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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Oct 05. 2021

아날라로그 세상에서  스마트 세계로

쥐뿔도 없이 아파트에 삽니다.

이삿짐 트럭이 아파트를 차단기를 통과하면서 다른 세계로 입주하는 기분이었다. 유리문만 밀고 뛰어 올라가는 삶에서 아파트 동 호수를 누르고 비번을 눌러야지 거대한 유리문이 열렸다.




운동 삼아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면서 구경했던 각 층마다는 현관문 잠금장치를 지문으로 여는 방식으로 바꾼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내가 가장 최첨단 시스템이라고 느꼈던 아파트 기능 중 하나는 조명이다. 집 안에는 곳곳에 조명을 컨트롤하는 작은 사각 패널이 있다. 이 사각 패널은 각 방문 옆에 달려있다. 사각 패널 밑에는 조명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동그란 버튼이 달려있는데 이 녀석을 스무스하게 누르면 불을 켜고 끌 수 있다. 조명의 밝기는 사각 패널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그란 버튼을 돌리면 조명의 밝기까지 조절이 가능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켰던 스위치와 너무 다른 시스템이었다. 한 가지 더 나를 놀랍게 한 것은 조명의 색감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주황 등에서는 눈이 많이 피로하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다른 스탠드 조명으로 주황빛을 내며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각 패널에 동그란 버튼을 돌리면 화이트 빛에서 주황빛까지 조명의 색감을 나의 감정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화이트와 주황 불 사이의 애매모호한 불빛 색감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라웠다.




빌라에 살때  거실 조명은 4개의 유리 등 안에 전구가 하나씩 들어가 있었다.  전구는 오래되었는지 하나같이 흐릿했다. 어두컴컴한 거실 조명을 답답하게 생각한 건 남자 친구였다. 그때의 남자친구는 현재 나의 배우자이다. 이마트에서 LED 조명 1개를 구입하여 거실 등 교체가 시작되었다. 거실에 있는 책상에 올라가서 유리 등 모서리에 있는 나사를 드라이버로 하나씩 풀고 유리 등을 해체하였다.  너무 오랜만에 여는 유리 등 안에는 각종 죽은 날파리, 파리 등이 쌓여있었다. 사실 난 그들이 유리 등 안에 검은 점으로 보였기 때문에 날아다니다 그 속에 갇혀 죽은 줄 알고 있었다. 그 유리 등을 열기가 두렵기에 전구 교체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각종 시체들을 치우고 난 후 유리 등을 물티슈로 닦으니 누런 유리 등은 흰색 유리 등이 되었다. 오만상을 쓰며 물티슈로 유리 등을 닦아낸 후 불을 다 끄고 두꺼비집도 내린 후 전등을 교체하였다. 다시 불을 켰을 땐 눈이 아플 정도의 밝음이었다. 거실 조명이 LED 전구 1개로도 충분히 밝았다. 그렇게  4개의 전구 중 1개의 전구만 들어와서 얼룩덜룩한 조명으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면 어느 쪽은 너무 밝고 어느 쪽은 그림자가 생겼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 달린 심플한 조명은 마감처리가 잘 되어 있어 각종 시체들이 쌓일 일도 없을 것이다. 유리 등을 열어서 닭이야 하는 일도 없겠지. 하지만 모든 시스템이 스마트 기기로 연결된 기기는 오류가 자주 생긴다. 문 옆에 있어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켰던 스위치는 불을 켜고 끄고에 대한 오류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 주방 불은 밤만 되면 저절로 켜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 집에 귀신이 있나 소스라치게 무서웠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환한 불빛으로 잠이 깨기도 하였다. 이일은 사람을 불러서  기기를 교체하면서 해결이 되었다. 불을 켜고 끄는데도 사람을 불러야 한다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마음과 아날로그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거실 벽에는 갤럭시 탭 같은 메인 패널이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속해있다. 이 탭에는 환기 기능, 메모 기능, 경비실 호출, 엘리베이터 호출, 방문 차량 등록, 난방, 거실 조명, 일괄 소등, 공지사항, 현관, 이웃, 전화, 통화내용, 가스, 도어락, 날씨, 전자 액자, 일정표, CCTV, 주차확인, 전기차 충전, 방범, 출입내역, 스마트 분전반, 스마트 조명, 스마트 콘센트, 원격검침, 에너지 사용량, 모닝콜, 시간 설정, 모바일 기기 등록 등이 있다. 나도 여기 있는 기능을 다 써보진 못했고 참 쓸데없는 기능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조금 사용했던 기능은 도어락 기능이다. 초인종이 울리면 메인 패널에서 누군지 확인한 다음 도어락 기능으로 자동으로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손님에게 가끔 이렇게 문을 열어드리면 현관에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해 놀라워한다. 하지만 역시 얼굴을 보며 직접 열어주는 방식이 손님을 맞이하기 가장 좋은 방식이다. 그 외로 재미있는 기능은 방문자 사진 기능이다. 우리 집에 호출과 초인종을 누르거나 집 앞에 왔다 갔다 한 사람의 사진들이 저절로 찍혀서 기록이 된다. 집에 아무도 없었을 때 누가 우리 집 앞에 누가 왔다 갔는지를 알 수 있다. 결혼 전 오빠가 집에서 집들이를 파티한다고 인천에 내려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 어떤 친구들이 왔는지 방문자 기록 사진들로 알 수 있었다. 불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와이프 몰래 다른 여자친구를 데려오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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