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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에 낚인 템플 스테이

올인클루시브, 템플스테이 (1) - 법륜사

by 북도슨트 임리나
오늘 참가자가 날짜 변경을 해서 여유가 있는데 오실 수 있나요?

토요일 아침 정각 9시에 온 문자메시지를 보고는 당혹스러웠다.

내 머릿 속에서는 어딜? 누가? 예약을? 이런 물음표들만 둥둥 떠다녔다.

다행히 같은 번호로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 이력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스마트폰 기능 덕분에 내가 뭘 예약했었고 누가 날짜 변경을 했고 왜 지금 올 수 있는지 묻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경위는 이러했다.

한달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 그 즘에 나는 '템플 스테이'를 예약했었다.

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발행하는 '예술인활동증명'을 하고 받은 '예술인패스'를 갖고 있다. '예술인패스'를 가진 예술가들은 전국 문화예술기관 관람료 및 생활 속 공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메일로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보내서 여러 가지 소식을 알려주는데 그 중에 '무료 템플스테이'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로 인해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어려움도 있지만 예술인들도 그 못지 않은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마음의 치유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중소기업, 자영업자, 여행관계자, 예술인패스 소지자 등은 무료로 참여가 가능하다. 이 외에 백신을 맞은 대상으로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심지어 동반 1인까지 무료라고.

무엇보다 나는 '공짜'라는 말에 '템플 스테이'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경기도'로 검색해서 집에서 가까운 법륜사를 예약해 두었다. 어떤 역사가 있는 절인지 관심도 없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절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집에서 가기 가까운 곳이라면 한번 가보자 싶었다. 그리고는 바로 코로나 단계가 높아져 템플스테이는 취소가 되었고, 다시 템플 스테이가 재개되는지 찾아볼 만큼 관심도 없이 잊고 있었다. 아마 이 문자메시지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템플스테이'를 경험하지 않은 채 평생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공짜라고 해도 이 문자메시지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공짜라서 덥석 간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 아무리 공짜라고 해도 나의 일정과 의지에 따라 이젠 당장 가겠다고 답을 하기에는 내키지 않았다. 일단 오전에 아이의 스케줄이 있었고 급하게 짐을 싸는 것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템플 스테이'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절에서는 웬지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할 거라는 선엽견 때문에 굳이 내 발로 그 피곤한 일정에 기어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데 참선을 하다가 졸면 등짝을 죽도로 막 내리치는 그런 다소 강압적인 분위기도 연상되었다.(어른인 나도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 미디어가 문제기는 한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선택을 아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이에게 템플 스테이 사진을 보여주고 가겠냐고 물으니 아이가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동반자 1인인 아이가 가자고 하니 마침 토요일 오전을 빼고는 일정이 없으니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이의 결정을 듣고는 요즘처럼 여행이 쉽지 않을 이 때에 '템플 스테이'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간단히 짐을 꾸려 떠났다.

물론 마음 속의 불교라는 벽이 있었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공짜'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절(템플)에 묵어도(스테이) 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도착해서 배정 받은 방을 본 순간 조용히 그러나 와르르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개인 화장실이 딸린 방이라는 것만으로도 템플 스테이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이미 100%를 넘어 서고 있었다. 나는 '템플스테이'라는 이유로 숙소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해인사 템플 스테이 할 때 들은 얘기지만 본래 템플 스테이는 한 방에 여러 명이 머무는 형태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많은 숙소들이 개별 숙박 형태로 바뀌었다고 했다.

숙소 배정을 받고 다음 일정인 '첫만남'이라는 오리엔테이션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늦게 도착해서 어리둥절해 있는 아이와 나에게 정갈하게 다과가 놓여져 있는 개인 찻상을 내주는데 혹시 내가 갈 곳이 맞나 싶었던 마음에서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라고 또 한번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이는 이미 다과상에 놓인 과자를 집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스님의 ppt를 활용한 템플 스테이 소개를 보며 모든 게 '아날로그'일 거라 막연히 기대했던 내가 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스님들도 21세기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고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스님들이 각종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걸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스님들이 승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낯설다. 스님도 최신 유행 기종인 지플립 정도를 쓸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스님의 진행 솜씨에 감탄을 했는데 적절한 유머와 사람들을 배려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템플 스테이를 진행하는 스님은 사람(=중생) 만나는 걸 좋아하고 또 사람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박 2일 동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분이 바로 나에게 그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유정 스님이었다. 어차피 무료라서 인원이 추가되면 번거롭기만 할 것 같은데 따로 신경 써서 문자를 보내주신 정성에 감사했다.


그리고는 다소 이른 저녁이 5시쯤 제공되었는데 불교에서는 공양이라고 하고 그래서 식당도 '공양간'이라고 한다. 절에서는 나도 아이에게는 '공양'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다.

절에서는 채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비건식 부페'가 아닌가. 콩고기로 만든 돈까스 같은 콩까스도 있었다. 밥을 먹는 순간 나의 만족도는 200%로 올라갔다. 보통 호텔에서 조식이 포함되느냐 마느냐 하는데 3끼 포함이라니 이때부터 나는 '올인클루시브'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 후, 저녁 예불, 타종 체험, 다도 체험으로 이어지는 체험은 나보다는 아이가 좋아했고 오랜만에 아이가 즐겁게 체험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새벽 예불이 4시쯤 있다는데 설마 평생 야행성으로 살아온 내가 일어나서 거기 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진짜 나는 새벽에 무언가 홀린 듯이 눈이 떠져 법당에 들어 서고 있는 평소와 다른 내 자신이 되어 있었다. 이거야 말로 의지를 앞설 수도 있다는 환경의 중요함인가.

새벽에 고요한 산사에서 들여오는 북소리, 종소리, 그리고 염불 소리가 듣기 좋았고 그로 인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새벽 시간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제목만 알고 읽지 않았던 '나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밀리의 서재에서 검색해서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어떤 장소에 갔을 때 그 장소나 상황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는 새벽 4시반에 같은 시간을 얘기하는 책을 읽는 평소와 다른 경험을 했다.


잠시 그렇게 누워서 책을 보다가 아침 6시에 아침을 먹었는데 6시에 아침이 이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새벽 4시에 눈을 뜬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작년에 호텔에 갔다가 코로나로 인해 시차를 두고 조식을 먹어야 했는데 늦은 시간 대가 다 마감되어 아침 7시에 아이를 깨워 조식을 먹어야 했던 기억이 나서 까짓 6시에 아침을 못먹으랴 싶었다. 다행히 아이도 눈을 떠서 같이 아침을 먹었다.


그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쉬는 사이 아이는 벌써 절에 익숙해졌는지 혼자 절 마당을 뛰어다니며 잘만 놀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108배는 아이는 절을 하면 목걸이(=염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기꺼이 하겠다고 해서 나는 내 페이스대로 50배쯤 했고 아이는 108배를 끝내 다 하고 염주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신나했다.


마지막으로 '맑은 물 명상'은 적절한 동영상과 주전자와 대접을 이용한 스님의 다소 장엄한 퍼포먼스로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오염된 물이 아닌 맑은 물을 붓는 일'이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 점심 공양까지 하고 올 때의 걱정은 다 두고 아쉬운 마음만 가득 안고 절을 떠나왔다. 떠나기 전에 나는 적은 금액이지만 '불전'을 사무실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공짜라고 정말 한푼도 안 낸다는 것은 왠지 미안함 마음이 들어서였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은 많이 달라졌다. 해외는 일부만 떠날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 되었고 많은 이들이 국내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코로나를 대응한 '호캉스'도 나왔지만 예전의 호텔과는 달리 부페도 제한적이 되었고 수영장 이용도 인원 제한이 있어서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몇 번 가고 말았다.

많은 호텔과 숙소들이 '개별 숙소'를 내세우며 홍보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누리기엔 비용면에서 해외 여행보다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런 이 때에 템플스테이야 말로 1박2일 3끼에(다음 날 점심까지 먹을 수 있으니 석식과 조식, 혹은 조식 정도를 제공하는 호텔보다 한 끼가 더 제공된다.), 스님의 도슨트(절만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니 이런 고퀄의 도슨트가 있을까 싶다.), 각종 액티비티(타종 체험, 다도 체험, 108배 체험 그 동안 체험 여행이 힘들었던 아이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이거야 말로 '올인클루시브' 여행이 아닌가. 더구나 1박 2일 동안 절 안에만 머무니까 코로나 시대에 안전이 보장되는 여행이기도 하다.


물론 템플 스테이는 '불교'의 '절'에서 제공하는 여행이다. 하지만 템플 스테이 자체가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꼭 신자가 아니더라도 체험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나또한 취소자가 있어서 보내온 문자 메시지가 계기가 템플 스테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 두 번째 템플 스테이는 팔만대장경을 보러 '해인사' 템플 스테이를 예약하게 되었다.

2편은 '해인사 템플 스테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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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법륜사 전경, 타종 체험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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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 명상과 108배를 체험하는 아이

p.s: 취소된 사람이 있다며 나에게 당일 문자로 보내주신 유정스님 사진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더 추가 되면 번거로울 텐데도 일부러 문자를 보내주신 마음이 감사하다. 이 문자를 받을 때만 해도 내가 템플 스테이에 빠져 다음 갈 곳을 고민하는 즐거운 걱정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스님, 나중에 스님이 좋아하시는 베스킨라벤스 사갖고 찾아갈게요. 그 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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