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st, 2018 -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더 포스트>는 7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90년대의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2000년대의 <캐치 미 이프 유 캔>, <뮌헨> 그리고 2010년대의 <링컨>, <스파이 브릿지> 등등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실화는 꾸준히 사용되는 소재였다. 그리고 스필버그 감독도 실화를 각색해 연출하는 것에 능하다. 씬과 씬을 후킹(hooking) 하듯이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살려주는 기법적인 부분도 훌륭하지만, <더 포스트>에서 더 돋보이는 것은 ‘실화에서 어떤 부분을 주목해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하는 선택에 있었다. <더 포스트>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 일명 ‘펜타곤 페이퍼’가 ‘뉴욕 타임스’를 통해 미 전역에 공개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실화에서 뉴욕 타임스를 조명하지 않고 뉴욕 타임스 이후 기밀문서를 입수한 당시 중소지역지였던 ‘워싱턴 포스트’가 후속 기사를 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불어 영화는 기밀문서를 입수한 편집국장 ‘벤(톰 행크스)’ 뿐만 아니라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을 공동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남자들이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여자들은 자리를 비켜주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대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뿌리 깊은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선택을 여성인 캐서린이 하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조명한다. 영화의 줄거리를 전체적으로 보면 언론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엔 중소지역지와 여성발행인이라는 키워드가 핵심을 차지하고 있고 영화에선 그 두 모습을 충실하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게 재현한다. 이번에는 그래서 중소지역지와 여성발행인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숏 바이 숏을 진행해보고자 한다. 두 개의 장면을 살펴보는 만큼, 세부적인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보기보단 씬의 전반적인 흐름에 초점을 맞춰서 더 큰 덩어리 단위로 살펴보려 한다.
먼저 중소지역지와 관련된 씬이다. 영화 러닝타임 상 1시간 3분 7초부터 1시간 7분 13초까지 이어지는 부분이다. 기밀문서를 입수한 워싱턴 포스트가 후속 기사를 내기 위해 흡사 전투를 치르는 장면이다.
#1 벤의 집으로 소집되는 사람들 (지속시간 39s)
파란 차에서 워싱턴 포스트에서 일하는 여성 기자 한 명이 내린다. 이어서 들어온 노란 차에선 남자 기자 한 명이 내린다. 둘은 왜 벤의 집에서 모인 건지 의아해한다(사진1). 카메라는 벤의 집 앞까지 걸어가는 둘을 따라가고 그곳에선 벤의 딸 ‘마리나’가 레모네이드를 팔고 있다(사진2). 이어서 택시가 한 대 들어오고 그곳에선 기밀문서를 가진 ‘백디키언(밥 오든커크)’이 내린다. 카메라는 백디키언보다 기밀문서가 든 상자를 프레임의 중앙에 위치할 수 있게 기밀문서 상자가 클로즈업된 상태로 숏을 구성했다. 그리고 백디키언의 발걸음을 따라가다가 여성 기자 앞에서 고정된 프레임을 형성한다(사진3).
기밀문서를 가지고 벤 집에 모인 이 장면에서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건 마리나가 문 앞에서 레모네이드를 팔고 있는 장면이다. 집 앞이나 길거리에서 소년이나 소녀가 레모네이드를 파는 건 미국 콘텐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심슨가족> 같은 만화에서도 딸 ‘리사’가 레모네이드를 판매하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문화적인 차이를 고려하면 충분히 있을법한 장면이지만, 기밀문서를 입수해 벤 집에 모이는 기자들이 주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레모네이드 판매는 다소 튀는 감이 있다. 이에 대해 2가지 정도로 생각해보았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아이들의 레모네이드 판매는 가벼운 용돈 벌이 같은 느낌이 있다. 마리나는 아버지 벤에게서 오늘 사람들이 집에 찾아올 거라는 언질을 들었고 돈을 벌기 위해 레모네이드를 판매하기로 한 것일 수 있다. 이것을 조금 과대 해석해보자면 마리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논리보다 자신의 신념에 기반을 둔 투쟁이 더 중요한 백디키언은 레모네이드를 권하는 마리나를 본 체도 안 하고 바로 벤의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다른 생각으로 레모네이드는 손님맞이용으로 권하는 환영의 음료 같은 느낌도 있다. 기밀문서와 관련된 긴박하고 무거운 상황에서 레모네이드의 이런 가벼운 성격은 영화의 분위기를 덜 무겁게 환기해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2 기밀문서를 개봉하고 작업 시작을 알리는 벤(58s)
기밀문서 상자를 클로즈업하고 묶인 줄을 푸는 것을 보여준다. 기밀문서 상자가 중요하다 보니 개봉 작업을 강조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사용했다. 그리고 상자 뚜껑이 열리고 안의 내용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아래에서 위로 잡아주고 있다. 마치 옹기종기 모여 신생아와 같이 신비로운 것이나 신기하고 진귀한 것을 구경하는 듯한 모양새다(사진4). 이어지는 장면은 기밀문서를 일부 꺼내 한번 쓱 보는 것이다. 그리고 대사를 통해 기밀문서가 총 4000페이지이고 이걸 검토하는 데에만 뉴욕 타임스는 3달이 걸렸다는 것 그리고 후속 기사를 써야 하는 워싱턴 포스트에게는 고작 10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사진5). 모두 우물쭈물할 때 벤은 이것이 절호의 기회라며 열심히 해보자며 문서를 한 움큼 집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앉자마자 펜을 쥐고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꼬는 모습은 무슨 일이 있어도 10시간 안에 문서 검토하고 후속 기사를 내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나타낸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때 가장 지위가 높은 편집 국장인 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즉 이 장면은 이후 워싱턴 포스트가 기밀문서 검토 및 후속 기사 작성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시작을 알린다고 할 수 있다.
#3 문서작업에 열중인 워싱턴 포스트(71s)
벤의 아내인 ‘토니(사라 폴슨)’가 워싱턴 포스트 일행이 작업 중인 방문을 열어젖히면서 시작한다. 이때 카메라는 토니를 쫓아 뒤에서 찍고 있는데,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관객은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사진7). 바닥에 널려있는 페이퍼들과 기자들의 정신없는 티키타카를 통해 현장의 생생함이 전달된다. 카메라는 처음에만 전체를 조망하고 이후에는 티키타카 하는 기자들의 단독 숏들을 나열한다. 주로 한 명이 질문하면 다른 사람이 대답(리액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방 안에 있는 모든 기자가 참여하며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사진8). 더불어 관객이 기밀문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1과 마찬가지로 #3에도 마리나가 레모네이드를 팔러 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사진9). 이는 #1에 나온 모습과 상응하며 정신없는 작업 현장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3에서는 자본주의와 관련한 개그 코드로도 쓰였다. 레모네이드를 한 잔에 25센트에 팔고 있었는데 바쁜 작업 환경 속에 레모네이드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자 아빠인 벤이 두 배 가격인 50센트를 부른다.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짤막한 개그 코드였다. 분석할 씬에선 나오지 않지만, 이 레모네이드 장사를 통해 마리나는 돈을 꽤 짭짤하게 벌었다.
#4 회사의 변호사가 방문하다(77s)
회사의 변호사인 ‘로저 클라크(제시 플레몬스)’가 벤 일행이 하는 작업이 법률에 저촉되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러 찾아왔다. 벤과 인사를 하는 클라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도 재미난 부분이 있다. 바로 딸 마리나가 바쁘게 인사를 나누는 둘 사이를 오고 가는 장면이다. 이때 마리나는 손에 팻말을 들고 있는데 거기엔 레모네이드 가격이 25센트에서 50센트로 수정되어 적혀있다(사진10). 이는 #3의 개그 코드가 이어져서 #4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어서 클라크는 벤 일행이 하는 작업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뉴욕 타임스가 정부와 소송하고 있는 바로 그 기밀문서를 작업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격받은 클라크를 뒤로 한 채 아내인 토니는 벤 일행에게 먹을거리를 대접하고 있다(사진11). #3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토니가 사람 숫자를 세는 듯한 숏이 스쳐 지나갔었다. 그 숏에 대한 리액션 숏으로도 볼 수 있을 장면이다. 토니는 사람들에게 맞춰 먹을거리를 준비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클라크는 벤을 통해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게 정부 기밀문서임을 확인하고는 상관에게 전화하러 나간다(사진12). 이때 벤과 클라크의 첫 만남 때 마리나가 끼어들었던 것처럼 토니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비슷한 구도가 다시 형성된다. 마리나는 클라크에게 먹을거리를 권하지만, 클라크는 손대지 않고 대신 벤이 집어 먹는다. 클라크가 기밀문서라는 골치 아픈 일에 끼기 싫어한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무리가 호의로 권하는 음식을 받지 않음으로 나는 아직 여기 낄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앞서 4개로 분류한 씬들에선 중소지역지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워싱턴 포스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욕 타임스가 먼저 기사를 낸 후 이어서 후속 기사를 냈다고 표현하면 별거 없어 보이지만, 영화를 보면 이들이 소수의 인력과 짧은 시간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최선의 성과를 이룩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여성발행인과 관련된 씬이다. 아주 짧은 씬이지만, 핵심적인 부분을 재현하고 있어서 가져왔다. 영화 러닝타임으로 1시간 44분 18초에서 1시간 44분 53초까지 약 35초간 진행되며 대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뉴욕 타임스의 ‘로젠탈 설츠버거(마이클 스털버그)’ 회장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캐서린이 나오는 씬이다.
#1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캐서린(35s)
수많은 취재진이 마이크를 들이밀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1). 이어서 취재진 앞에 등장하는 인물은 뉴욕 타임스의 로젠탈 회장이다. 이로써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던 인물은 로젠탈이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카메라는 로젠탈의 인터뷰를 집중해서 보여주지 않고 뒤이어 나오는 캐서린에 주목한다. 로젠탈을 잡을 때보다 줌 아웃된 프레임에 중앙은 인터뷰하지 않고 그냥 내려오는 캐서린이 자리 잡고 있고 한창 인터뷰 중인 로젠탈은 오히려 프레임 우측 상단으로 밀려났다(사진2). 모든 취재진이 로젠탈에 주목할 때 영화는 오히려 캐서린을 비추며 대비되는 효과를 주고 영화 속에서 조명하고 싶은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취재진 대신 이동하는 캐서린을 둘러싸고 있는 건 연령대가 다양한 여성들이다(사진3). 캐서린이 걸어가는 모습을 ‘사진2’에서보다 클로즈업해서 보여줄 때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여성들은 마치 여성발행인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캐서린을 응원하고 연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누가 피켓을 들고 서 있다든가 캐서린에게 말을 건다든가 하진 않았지만, 인물들의 배치만으로도 그런 효과를 주고 여성이 목소리 내기 힘든 시대에 주체적으로 소임을 다한 캐서린을 부각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