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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잇 Nov 18. 2020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야구의 낭만

스포츠 영화 리뷰, 머니볼(Moneyball)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모든 구단은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강팀과 약팀.이 아니라, 빅마켓과 스몰마켓 즉, 부자구단과 거지구단으로 나누어진다. epl 지난 시즌, 드디어 리버풀이 우승했다. 온 우주가 리버풀의 우승을 막는 듯하더니(심지어 올 해엔 코로나까지) 결국 해냈다. 리버풀은 맨시티와 첼시를 이긴 게 아니라 대자연의 법칙을 이겨낸 듯 한 느낌이다. 실질적인 시즌 최종 멤버라고 볼 수 있는 시즌 중단 직전 3월, epl 구단 연봉 총합(payroll) 순위를 살펴보면 맨시티, 맨유, 리버풀, 첼시가 top4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 네 팀이 결국 최종 1~4위를 나눠가졌다(리버풀, 맨시티, 맨유, 첼시 순으로).


시즌 종료 시점으로 우승팀 리버풀의 연봉 총합은 약 1억 1천만 유로(약 1,450억 원)이었고, 꼴찌팀 노리치시티는 약 1천4백만 유로(약 185억 원) 정도가 된다. 우승팀과 꼴찌팀 선수 연봉 차이가 8배 정도가 난다. 더 놀라운 건 25명 정도로 구성되는 선수들 몸값 차이가 1천억이 넘는다는 거다(내 연봉으로 난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이 정도면 빅마켓과 스몰마켓이 아니라 철기시대와 구석기시대의 전쟁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매 시즌마다 사실상 철기 시대 팀들끼리 우승 경쟁하는 거다.   


epl보다 시장 규모가 더 큰 mlb(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도 비슷하다. 승강제가 없는 이곳에 전통적인 구석기 거지 구단이 하나 있다. 바로 오클랜드 에슬레틱스(Oakland Athletics)다. 이름도 참 촌스럽지. Athletics, 운동선수들이라니. 사실 메이저리그 팀들 이름이 빨간 양말(Boston Red Sox), 하얀 양말(Chicaco White Sox) 뭐 다 그렇다. 여하튼 이 거지 구단, 에슬레틱스가 부자구단들 사이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 열기에 휩싸였던 2002년에 있었던 일이다. 만년 밑바닥을 깔아주는 거지 구단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동화 같은 스토리는 언제나 대중에게 서민적 쾌감을 준다. 2015-2016 시즌 epl에서 레스터시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2002년 에슬레틱스는 아름다운 동화 한 편 써낸 정도가 아니라, 야구계 역사책에 시원하게 한 줄 쫙 그었다. 그 이후로 야구계는 완전히 변했으니까.


이 영화 같은 스토리가 9년 뒤에 진짜 영화가 된다. 머니볼(moneyball). 그리고 이 영화는 ‘명화’가 된다. ‘베넷 밀러’ 감독이 ‘브래드 피트’와 찍었으니까.



영화 머니볼 | 베넷 빌러 감독 | 브래드 피트 주연(2011)


2001년, 에슬레틱스는 구단 운영비가 3배 차이나는 부자구단 뉴욕 양키즈(팀 이름이 미국 놈들..)에게 디비전 시리즈를 내주면서 시즌을 마친다. 그나마 멱살 잡고 팀 끌고 가던 에이스들은 빅마켓 구단에게 다 빼앗긴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 초반에 다음 시즌을 위한 선수 영입 회의 장면이 나온다. 에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몇 있던 에이스 선수들을 빅마켓 구단에 다 뺏기고, 대체 선수 영입하려고 돈 달랬더니 구단주는 돈 없다 그러고,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상태다. 그런데 빌리의 심기보다 더 불편한 건 스카우터 아저씨들의 회의 내용이다. 그들은 선수를 평가하는데 턱이 멋있니 어쩌니, 애인이 못생겨서 자신감이 없느니 어쩌니, 뭐 이런 식의 토론을 한다. 안 그래도 심기 불편한데, 보다 못한 빌리가 한 마디 한다.


“지금 문제가 뭔지는 알고 있는 겁니까?”
“부자구단들이 우리 심장 빼가고 콩팥 빼가고 근데 우린 여전히 돈이 없고,
이 상황에서 지금 선수들 몸매나 논하고 있는 겁니까?”
“이딴 식으로 어떻게 살아남겠다는 거야? 생각을 좀 달리 해야 된다고!”
(We’ve got to think differently!)


하지만 불편한 스카우터 중 일인자로 보이는 형님께서 라떼를 사발로 들이킨다.


“빌리, 우리는 경험과 지혜가 많은 사람들이야.”
“우리가 이 바닥에서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다르게 생각해야 된다고는 했지만, 사실 빌리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난한 구단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리블랜드에 선수 영입하러 갔다가 경제학 전공의 야구 덕후 피터 브랜드를 만나게 된다. 세상은 덕후가 바꾼다지. 이 녀석 심상치 않다. “지혜와 경험이 많다”는 어른들과는 뭔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빌리 빈: Hey.
피터 브랜드: Hello.
빌리 빈: Who are you? (너 뭐야.)
피터 브랜드: I'm Peter Brand. (피터 브랜드입니다.)
빌리 빈: What do you do? (너 뭐냐고.)
피터 브랜드: I'm special assistant to Mark Shapiro. (마크 샤피로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빌리 빈: So, what do you do? (그래서 너 뭐냐고.)
피터 브랜드: Mostly player analysis right now. (요즘은 선수들 분석하고 있습니다..)

빌리 빈: Mm-hmm. Who are you? (후.. 그래서 니가 뭐냐고.)
피터 브랜드: I'm Peter Brand. (피터 브랜드입니다…..)
빌리 빈: I don't give a rat's ass what your name is. What happened in there? (니 이름 따위 궁금한 게 아니잖아. 방금 뭐였어?)


(이 영화의 작품성이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에 브래드 피트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세상을 향해서는 무서울 것 없이 거칠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딸과 야구 앞에서는 그 거친 모습마저 부끄러워하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마초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빌리는 피터를 한 참 겁주고는 지하 주차장으로 불러낸다. 때리려고 한 건 아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속시원히 덕후의 생각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피터는 요즘 야구계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갇혀있다고 일갈한다. 다들 선수를 사려고 혈안이지만, 중요한 건 승리를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이해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구단 운영자들은 선수들을 잘못 판단하고 구단도 잘못 운영하고 있는 거예요.”
“구단주들은 선수를 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단주가 할 일은 선수를 사는 게 아니라 승리를 사는 거예요. 그리고 승리를 사기 위해선 출루를 사야만 하죠.”
“야구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중세시대에 머물러있어요(Baseball thinking is medieval). 다들 쓸데없는 질문만 하고 있죠.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말 하면 완전 병신 취급당할 거예요.”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답게, 피터는 통계적으로 야구에 접근한다. 다들 타자의 외모 따위나 타율에만 관심 갖지만 그것은 승리에 필요한 요소가 아니다. 야구는 구기종목 중 유일하게 공 없이 선수가 어딘가 진입해야 득점을 하는 종목이다. 한 선수가 제아무리 안타를 잘 친다고 해도, 다른 동료의 출루 없이는 절대 점수를 낼 수 없다(홈런 빼고). 피터는 구단주가 할 일이 선수를 사는 게 아니라 승리를 사는 것이며 승리를 위한 출루율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출루율이 높아도 못생기거나 파워풀한 스윙이 없는 선수는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고, 거지 구단이 생존할 수 있는 뭔가 다른 생각을 찾고 있었던 빌리는 선수 영입하러 갔다가 경제학과 출신 야구 덕후를 영입해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단장이라도 구단 운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르게 생각할 필요를 느낀 것은 빌리뿐, 전통과 경험 운운하며 중세적 사고방식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필요를 느끼기는커녕 야구 덕후 피터의 방식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컴퓨터로 팀을 짤 순 없어 빌리, 야구가 숫자나 과학이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었겠지, 우리는 일반인들에게 없는 직관과 경험이란 게 있어”




한 편으로 보면, 머니볼은 우리가 전통과 경험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얼마나 많은 편견에 휩싸여 살아가며, 얼마나 획일화된 사고방식에 갇혀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또 동시에, 변화화 혁신을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사실 혁신이란 게 모두가 알아본 후에나 혁신이지, 그 전에는 바보 같은 생각일 뿐이다. 이 영화의 빌런은 빅마켓 구단도, 구단주도 아니고 바로 구태의연하지만 구태의연하여 아주 강력한 “편견들”이다.


과연 야구는 ‘경험과 직관’의 영역일까. 아니면 ‘과학과 숫자’의 영역일까?


내가 이 영화에서 특별히 영감을 받은 것은, 내가 사로잡혀 있었던 편견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사회가 지나치게 과학과 숫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료를 봐도 일단 통계자료는 뭔가 기분이 나쁘다. 내게 숫자는 굉장히 냉정하고 비인간적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숫자로 판단하거나 규정한다? 난 이 같은 반 인권적 폭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니볼에서 내 뒤통수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빌리가 단지 숫자만 보고 데려온 선수들이 빌리를 존중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장면이다. 그전까지는 누구도 그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까. 어떤 면에서 숫자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숫자는 최소한 ‘악’하지 않으니까.


또 다른 야구 영화 '42’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40년대에, 다저스의 구단주 브린치 리치는 mlb 최초로 흑인 선수를 영입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은 흑과 백이 없어. 녹색일 뿐이지. 달러는 녹색이라고."


참 아이러니하지. 이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때문에 생기는 부조리가 얼마나 많으며. 숫자가 사람들을 비참하게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사회가 악의적인 차별이나 어리석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돈과 숫자는 오히려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판단한다. 얼마나 (상대적으로) 따듯한가. 돈과 숫자는 적어도 차별하거나 편견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학교 공부와 스포츠는 별로 상관이 없고, 그중에서 특히 숫자를 다루는 수학은 스포츠와 전혀 상관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 스포츠는 과학과 숫자를 빼놓고서 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영화 말미에도 나오지만 2002년 에슬레틱스의 반란 이후에 보스턴 레드삭스(빅마켓 빨간양말)는 빌리와 피터의 구단 운영 방식을 도입하고 2004년, 드디어 밤비노의 저주를 깨며 86년 만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만약 이 영화를 학생선수들과 공유하면 수학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딱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역시 숫자에는 별로 끌림이 없다. 나라면 이 혁신의 키로서 숫자보다는 열린 사고방식 즉, 비판적 사고력을 같이 논해보겠다. 사람이 판단력을 잃고 편견에 사로잡히는 일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자연스레 본인의 경험이 절대적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생각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빌리가 수학을 잘하고 통계를 잘해서 에슬레틱스에 혁신을 가져왔을까? 아니다. 지금 뭔가 잘못되었고, 이 문제가 정확히 무엇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심한 경쟁 탓에 다소 왜곡되어있지만, 사실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혼자만의 착각 속에 살지 않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1985년에 유네스코에서 열린 교육 관련 회의 보고서를 보면 교육과 학습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The act of learning, lying as it does at the heart of all educational activity, changes human beings from objects at the mercy of events to subjects who create their own history.”
(학습 활동이란, 모든 교육활동의 핵심으로서, 인간을 사건에 지배당하는 객체적 존재에서 스스로의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적 존재로 바꾸는 것이다.)


epl이나 mlb를 꿈꾸는 우리나라 운동부 문화는 폐쇄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갇혀 있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문화에 오래 머물면, 사고방식이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마치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이거나 절대적인 거라고 착각하게 되고 만다.  


물론, 모두가 꼭 혁신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타인이나 사건에 지배당하며” 살아가서는 안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적 개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 자연스럽게 성취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편견에 사로잡히는 꼰데가 되는 건 금방이다.




너무 멀리 갔나. 다시 영화로.


영화의 엔딩신은 정말 압권이다. 빌리가 딸이 녹음해준 노래를 들으며 운전하는 그 장면. 아무 대사도 없고 그저 도로 소음과 딸의 노래만 들리는 와중에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빌리(브레드 피트)의 표정.. 그 표정에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끌고 온 모든 서사와 감정이, 결론이 담겨 있다. (사실 이 노랫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르겠음이 거느리고 있는 어떤 예감만은 치명적이게도 매혹적이다.)


"You’re such a loser dad."
"You’re such a loser dad."
"Just enjoy the show."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인위적 감동이나 오글거림이라고는 무균실에 세균만큼도 없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묵직한 감동 같은 무언가를 전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더독 효과? 빌리와 딸의 관계? 아니. 진짜 야구에 미친 빌리와 피터, 그 낭만 때문이다.


“It’s hard not to be romantic about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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