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그리스 신혼여행기
1. 크레타에서는 무엇이든 진해진다.
크레타에서는 무엇이든 진해진다. 음식도, 사람도, 심지어는 알코올 도수까지도. 어쩌면 강렬한 태양과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 탓일 수도 있다. 혹은 외세의 오랜 지배와 그 저항이라는 역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본토와도 결이 다르다. 훨씬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다.
이라클리온 골목 어딘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간 적 있다. 우연한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레스토랑이 만석이었기 때문에, 꿩 대신 닭으로 택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먼저 우와- 감탄부터 나왔다. 나무 식탁. 방석은 염소 가죽으로 만들어 털이 숭숭 나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었다. 그래서 커다란 마당에 천을 대어 지붕 삼았다. 한쪽 화덕에는 핏빛이 도는 고기가 꼬치에 꽂혀 장작 옆에서 구워지고 있었다. 거기서 이미 동네 사람들이 대낮부터 시끌벅적하게 술판이다.
"메뉴판 좀 부탁드려요."
웨이터는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영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큰일이다. 무슨 음식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동안 먹어온 그리스 본토 음식들과 완전히 달랐다. 겨우 현지 음식 이름에 익숙해지려던 차였다. 기본 문제를 풀다가 심화 문제로 넘어간 꼴이었다. 영어로 쓰여있는 설명을 읽어보아도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굶을 수는 없는 법. 웨이터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음식이 나와보니 크레타 음식의 매력을 알겠다. 투박하고 강렬했다. 샐러드는 양젖과 염소젖을 섞어 만든 페타 치즈와 오이가 함께 나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 제우스가 갓난아기 시절 염소젖을 먹으며 자란 곳이 크레타이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걸로 유명하다. 어머니 레아가 몰래 포대기로 쌓아 요정들을 시켜 이 섬으로 보냈다고 한다. 짭조름한 염소젖 치즈를 입에 넣으니 그 신화가 떠올랐다.
다음은 크레타 전통 양구이다. 안티크리스토(Αντικριστ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자그마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기구이 조리법이라고 소개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양을 네 조각으로 자르고 소금에 절다. 그리고 모닥불 주변에 꼬치로 놔두는 것이다. 그러면 열을 받아 고기 그 자체의 소금과 지방으로 요리된다. 몇천 년 전, 고대 그리스 중장보병들은 자신들의 창에 꽂아 요리했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에 맞선 독립군들이 몰래 산에서 구워 먹었다는 전설도 있다. 먹어보니 기름기 없이 바삭한 것이 특징이었다.
마지막으로 압권은 크레타식 파스타였다. 양을 통째로 푹 곤 고기 육수에 생 파스타를 넣어 삶은 요리다. 처음 주문할 때부터 아내와 그 정체가 궁금했던 요리였다. 정작 나와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넓은 대접에 담긴 생면이 담겨있는 줄만 알았다. 포크로 휘적휘적해보니 그릇 아래에 뽀얀 고깃국물이 자작하게 담겨있었다. 간이 배어 있어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바로 그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니 꿀에 푹 절인 과일들을 포함한 디저트를 내온다. 그리고 같이 가져다준 예쁜 유리병에 투명한 액체가 담겨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웨이터에게 다시 이게 무엇인지 물어볼 수밖에. 웨이터는 으쓱- 하더니 라키(rakí)라는 소화제란다. 냄새를 맡아보니 독주다. 다시 이제 이름을 알았으니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포도즙을 가마솥에 끓여서 증류한 알코올로 만드는 술이다. 도수는 40도. 여기 크레타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면, 라키 한잔을 입에 털어 넣고 일어나는 문화라고 한다.
아테네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외가는 크레타였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왔다고 하니 크레타의 결혼식 문화를 알려주었다. 결혼을 한번 하고 나니 전 세계 결혼 문화가 다 궁금하다. 말만 들어도 섬 지역 특유의 끈끈함이 느껴진다. 한 집안에서 결혼식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석한다. 즉, 동네 축제다. 결혼을 하는 집은 잔치이기 때문에 2박 3일 동안 손님을 대접한다. 가이드의 외가 결혼식에서는 참석자가 육백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당연히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이다 보니, 서로 잘 모르는 이들도 있다. 크레타 결혼식 뒤풀이는 술 한잔으로 시작한다. 규칙은 반드시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술 주전자와 잔을 들고 다니며, 인사를 하고 술잔을 건넨다. 술래가 바뀌는 것이다. 그럼 이제 술잔을 받은 사람이 술 주전자와 잔을 받는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술을 권한 사람 말고 다른 처음 보는 이를 찾는다. 그리고 이걸 결혼식 내내 반복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 서로 아는 사이에, 전부 고주망태가 된다.
2. 그리스인 조르바
크레타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그리스인 조르바’ 때문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조르바와 함께 찾아간 섬이 바로 크레타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고향 섬을 배경으로 많은 글을 남겼다. 그렇기에 또한 카잔차키스가 마지막에 묻힌 곳이다. 찾아와보니 선 굵은 작가의 인생과 글이 고향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전까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본 적 없었다. 신혼여행지를 그리스로 결정하고 나서야 관심이 갔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우선 서점에서 관련된 책을 살핀다. 여행 준비도 마찬가지다. 앞서 안내서와 여행기는 물론이고, 관련된 소설과 만화까지 읽어보려 한다. 이번 그리스 여행의 경우 그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워낙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실에 붙어있는 권장 도서 목록을 통해 그 제목이나마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본인들의 삶을 바꿔놓은 책이라고까지 평한다. 그런데도 언뜻 그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서른 살에 접어들어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독서에도 때가 있는데, 그것이 맞았던 것 같다. 첫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준비하는 나이이기에 주인공과 조르바에 빠져들 수 있었다. 더 어렸을 때 읽었다면 오히려 겉멋으로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여행 이전에 소설평을 묻기에, “새신랑이 읽기에는 너무 자극적인 소설이야”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사실 농담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주인공은 서른다섯 지식인이다. 부잣집 도련님이기도 하다. 유학까지 다녀와서 입으로는 늘 민족과 혁명,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친구가 그리스인 동포들을 구하기 위해 캅카스로 같이 떠나자고 말하자, 겁을 낸다. 이에 친구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한다. “잘 있어, 이 책벌레야”
절친이 떠난 이후 주인공은 삶을 궤도를 바꿔보기로 한다. 난생처음 크레타로 가 광산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살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늙은 광부 조르바를 만나게 된다. 조르바 그 자신은 광산 일을 사랑하지만, 광부라는 직업으로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산투리를 치는 음악가도 되었다가 과부들의 연인도 되었다가 심지어는 독립투사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의 마력에 빠져든 주인공은 크레타에서 시간을 보내며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 하지만 이건 꼭 분명히 해둡시다. 내가 기분 날 때만이오. 계산을 분명히 합시다. 만약 내게 강요하면, 난 떠납니다. 이건 분명히 아쇼.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간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오?”
“보소, 자유인이란 거요.”
(그리스인 조르바. 유재원 역. 36p)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빠져든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책벌레’이고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간다. 추상화된 개념들이 너무 익숙하고 편안해 가끔 삶이 삐죽삐죽 튀어나올 때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처럼 스스로 자유롭기를 꿈꾼다. 또 동시에 무언가 삶을 바꿔줄 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길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게 늘 문제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가끔 꺼내 보는 고민이 되었다.
작가 카잔차키스의 무덤에서는 이라클리온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무덤이 위치한 베네치아 성벽은 원래 도시의 안팎을 나누는 기준이었다고 한다. 마치 한양의 사대문처럼. 하지만 이제는 더 거대해진 도시 시가지가 성벽 너머에도 저 멀리까지 뻗어 있었다. 성벽 위로 걸어 올라가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생각 외로 한적하고 조용했다.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작은 공원에 돌로 된 비석과 십자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의 묘비명은 직접 그가 쓴 필기체로 되어 있었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작가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화두가 있다. 카잔차키스에게는 그것은 자유였다. 그가 쓴 다른 소설에서도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영웅 테세우스는 모든 이들과 다른 나라를 노예로 삼는 미노아 왕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자유는 단순히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는 평범한 인간의 삶이라는 유혹에 맞선 예수의 이야기로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에게 자유는 지극히 사적인 문제다.
카잔차키스는 사회주의자였다. 우리나라처럼 반공 독재 국가였던 그리스에서 벗어나 사실상 망명 생활하며 글을 썼다. 그는 동시에 정교회 신자기도 했다. 하느님을 통해 인간이 자유롭게 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그가 죽은 뒤 그의 유해가 성당 묘지에 묻히는 것을 금했다.
그의 기억들과 경험들, 그가 여행하며 머물렀던 곳들, 호메로스, 단테, 붓다, 그리스도, 레닌, 오디세우스 등이 형태를 이루어나가면서, 커다란 외침이 되고 그의 고뇌와 투쟁의 상징들로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망명) 시기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영혼의 자서전’에서 그는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지 않고 승리를 향한 투쟁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평생에 걸친 여정은 오르막길이었으며, 하느님과 구원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오르막길이었다고 고백한다. (같은 책, 역자 해설)
3.퇴사
신혼여행을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고민의 결과였다. 아니, 사실은 고민의 시간은 비교적 짧았다. 용기를 내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신혼여행 시간 동안 나 스스로 들여다보고 결정할 수 있었다. 인생의 전환기에 여행이 있다는 건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잠시 퇴사 고민과 함께 조르바를 떠올렸던 적이 있다. 조르바에게는 노동도 자유 그 자체이다. 노동의 결과가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일을 사랑하고 열중한다. 주인공에게 케이블을 설치하자고 건의하면서 조르바는 일에 대해서 조급해했고 너무 많은 예산을 사용하지는 않는지 걱정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열중할 수 있는지 고민했었다.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에 온 나라가 한 가지 개념에 난리다. ‘가짜 노동’. 방송에서 언급되어 회사에 다시 출근하니 누구나 그 주제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하는 노동이 정말 엄밀한 의미에서 진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일하는 척, 바쁜 척하느라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오히려 현대 사회에는 사무직일수록 노동이란 것이 점차 가짜가 되어간다. 조르바는 주인공을 처음 만나자마자 한 이야기가 자신이 인간이고 자유인이라 말한다. 산투리를 연주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조르바 그의 자유에 오롯이 달린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의문도 든다. 소설은 소설이다. 하지만 도전해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사람이 싫거나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퇴사를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하고 싶어서, 더 ‘진짜’인 일을 하고 싶어서 고민했다. 그렇기에 결정을 내린 이후에 해야 할 일이 뚜렷해질 수 있었다.
여행은 가끔 어떤 풍경이나 기분으로 기억된다. 그리스 여행을 떠올리면 이제 나는 크레타의 그 바닷바람이 기억난다. 기분 내본다. 나 역시 사골국물처럼 더 진해진 것만 같아 여행의 추억을 더 간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늘 아쉬운 것이 여행이지만 크레타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낼 걸 그랬다는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그리스 전국 일주라는 계획에 앞길이 구만리였다.
크레타는 아프리카가 내보이는 유럽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섬이다. 그렇기에 섬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공항은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크레타는 유럽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꿈꾸는 여행지다. 그 모든 이들이 이 섬에서 무언가 인생의 활기를 찾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는 본토로 향했고 아테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예약해 둔 렌터카에 탑승했다. 에게해 섬 투어는 끝나고 이제 본토 여행이다. 외국에서 운전하는 건 처음이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스를 가로지르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이오니아해로 가는 길, 처음 만나는 도시는 필로폰네소스 반도를 대륙과 붙잡아 놓는 닭 목과 같은 길목에 있는 코린토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