 콘티 작가는 아니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B급 프로덕션이나 콘티를 처음 접하는 회사 정도에서 문의를 받아서 일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가 전문 콘티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 한다. 이런 현실을 숨기고 나를 잘 포장하여 콘티로 잘 먹고사는 프리랜서라고 보여주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에겐 콘티계 선배가 한 명이 있다. 그분은 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부른다. 내가 콘티를 처음 시작해서 콘티작가에게 질문을 쏟 아부를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줬던 분이다. 조언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까지 같이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초반에 들었던 조언 중 선배가 해준 말이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어요”라는 나의 말에 그 선배가 한 대답이 잊히지 않는다.
“나도 절박하게 시작했었는데, 이 일이 해이해질 때가 생긴 게 신기하기도 해. 그냥 먼저 일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허세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런 말을 해준 게 아닐까? 사실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어.”
허세가 되지 않기 위한 자세라니 너무나 멋진 말이 아닌가! 감탄이 나왔다. 내가 앞으로의 어떤 자세로 콘티작가를 이어갈지,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분들에게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었다.
앞으로 더 큰 콘티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니면 나 같이 일하는 콘티작가도 있다고 현재의 레퍼런스로 남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콘티 지망생들의 문의나 초기 콘티 작가들과 대화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해주기도 했다.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팟캐스트에서 콘티작가 주제로 녹음한 것을 듣고 어떤 콘티 지망생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정말 콘티 작가가 되고 싶은데 정보가 너무 하나도 없었을 때 저한테는 단비 같은 분이었어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했고, 그분들로 인해 새로운 에너지가 얻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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