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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구봉선
Dec 17. 2024
부모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몇 년 전 시댁은 가족여행을 갔다.
홀로 계신 아버님을 모시고, 작은아들 가족과, 딸 가족이 외각 바닷가로 1박으로 여행을 떠났다.
남편과 난 일이 있어 참여 못했고, 전화로 안부를 전했다.
"오랜만의 나들이니깐 잘 다녀오세요. 애들도 가고 재미있게 보내고 오세요~"
며칠 만에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잘 다녀오셨어요?"
내 물음에 아버님은 떨떠름한 투로 말씀하셨다.
"잘 녀오긴 뭐... 그게 그렇지."
"왜요? 가서 고기도 구워 드시고 바다도 보고 좋았지. 왜요."
"바가다 바다지."
"갯벌도 있었다는데 조개도 잡으셨어요?"
"................."
"오랜만에 자식들 데리고 재미있게 노셨지 뭐..."
"노인이 뭘 하고 노냐. 그냥 짐이나 지키고, 방이나 지키는 게 노인이지."
"?"
"방 지키셨어요? 밤에 고기 구워 드시고 맛있었겠네."
이상한 낌새에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노인은 어디 가면 그렇게 방구석이나 지키는 게 다지."
더 이상 말을 못 붙였다.
말인즉은 다 같이 가도 애들 갯벌 가는데 노인이 따라가서 뭐 하고, 저녁에 고기 구워 먹어도 몇 점이나 먹는다고 거기 앉아 있냐.
여행이 그렇다.
나도 엄마를 모시고 남해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오빠의 추천으로 엄마를 모시고 조카들과 여름에 휴가 같이 보내자란 말에, 바다 근처에 펜션을 잡고 고기며, 야채며, 술이며 다 아이스박스에 준비를 해 갔다.
엄마에게 바다도 보여드리고, 고기도 드셔보라고 나름 준비를 해 갔지만,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담음부터는 너희들만 가라. 너무 힘들다."
띵~~~~
엄마는 준비한 게 없다.
말해서 그냥 몸만 가신 분이다.
펜션에 음식 준비에 하나부터 열 가지 그렇게 나름 편하게 해 드린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니들이나 가라"
좀 서운하게 들렸지만,
웃기기도 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엄마 왜 그렇게 말해?"
"나이 들어 이렇게 따라다니면 니들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고, 늙은이들이 이렇게 돌아다니면 보기도 안 좋아."
물론 젊은 사람들보다 뭘 보려고 해도 먼저 엄마를 생각한다.
계단이 있나, 쉴 곳이 있나, 많이 걸어야 하는 건 아닌지.
구경하는 것도 나이 드신 분이 보실 때 좋은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
나이 드신 분 모시고 가면 우리 또한 진이 빠지게 마련이다.
여수에서 버스를 타고 '돌산'이란 곳을 갔었다.
남자 형제 딱 둘이라며 나를 많이 이뻐하는 오빠 친구는 그 돌산에서 펜션을 했다.
오빠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언니를 소개해서 결혼했고, 그곳에서 부부는 힘들지만 나름 만족하며 운영하고 있었다.
영등포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가면 새벽 5시경에 도착해 첫 버스를 타고 그곳에 들어간다.
가면 방 한 칸을 내어주고 마음대로 하라고 간섭도 하지 않았다.
워낙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곳은 눈만 돌리면 바다였다.
작은 섬이다 보니 섬을 한 바퀴 돌아도 금방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25년 전이라 펜션이 많이 들어서지 않았고, 4~5개가 전부였던 한산하고 이쁜 곳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열면 바다의 수평선이 보이고, 뒷산으로 등산을 조금 하면 '향일암'이 있어 절벽에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저녁이면 맥주 한잔 들고 바닷가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오징어배 불빛을 안주삼아 마시고 했던 기억이 있다.
한번 가면 10일 정도 있었으니 원 없이 바다만 주구장창 봤던 여행이다.
지금도 가끔 그곳을 생각한다.
여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혼자 그렇게 막차를 타고 10일 넘에 바다만 바라보고 온 시간은 지금도 힐링 그 자체였던거 같다.
언제였던가...
아버님은 폴더폰 핸드폰에서 사진을 가끔 보여주신다.
"이것 봐라."
"여긴 어디예요?"
작은 화면에선 낯선 황무지, 숲, 논... 그런 곳에서 아버님은 독사진을 찍으셨고, 그 사진을 보여 주셨다.
"내가 살던 곳인데 여기 집에서 뒷산으로 올라가면 이곳이 있고, 여기 봐. 여기가 니 신랑이 태어난 곳인데 지금은 다 사리지고 없더라."
아버님은 고향을 방문하셨다고 했다.
그곳을 설명하던 아버님의 눈은 과거로 돌아가 계셨고, 입은 그때를 설명하느라 말이 빨라지셨다.
연신 같은 사진을 보시며 다른 설명과 함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셨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셨다.
"뭘 그렇게 봐"
"저 봐봐라. 너무 이쁘지 않니?"
베란다로 밖을 보시는 엄마. 그곳에는 활짝 핀 야광꽃이 있었다.
"저게 야광꽃이야?"
"저게 얼마나 귀한테 친구들이 씨좀 달라고 한다. 예전에 할머니 사시는 곳에도 이것도 심으시라고 꽃씨를 준 적이 있는데..."
엄마는 그 꽃을 바라만 봐도 좋은지 연신 야광꽃의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야광꽃은 밤에도 빛을 내는 꽃이었다.
난 그렇게 꽃을 좋아하지 않아 관심이 없던 터라 엄마가 열심히 심고, 기르시면 그저 "이쁘네" 이게 다였다.
엄마는 내가 욕심내 키우려고 사서 열심히 정말 열심히, 물도 주고 이쁜 말도 해줘도 시들 시들 해지면 그 꽃을 엄마게 준다. 그럼 엄마는 의사처럼 고이고이 다듬어 꽃을 피우신다.
"와~ 저건 뭐야. 이쁘네. 저건 또 언제 샀어?"
"네가 다 죽어가는 거 나한테 갖고 온 거잖아."
"엥? 그게 저거라고?"
"그래 너무 이쁘지!"
"와... 이쁘네~ 저건 내 손에서 볼 수 없는 꽃이야. 엄마 때문에 꽃을 보내."
저마다 삶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살아온 세상이 다르기에 원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다 다를 수 있다.
내가 좋아한다고 상대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난 바다를 보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즐겼고,
아버님은 고향을 좋아하시고 그때를 회상하시는 걸 좋아하신다.
엄마는 꽃을 가꾸고 그 꽃이 이쁘게 피는 과정을 즐기신다.
가만히 생각하면
부모님과의 동반 여행은 어땠을까?
계획을 잡을 때 부모님의 비율은 얼마를 갖고 생각했을까?
그 여행에 부모님은 얼마나 기대를 하실까?
말은 부모님 모시는 효도 여행이라고 해 놓고, 나를 위한 여행은 아닐까?
효도를 빙자한 자기만족이 아니었을까?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갯벌에 가서 조개를 잡는 게 효도일까?
이쁜 꽃을 보는 걸 즐기는 엄마에게 거제도에 있는 '바람의 언덕'에 있는 풍차를 보여주고 싶다고 기어이 산을 오르는 게 효도일까...
'자식이 이렇게 하면 좀 고마워도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피곤한 여행에 데리고 가놓고선 효도했다고 뿌듯해하는 자식에게 부모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뒷방노인 집이 나 지키는 게 편하지."
이 말은 욕이 아니었다.
심적에서 나오는 진심이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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