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감독인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이번에 처음 보았다. <아이다호>나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등등 대부분 이름을 들어본 익숙한 영화들인데 구스 반 산트의 많은 대표작 중에 본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엘리펀트>도 그중 하나다. <엘리펀트>는 2003년에 열린 제56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이름을 날렸다. 이 영화는 1999년 벌어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 끔찍한 소재를 대하는 영화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우선 많은 숏이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고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간다. 이때 카메라는 등 뒤뿐만 아니라, 옆 그리고 정면을 오고 가며 구도를 바꾼다. 비슷하게 롱테이크를 사용하고 카메라가 뒤쫓는 구도를 취하는 감독으로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가 있다. 다만 다르덴 형제는 <엘리펀트>처럼 다각도에서 인물을 쫓지 않고 주로 등 뒤에서 인물을 잡고 정면 숏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다르덴 형제가 이런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정서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의 영화가 아닌 현실을 재현하고 그 속에 관객을 데려와 앉혀 인물과 동일한 체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스 반 산트는 왜 이러한 기법을 썼고 다르덴 형제와 일부분 차이를 보이는 걸까? 구스 반 산트의 롱테이크와 뒤쫓는 카메라는 인물의 행적과 동시에 일어나는 주변 상황 간의 관계를 기록한다. 다르덴 형제처럼 인물의 등 뒤를 집요하게 쫓으며 리얼리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형식적인 기법으로 인물의 행적을 연출하고 있다. 영화 속 주변 상황과 인물들은 때때로 슬로우모션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카메라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패닝(panning)하여 그것에 관객이 주목하게 의도적으로 움직인다. 즉 롱테이크로 길게 보여주고 인물을 쫓아가는 카메라의 구도는 사건이 일어난 날 인물은 무엇을 했고 주변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그래서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목적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선형적인 연대기의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순서대로 기록하는 영화(<밴티지 포인트> 같은)도 아니다. 영화는 각 인물의 행적을 파편으로 쪼갠 다음 마치 콜라주 하듯 영화에 이어 붙여 사건이 일어난 날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그렇게 구성된 이미지는 마지막 무자비한 총질 앞에 난도질당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결말에 해당하는 약 16분 동안의 마지막 시퀀스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번 장면 분석은 바로 이 충격의 시퀀스에 나오는 씬이다. 노란 나시를 입은 흑인 학생 ‘배니’ 등장 씬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롱테이크이고 인물을 카메라가 쫓아가고 있다. 이 장면에서 나는 고전 할리우드의 관습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을 발견했고 나 역시 영화를 보며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진 않을까 궁금해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구스 반 산트는 그렇게 만만한 감독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구도를 아무렇지 않게 파괴하며 관객에서 낯설음을 주고 이 낯설음을 통해 관객이 자신이 기대한 바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던 것이었는지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관련된 내용은 장면을 분석하며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배니 씬이 하나로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총 2개의 장면을 볼 것이다. 하나는 영화 러닝타임상 1시간 8분 48초부터 1시간 10분 32초까지 총 1분 44초 동안 이어지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1시간 11분 45초부터 1시간 12분 35초까지 50초 동안 이어지는 장면이다. 연이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배니의 챕터 타이틀이 뜨기 전(77s)
사진 1 걸어가는 배니. 어둠과 불을 해치며 걸어간다.
많은 관객이 이때가 배니의 첫 등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배니는 잘생긴 네이선과 같이 미식축구를 하는 모습으로 거의 영화 시작 8분경에 이미 첫 등장을 했다. 씬의 시작부터 어둠 속을 뚫고 걸어가는 배니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간다(사진 1 왼쪽). 맞은편에서 도망치는 사람이 달려오고 있는데 배니는 그 사람과 반대로 문제의 근원이 있을지도 모를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뒷모습만 보임에도 움츠러지지 않은 어깨와 당당한 걸음걸이는 그가 겁을 먹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 준다. 어둠 속을 뚫고 가는 모습이 마치 빛을 향해 나아가는 영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어서 복도의 코너를 돌자 불이 활활 타오르는 복도의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도 배니는 멈추지 않고 직진한다(사진 1 오른쪽). 타오르는 불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멈칫거리는 동작 없이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간다. 어둠과 불이라는 시각적, 촉각적 위협을 상징하는 것들을 마주했음에도 거침이 없는 배니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이 친구가 이 끔찍한 사태를 종결할 영웅이 될 수 있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사진 2 탈출을 돕는 배니 사진 3 배니의 챕터 타이틀
계속 걷던 배니가 마주한 것은 탈출하던 ‘아카디아’ 일행이다. 배니는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탈출하던 아카디아를 돕고 다시 돌아선다(사진 2). 분명 탈출구가 눈앞에 있는데 탈출하지 않고 다시 지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후에 배니라는 이름의 챕터 타이틀이 뜬다(사진 3). 영화를 보면 항상 주요 등장인물들은 이런 챕터 타이틀을 중간중간 부여받곤 했다. 배니는 영화 초반에 첫 등장했음에도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타이틀을 얻었다. 이쯤 되면 관객은 그의 영웅적 행위나 부여된 챕터 타이틀을 보고 이 배니라는 인물이 무언가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키게 된다.
#2 돌아 나오는 배니 (27s)
사진 4 돌아 나오는 배니, 그를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
챕터 타이틀이 뜬 이후 배니가 돌아 나오고 있다. 이때는 뒷모습이 아닌 배니의 앞모습을 잡아주며 그가 얼마나 결연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관객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절대 겁먹거나 머뭇거리는 모습이 아니다. 겁먹고 도망치는 사람들은 배니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프레임에 종종 잡힌다. 빠르게 카메라 앞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뒤에서 나타나 앞으로 달려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인물들은 단단한 배니의 태도와 대비되는 효과를 준다.
#3 죽음을 맞는 배니 (50s)
사진 5 배니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계속 걷던 배니는 마침내 사태의 주동자 중 한 명인 ‘에릭’을 마주친다. 에릭은 마침 평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지 않던 교장에 관심을 쏟는 중이다. 배니는 슬금슬금 그의 뒤로 다가가는데 인기척을 느낀 에릭이 돌아서고 망설임 없이 총알을 발사해 배니를 죽인다. 이로써 약 3분 가까이 진행된 배니의 행보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막을 내린다. 총을 맞고 쓰러지며 프레임 아웃돼버린 배니는 그 후로 영화에서도 완전히 아웃된다.
이 부분이 상당히 허무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이유는 할리우드 고전 관습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영웅을 비추는 듯한 주변 설정과 행적은 그간 많은 영웅 영화 속 익숙한 구도와 닮아있다. 게다가 챕터 타이틀까지 부여받고 영화 러닝타임에서 그의 행적을 분명히 조명했기 때문에 관객은 배니가 무언가 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에릭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교장을 구하거나, 혹은 치명상을 입히거나 어떤 유의미한 성과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배니는 에릭의 무자비한 총알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고 만다. 이런 익숙한 구도를 낯설게 만들고 관객의 기대에 배반하는 연출을 통해 구스 반 산트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이 콜럼바인 고교 총기 사건을 소재로 하여 감정과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꾸며낸 연출이 아닌, 감정을 배제한 행적에 기반을 둔 영화를 만들고 있다. 배니의 죽음을 보며 관객은 순간 ‘내가 뭘 기대한 거지?’라고 생각하며 현실에서도 총을 든 사람에게 성급하게 다가갔다간 바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익숙한 구도의 관습에서 벗어나 느껴진 낯설음이 어쩌면 현실의 진실과 더 맞닿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구스 반 산트는 파편화된 인물의 행적들 끝에 비극을 배치하며 감정과 인과 관계를 배제한 채 일어난 사건 그 자체의 진실을 마주하게끔 관객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