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영화 전체가 아닌 하나의 장면 분석만 다루고 있고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숏 바이 숏 형태의 분석이지만, 모든 숏을 치밀하게 나누진 않았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6번째 장편영화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영화 내내 서스펜스가 사라지지 않는 매우 완성도 높은 장르 영화이다. 특히 움직임이 큰 액션 없이도 대사와 카메라의 움직임, 편집만으로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훌륭하다. 총 5장으로 구분된 영화의 1장(오래전 옛날…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과 4장(OPERATION KINO)에서 특히 이 장점이 극대화되고 있다. 1장에서 별다를 거 없는 대화처럼 보이던 라파디뜨와 한스 란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의 대화는 카메라가 수직 이동하며 마룻바닥 아래 숨어있는 유대인들을 비추는 순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을 내포한 대화가 된다. 4장에서는 스파이와 접선하기 위해 독일군 행세를 하는 아치 히콕스 소위(마이클 패스빈더) 일행의 테이블에 진짜 독일군 장교가 찾아와 함께 게임을 하는 순간, 즐기자고 하는 게임이 목숨을 건 일촉즉발의 게임으로 바뀐다. 이런 식으로 서스펜스를 쌓다가 마지막엔 모든 것을 일순간에 터트리니 영화가 재미없을 수가 없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선 위에 언급한 1장과 4장의 대화부터 총격전까지 길게 이어지는 시퀀스, 그리고 개떼들(바스터즈)을 소개하는 2장(INGLOURIOUS BASTERDS) 시퀀스 등등 고르기 힘들 정도로 좋은 시퀀스들이 많았다. 어떤 것을 분석해볼지 고민이 됐는데 시퀀스 단위보다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인상적인 신 하나를 면밀하게 분석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 신은 5장(거대한 얼굴의 복수)에 등장하며 영화 러닝타임 상 2시간 17분 22초부터 2시간 21분 48초까지 약 4분 26초 동안 진행된다. 자신이 등장하는 전쟁 영화를 보다가 못 견딘 전쟁 영웅 프레데릭 졸러(다니엘 브륄)가 거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쇼산나(멜라니 로랑)가 있는 영사실을 찾아오는 장면이다.
#1 이동하는 프레데릭(뒷모습 -> 앞모습) (지속시간 16s)
처음에는 뒷모습만 보이지만, 영화를 쭉 본 관객이라면 복장과 형태만으로 그가 프레데릭이라는 걸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계단을 올라가는 그의 발걸음이 꽤 당당하다. 이어서 전환된 화면에선 프레데릭의 앞모습을 보여준다. 프레데릭이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걸을 때 주변에 놓인 많은 필름 통들은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이 쇼산나가 있는 영사실이라는 걸 암시한다. 긴장감이 유발되는 음악이 배경에 깔려있다.
#2 쇼산나의 얼굴을 클로즈업 (10s)
거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던 쇼산나는 노크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다. 카메라는 아주 서서히 줌인해 들어가며 그녀의 얼굴을 잡아준다. 그녀의 얼굴엔 순간 당혹감이 스치나 방문자가 프레데릭이라는 걸 안 후엔 결의에 찬 표정을 짓는다. 성가신 프레데릭을 내쫓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음악이 여전히 깔려있다.
#3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쇼산나와 프레데릭 (62s)
프레데릭의 얼굴을 오버 숄더 숏으로 잡고 있고 리액션 숏으로 쇼산나의 얼굴도 오버 숄더 숏으로 바뀐다. 프레데릭이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다음 숏으로 전환되기까지 프레데릭과 쇼산나의 오버 숄더 숏은 총 10번의 전환을 반복한다. 쇼산나의 거대한 복수 계획을 모르는 프레데릭은 시종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쇼산나를 귀찮게 한다. 쇼산나는 이런 프레데릭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까 내내 초조해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정중하게 그를 거절하지만, 계속 성가시게 구는 프레데릭에게 결국 강한 발언을 하고 만다(영웅 대접을 하도 받다 보니 ‘NO’라는 거절의 의미도 잊었나요?). 이는 다음 숏에서 프레데릭이 폭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이전까지 들리던 긴장감을 유발하는 음악은 사라지고 영사기의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며 현재도 영화가 이상 없이 잘 상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문을 밀치고 들어와 대화하는 쇼산나와 프레데릭 (37s)
프레데릭이 문을 밀치고 영사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공간의 이동이 발생한다. 프레데릭은 여전히 오버 숄더 숏으로 잡아주고 있고 리액션 숏인 쇼산나는 단독으로 바스트 숏으로 잡힌다. 프레데릭은 자신을 거절하는 쇼산나에 분노하며 위협적인 태도로 점점 다가오고 쇼산나는 뒷걸음질 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사실 안쪽으로 카메라 이동이 일어난다. 프레데릭의 위협적인 태도에 눌려있는 듯했던 쇼산나는 ‘문 잠가요’라는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 듯한 뉘앙스를 주는 대사 한마디로 둘의 권력관계를 단숨에 바꿔버린다. 열세에서 수세로 전환되는 쇼산나의 변화는 오버 숄더 숏이 아닌 단독 바스트 숏으로 잡히면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더불어 공간이 영사실 안쪽으로 이동하면서 영사기의 필름 돌아가는 소리는 한층 커졌다.
#5 프레데릭과 쇼산나의 대화 (투숏/미디엄숏) (6s)
이번 씬에서 처음으로 프레데릭과 쇼산나가 한 프레임 안에 투숏으로 잡힌다. 숏과 숏이 비슷하게 반복되던 흐름을 깨고 새로움을 준다.
#6 문을 닫으러 가는 프레데릭 (6s)
다시 #4의 구도로 돌아왔다. 프레데릭이 문을 닫으러 가자 쇼산나가 몸을 돌려 무언가를 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7 총이 든 지갑 클로즈업 (1s)
총이 든 지갑이 클로즈업으로 잡히고 이 지갑을 잡는 쇼산나의 손을 보여준다. 상황이 급박한 만큼 매우 빠르게 전개된다.
#8 총을 쏘는 쇼산나와 총에 맞는 프레데릭 (4s)
#4와 비슷한 구도의 공간이지만 숏의 크기와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총을 쏘는 쇼산나는 미디엄 숏이고 총에 맞는 프레데릭은 거의 풀샷이다. 프레데릭이 총을 맞고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질 때 카메라도 살짝 틸 다운하며 쓰러진 프레데릭을 잡아준다.
#9 상황을 확인하는 쇼산나 (7s)
프레데릭을 쐈을 때 총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러 영화관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창문으로 다가가는 쇼산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쇼산나가 이동하는 숏과 창문으로 다가가는 숏이 자연스러운 편집으로 이어졌고 이렇게 중간의 움직임을 생략함으로 쇼산나가 상황을 확인하는 시간을 덜어냈다. 빠른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이라 생각된다. 이어서 영화관 내부와 스크린을 보여주는 숏이 나오고 이내 확대된 스크린 숏이 나온다. 스크린에선 군인들이 총을 쏘고 있고 따라서 총소리도 요란하게 들린다. 프레데릭을 쏘기 위해 발사한 쇼산나의 총소리가 영화에서 나오는 총소리에 제대로 묻혔다는 걸 보여준다.
#10 프레데릭이 신경 쓰이는 쇼산나 (36s)
크게 세 개의 숏이 번갈아 등장한다. 쇼산나를 잡아주는 숏(미디엄 숏-> 바스트 숏으로 형태 변화가 있다)과 쓰러진 프레데릭을 잡아주는 숏(엎드린 채로 쓰러진 프레데릭을 풀샷으로 잡는다), 그리고 스크린 속 영화에서 등장하는 프레데릭을 잡아주는 숏(스크린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형태 변화가 한번 일어난다)이다. 급하게 총을 쏴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쇼산나에게도 프레데릭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었음을 보여주는 숏들이다. 스크린 속에서 고뇌하는 프레데릭을 바라보며 쇼산나는 슬프면서도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프레데릭이 낮게 신음하자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깨닫고 천천히 다가간다. 위험한 상황이므로 확인사살을 하는 게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쇼산나에게 아직 프레데릭을 향한 마음이 남아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때부터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인 ‘Un amico’가 깔리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범죄 영화 <리볼버>(revolver, 1973)에 삽입된 곡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가져와 영화에 쓴 것이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그간 오고 갔던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정리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11 프레데릭에게 다가가는 쇼산나 (투숏/풀숏) (18s)
영화에서 두 번째로 투숏이 나왔고 이번엔 풀숏이다. 쓰러진 프레데릭에게 다가가는 쇼산나를 한 번은 위에서 한 번은 뒤에서 총 2번 잡아주고 있다. 프레데릭에게 다가간 쇼산나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12 프레데릭의 몸을 돌리는 쇼산나 (오버 숄더 숏) (4s)
#11 두 번째 투숏 풀숏에서 클로즈업해서 들어간 오버 숄더 숏으로 둘의 모습을 잡고 있다. 쇼산나는 프레데릭의 몸을 돌리는데 이때 프레데릭은 손에 총을 들고 있고 쇼산나에게 반격의 총알을 발사한다.
#13 총에 맞아 쓰러지는 쇼산나 (풀숏-> 확대) (10s)
쇼산나는 총에 맞고 쓰러진다. 처음엔 풀숏으로 총에 맞는 쇼산나를 보여주는데 빨간 옷에 총알이 맞으며 퍼지는 옷 조각들이 마치 아름다운 장미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랑의 정열을 의미하는 장미를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둘의 사랑이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듯 끝이 났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도 이 숏에서 절정을 맞이하며 감정과 분위기를 강화한다.
#14 총을 들고 있는 프레데릭과 고통에 신음하는 쇼산나 (누워있는 숏) (11s)
누워있는 둘의 모습이 확대된 채로 나온다. 똑바로 누워 총을 들고 있어 머리가 프레임 상단에 있는 프레데릭과 엎어져 쓰러져 고통에 신음하며 머리가 프레임 하단에 있는 쇼산나의 대비를 통해 극적 대비를 준다. 프레임 상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프레데릭이 낮은 곳에 있는 쇼산나를 끝장낼 것을 암시한다. 숏 전체적으로 슬로모션이 걸려있다.
#15 죽음을 맞는 프레데릭과 쇼산나 (누워있는 투숏/풀숏->쇼산나 단독 숏->다시 투숏) (23s)
프레데릭의 총이 한 발 더 발사된다. 총을 쏜 직후 프레데릭은 고개를 떨구며 죽는다. 그리고 이어서 쇼산나도 죽는데 고개를 떨구는 그 과정을 프레데릭처럼 투숏/풀숏에서 보여주지 않고 단독 숏에서 슬로 모션으로 천천히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나치 출신 독일인 프레데릭과 달리 유대인이자 영화를 이끌어 가는 핵심 인물이었던 쇼산나의 죽음에 조금 더 임팩트를 줬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투숏/풀숏으로 전환되고 위에서 찍은 카메라가 점점 줌 아웃되면서 비극적으로 죽은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신분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했던 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장면이 끝이 난다. 장면이 끝남과 함께 엔리오 모리꼬네의 ‘Un amico’도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