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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Apr 25. 2020

 
낙서하듯, 무조건 쓰자

[글쓰기 노트] 백지와 마주하는 공포를 이기는 방법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물건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다.’    


어느 글쟁이가 한 말이다. 이 말에 100% 공감한다. 글을 써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봤으리라 생각된다.    

20년 가까이 글을 써서 먹고살고 있음에도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엄청난 중압감을 느낀다. 특히 독자에게 전달할 ‘새롭고 신선한 그 무엇’ 없이 하얀 모니터를 마주하면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거야’ 하고 무릎을 '탁' 칠만한 기발한 착상, 즉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술이라도 마시며 시인과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여신 뮤즈가 강림하길 기다려야 할까.    

난 이럴 때 무조건 써 볼 것을 권한다. 특히 글쓰기 초보 단계라면 일단 한 번 써보는 게 좋다.    


글이란 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좇아가는 것이라 흔히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글을 좇아서 생각이 발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생각을 불러들이고 흐릿한 기억을 또렷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함 힘이 글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써야 한다. 어떤 글을 써도 좋다. 정말로 쓸 거리가 없으면 낙서를 해도 좋다. 무조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의 주제를 잡는데 필요한 영감이란 것을 얻을 수 있다.    


가능하면 하루도 빼먹지 말고 쓰는 게 좋다. 날마다 쓰다 보면 글쓰기 위해 필요한 논리적 사고나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어휘력도 향상된다. 이 모든 것은 통틀어 ‘글쓰기 근육’이라 표현한 이도 있다. 글쓰기 근육이 발달하면 글쓰기 주제를 잡는데 필요한 영감뿐만 아니라 기획력까지 좋아지게 돼 있다.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를 마주하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데도 ‘무조건 한번 쓰는 게’ 효과적이다. 한 줄, 아니 한자를 써넣은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한 단락을 완성할 즈음에는 글 속에 빠지는 단계인 몰입에 이르게 된다. 마침표를 찍고 글 속에서 빠져나오면서 느끼는 환희, 그게 아마도 ‘백지 공포’와 싸워서 이겼다는 승리감이 아닐는지.    


글쓰기에 제법 익숙한 단계에서도 무조건 써보는 방법이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10여 년 전 한 여성단체로부터 남성의 시각에서 본 페미니즘 운동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쓸 자신이 없다면 완곡하게라도 거절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둥글둥글한 성격인지라 ‘네’하고 보니 골치가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었다.         


가장 큰 난관은 페미니즘 운동에 관해 글을 쓸 만한 지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글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 견해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지식이다. 이것이 녹아 있어야 ‘글’이라 할 만한 게 나오는 것인데 난 그 당시 페미니즘에 대해 무지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인지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처형된 프랑스 여류 작가 ‘올림프 드 구즈’의 희생을 발판으로 촉발된 운동이라는 정도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글쓰기 초보 때처럼 손이 가는 대로 낙서하듯 써보기로 했다. 몇 번을 고쳐 쓴 끝에 완성 할 수 있었다. 머리가 아닌 손가락의 승리였다.    


눈에 확 뜨일 만큼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철학자가 아닌 생활인, 그것도 남성의 시각에서 본 페미니즘에 관한 독특한 관점이 있어 맘에 드는 글이다.


여성이 아닌 남성의 시각에서, 페미니즘을 연구한 학자가 아닌 생활인의 눈으로 바라본 페미니즘 운동은 이런 모습이었다.       

 

통영 박경리 문학관에 전시된, 고 박경리 작가 친필 원고



딸 같은 아들, 아들 같은 딸    


막내라 그런지 올해 일 곱 살 된 아들 녀석 애교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목덜미에 달라붙어 뽀뽀 세례를 퍼부을 때는 이 녀석이 원래는 여자였는데 남자로 잘못 태어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삐죽거리기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누나한테 장난을 걸다가 여의치 않아도 ‘삐죽’, 엄마 목청이 조금만 높아도 ‘삐죽’ 이다.    


눈물도 많다. 눈물의 왕자를 뽑는 경진대회 같은 게 있다면 한번 출전시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텔레비전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예컨대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임팔라가 사자에게 잡혀 슬픈 눈을 껌벅거리는 장면 같은 게 나올라치면, 난 일찌감치 손수건을 준비해야 한다. 아들 녀석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올해 열네 살 된 딸은 사내아이 뺨을 칠 정도로 담대하고 웬만해선 울지 않는다. 네 살쯤 됐을 때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장염에 걸려 죽은 적이 있다. 혹시 충격 받을까 봐 나와 아내는 딸 아이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정작 딸아이는 “다로 이다롱이 죽은 거야? 숨 안 쉬는데”라고 덤덤하게 말한 후 십자가를 만들어 준다며 산으로 나뭇가지를 구하러 나갔다. 물론 울지도 않았고.  

  

이렇게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녀석을 보면 ‘남자답다’라는 것과 ‘여성스럽다’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남자다우려면 우선 눈물이 메말라야 했다. 남자가 울 기회는 평생에 단 세 번뿐이라는 말을 진리인 양 믿고 살았다. 그 세 번은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동안 이렇게 교육받아 왔고 비교적 충실하게 지켜 왔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 봐도 철이 들고 나서부터는 운 기억이 거의 없다. 눈물방울이라도 보일라 치며 대번 ‘사내 녀석이...’ 혀끝을 차는 소리가 들려와서 차마 울 수가 없었다.  

  

 여자가 여성스러우려면 남성이 남자답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절제가 필요했다. 활달해도 안 됐고 자주 웃어도 안 됐다. 활달하면 선머슴아 같다고, 자주 웃으면 웃음이 헤프다는 타박이 들어왔다.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게 ‘페미니즘’ 이다. 페미니즘이 여성들에게 실컷 웃을 수 있는, 마음껏 발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페미니즘은 남녀는 평등하며 본질적으로 가치가 동등하다는 이념에서 출발한 운동이다. 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역할에 변화를 일으키고 여성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듯 사전적 의미만 보면 페미니즘은 분명 여성 권리 찾기 운동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 최초로 남성들에게 자유를 찾아 준 운동이기도 하다.    


아직 여성보다는 남성이 우위에 있는 성이 맞다. 그래서 이득을 보는 것도 있지만, 이로 인한 억압으로 불편한 점도 많다. 대표적인 게 마음껏 울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다. 이 밖에도 ‘남자는 술 잘 마셔야 한다.’,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와 같은 강요된 규범도 남성 개개인을 불편하게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필수적이었고 페미니즘 운동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사람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타고난 본성대로 자유롭게 사는 게 좋다. 감정 샘이 약간만 자극돼도 눈물이 흐르는 사람은 펑펑 울면 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웃는 게 좋다. 이런 기본적인 욕구를 ‘~답다’ 는 말로 억제해 왔던 게 사실은 모순이었다.    


 난 아들 녀석에게 남자다워야 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고 그건 딸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마 큰 변동이 없는 한 앞으로도 아들 녀석은 슬픈 장면만 나오면 눈물을 쏟을 것이고 난 기다렸다는 듯이 손수건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반면 딸은 장부 같은 담대함으로 나를 든든하게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아이를 낳을 때쯤에는 ‘딸 같은’ 이나 ‘아들 같은’ 이란 말이, ‘남자답다’라는 또는 ‘여성스럽다’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이런 말이 사라지는 날,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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