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마흔엄마의 초라한 오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반가운 가을비건만, 마음이 반갑지만도 않은 오늘이다. 8살 딸과 4교시 수업이 끝나면 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7개월 임산부 엄마는 이미 번거롭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차키를 챙겨 엘리베이터 공사 중인 아파트 계단을 9층부터 내려가기 시작한다. 다음 주면 공사가 끝나니 그때까지만 힘을 내보자.
성별과 나이가 다른 아이 둘을 키운다. 벌써 엄마력 8년 차지만 갓난아기일 때도, 지금도 여전히 육아는 어렵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40년째인데도 여전히 나를 모르니 아이들을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운 게 당연한 거다. 내가 나로 살기도 힘겨운 인생인데 예쁜 생명체를 책임지려니 더욱 버겁다. 늘 흔들리고, 갈림길에 가련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선택지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판단해 줄 수가 없다. ‘아이만 좋으면 됐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행복한 날이 있는가 하면 아이는 좋은데 나는 마음이 불편한 날도 있고, 늘 만족스럽지 않은 날도 있다. 사실 기쁨과 행복이 가득 차는 날이 많지 않다. 나에 대한 잣대가 엄격했던 만큼 아이들이 커 가면서 자꾸 그 엄한 잣대를 들이댄다. 나나 잘하면 되지, 왜 아이들마저 힘들게 만드는 건지 나를 뜯어말리고 싶은 날이 많다.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다.
좋은 환경, 좋은 것만 주고 싶고 양질의 영양분과 좋은 것만 받아들이며 컸으면 하는 마음. 어릴 땐 좋은 먹거리, 놀거리, 책 등으로 아이들의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면 조금씩 크면서 교육으로 관심이 쏠린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고, ‘잘’ 키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나도 그랬다. 나는 어릴 때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교육열은 첫째를 키우다 식어버린 엄마의 둘째로 자라느라 나는 늘 목말랐다. 그래서 더욱 아이에게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 결핍을 채우다 보니 엄마인 나는 채우면 채울수록 욕심만 더욱 커지고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불러옴을 알아챘다. 어리석었다. 아무리 채워도 그 항아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차고 넘친다고 해도 나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할 거다. 고작 아이는 8살이고, 자기가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좋아하는지 채 느껴보기도 전에 다양한 자극들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왜 좋아하는 걸 찾지 못하는지 답답해하는 나를 한 걸음 떨어져 쳐다보고 있노라니. ‘너 또 한 번 실수하고 있구나.’ 하는 말이 들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늘 선택하고 고르기가 어려웠던 유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도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해야 선택할 수 있는 내가 보인다. 나도 어려웠던 걸 고작 8살인 아이에게 강요하면 어쩌나. 내가 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바람과 함께 아이를 자꾸 밀어낸다. 아이가 가엾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끌어안아주지 못하는 내 마음이 더 가엾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것을 보고 내면아이 치유를 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던가.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면 이것도 저것도 특출 나지 않은 ‘보통의 사람’이라 생각했다. ‘평균’ 정도에서 튀지 않고 머무르며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수 있는 그곳이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안에 숨어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잘하지도, 못 하지도 않은 딱 중간에 걸쳐서 나의 부족한 면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중간 정도면 잘했다고 안도하며 살아온 삶. 그런 삶이 위험하다는 것을 안 것은 내가 서른아홉 살이 되었을 때,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으며, ‘나’를 이해하고 찾아가며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스무 살이 넘어가며 늘 꿈꿔왔던 삶은 두루뭉술하지만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깊고 통찰력 넘치는 멋진 어른.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륜이 쌓이며 인생의 중심을 멋지게 잡고 진짜 듬직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기도 했다. 멋진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나만의 중심을 찾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 혼자 쌓아오던 이상적인 ‘멋진 어른 코스프레’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아이를 혼내고 나의 부족한 면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 하고 있었다. 볼 품 없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를 외치며.
내 감정의 파도를 타다가 아이가 파도에 휩쓸려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오늘. 멋진 어른이 되려면 내 아이부터 잘 돌보자는 마음을 다잡는 하루. 비 오는 날씨처럼 추적이는 마음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