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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욱 Nov 07. 2022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는 브랜딩

선한 브랜딩이 있을까?


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나의 가치와 존재를 불어넣은 브랜드가 다른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을때 그것이 진짜 브랜딩이 될 수 있을 텐데... 조금 지나친 요구처럼 들리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접근법으로서 브랜드를 만들어 나간다면 브랜딩이란 단순한 마케팅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인 자기정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정말 있는 그대로의 동력에 떠밀려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굉장히 호기롭게 연초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거대한 프로젝트 몇 개를 끝냈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다. 어제 했던 일의 관성에 따라서 오늘을 지탱해 나가는 그 뿐이다. 세상이란게 열심히 살자고 다짐한다고 더 많은 기회가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막연히 더 강해지는 게 아니기도 하지만 적어도 작년에 나는 갈팡질팡 헤메이는 나에 대한 자각은 있었던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이런 위태로움에 익숙해 진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오랬동안 쓰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으면 일상속에서 ‘나'가 점점 소멸해간다. 회사에서는 팀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나의 역할과 능력이 정의내려지고,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는 이미 오래전에 날아가고 없다. 회사 외적으로 나의 구역을 찾아나가려는 시도도 아주 오랬동안 보류되고 있는데, 나는 요즘 진지하게 나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한 편으로는 지금 이런 나의 상태가 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답답하다. 타인들이 가장 멋있게 인정해주는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또 다시 아주 평범하게 서있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서의 나만 남아있다. 더 나를 주장할 아집도, 체력도 남아있지가 않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 지금은 MBTI 라는 손쉬운 인간 카테고라이징 기법이 나와있지만, 사람들의 성향을 엮는 조금 더 현명한 방식은 그들의 습성과 성향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른 것이다. 나는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나아가는 지나치게 깊게가는 성향이 있고, 그러다보니 도달하는 지점들이 대체로 너무 어둡거나 멀거나 뿌옇게 안개가 가득한 곳들이었다. 나와 항해를 함께한 친구들은 그런 어둠속에 비추어서 쉽게 자기를 바라보고 정의내리고 발견하곤 했는데, 나는 그 와중에도 갈피를 못잡고, 조금 더 깊은 어떤 지점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어둠과 안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너무나 쉽게 정의내린다. 나도 한때는, 그리고 가끔은 그런다. 근현대 문학의 한 인간상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자기자신으로 광인으로, 순교자로 바라보는 시선. 세계란 혼란스럽고 한 개인의 존재가 기어가며 살아가기에는 비스듬한 논리로 구성되어 있는 이 사회라는 것이 참 기묘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광인이 될 수 없었다. 어둠과 안개에 비추어 나를 바라보는것이 한편으로는 기만으로 보였다. 나는 무언가 깊게 도달하려하지만 그 종착지는 결코 자기연민이 아니었다. 자기연민은 무의미와 냉소주의보다도 더 독한 염세주의와 환멸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어느 사건들과 마찰, 소음들은 개인에게 실존주의적 태도와 대답될 수 없는 추상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이러한 질문과 요구들에 명쾌한 대답으로 전진해나갈 수 없겠지만, 또한 무너져서도 안된다.

 

세상엔 정말 너무 이상한 일들이 많다. 어제는 을지로의 거리를 걸으면서 오비베어의 시위현수막을 지났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던 노가리골목이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로 가득 차 있었다. ‘힙지로'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매점을 공격적으로 늘려나가는 이런 행태도 마케팅으로, 브랜딩으로 볼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에 정말 많은 브랜드들이 존재하고 브랜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워나가는 요즘 판국에 브랜드의 윤리를 말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적은 것일까.


최근에 가장 많이 드는 생각 바로 이것이다. ‘선한 브랜딩은 존재하는가?’


소위 말해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 전문가들의 강의들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브랜드를 운영함에 있어서 맹목적으로 시장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보다 더 인간적인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더 진실된 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공감하는 바이며 또 그것의 실효성 또한 믿는다. 완전히 생산중심의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이라도 시장과 소비자들과 관계 맺으며 성장해가는 브랜드들은 당장 지금 효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본인들이 추구하는 인간적인(?) 가치를 가져가야 한다. 나는 초반에는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회사를 다녀보니, 사업을 지속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판단들의 연속이다. 그러한 판단들을 100% 지표와 수익성에만 의존하다보면 알게모르게 회사의 판매형태가 굉장히 소극적으로 변해간다. 아니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갈팡 질팡하다가 고객도, 판매자도 왜 이러한 판매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워진다.


다시말해서, 회사의 인간적인 가치관은 브랜드의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판단의 기로에 섰을 때, 중요한 문제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 길잡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브랜딩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브랜딩이라는 게 과연 정말로 진실될 수 있는지, 아무것도 가장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한편으로는 잡탕구리로 섞인 다양한 문화의 복잡성으로 되어있으면서도 거기서 나아가는 방식, 인식, 방법론은 매우 획일화되어있는 경향이 있다. 흔히 생각했을 때 매력적인 브랜드를 스스로를 타자화해서 기존에 없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수행하곤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브랜드들이 스스로 내는 메시지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자기가 아닌 어떤 한 ‘캐릭터'를 수행하는 것을 우리가 브랜딩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자기만에 진짜 가치를 찾고 그것을 남들에게 설득해 나가는 건지가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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