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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Dec 07. 2022

모든 이미지에 의도가 있다면

Non-fiction Diary, 2014 - 정윤석

 <논픽션 다이어리>는 한예종 출신의 ‘정윤석’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로 공개 당시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화제작이다. 영화는 1994년 벌어진 지존파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지존파 살인사건만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해 성수대교 붕괴와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 그리고 지존파 멤버들의 사형집행까지 자본주의가 성행한 시대 상황과 연관 지어서 일련의 흐름을 만들었다. 영화는 당시 지존파를 검거했던 형사들과 지존파 멤버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간수, 종교인 등의 인터뷰와 뉴스 보도를 비롯한 아카이빙 자료들을 활용했다. 실제 일어난 논픽션 사건들의 조각들을 모아 일련의 다이어리처럼 구성한 감독의 주관성이 돋보이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논픽션 다이어리>에서 살펴볼 장면은 영화 러닝타임 상 1시간 3분에서 1시간 4분 57초까지의 짧은 장면이다. 지존파 멤버와의 Q&A를 담고 있는데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천사와 죄수, 예수님 등의 실제 동상 이미지가 등장하며 그 위에 자막처리로 Q&A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목소리나, 영상 같은 인터뷰 자료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순 자막으로 다 처리를 해버려서 이것이 취조를 한 것인지 인터뷰를 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그 내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지존파 멤버와 Q&A 형식의 대화가 오고 갔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멤버 중 누가 대답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질문한 것인지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질문과 답변의 배경이 되는 이미지도 지존파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감독이 의도를 가지고 형식적으로 구성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그 의중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나름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이 장면 분석의 전제는 모든 이미지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 첫 번째 문답 (지속시간 18s)    

사진 1, 2

 먼저 사진 1과 같은 천사의 동상이 프레임에 등장한다. 정확히 무엇을 형상화한 동상인지는 영화에서 알려주지 않았기에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날개가 달린 사람은 천사라 통용되기에 천사라고 추측할 뿐이다. 천사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위엄 넘치는 자세와 복장을 하고 있고 한 손에는 칼도 들고 있다.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이 천사를 로우 앵글로 잡았기에 천사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 더 잘 드러난다. 그리고 화면 정중앙에 ‘현재의 심정을 말해보세요’라는 자막이 페이드 인으로 나타났다가 다시 페이드 아웃된다. 천사의 모습은 약 10초간 보여주고 자막은 3초부터 9초까지 6초 동안 등장한다. 이후로도 영화는 배경이 되는 자연 속 동상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자막이 떴다가 사라진 후 다음 컷으로 전환되는 형식을 반복한다. 10초 동안 같은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잘 보면 천사가 들고 있는 칼이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영화에서 사용된 이미지가 정지된 사진이 아닌 촬영된 영상임을 알려준다. 현재의 심정을 말해보라는 자막을 보면 이는 지존파를 취조한 경찰 아니면 취재한 기자처럼 지존파보다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이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배경이 되는 천사의 동상은 이 같은 추측에 어울리는 은유를 담고 있다. 컷이 전환되면 새로운 동상이 나타난다(사진 2).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천사의 두 발에 짓밟혀 온몸이 움츠러든 상태다. 천사가 승리자라면 이 동상은 패배자인 지옥에 갈 죄수를 상징하고 있다. 그의 몸에 둘린 쇠사슬도 죄수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죄수가 처한 상황과 별도로 그의 태도는 사뭇 당당해 보인다. 이어지는 자막에서도 ‘어차피 죽을 각오가 되어있고 지금에 와서 미련과 후회는 없습니다’라는 당당하고 어떤 면에선 초연해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감독은 로우 앵글로 천사를 잡은 것처럼 반대로 죄수를 하이 앵글로 잡아 그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대비해 강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지존파의 답변에서 나타난 당당한 태도가 더 두드러졌다.     


#2 두 번째 문답 (30s)    

사진 3, 4

 이어서 컷이 전환되고 자막 없이 장면을 환기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브릿지 이미지로 성모 마리아로 추정되는 동상이 나타난다(사진 3). 그리고 이어서 다음 숏에서 사진 3과 유사하지만 잘 보면 치마 색이 다른 동상을 비춰준다(사진 4). 마찬가지로 성모 마리아로 추정하는 게 가장 일리 있어 보이지만, 일반적인 수녀 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영화에서 보면 지존파 멤버들은 천주교로 귀의하기도 하고 개신교로 귀의하기도 했다. 이때 그들의 귀의를 도운 수녀님이 인터뷰이로 영화에도 나오는데 이 수녀님을 상징하는 동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자하게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상 위로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한 것에 대해 할 말이 있나요’라는 자막이 뜬다. 이 자막을 통해 이 질문은 지존파의 대장 ‘김기환’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기환은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강하게 지시하기도 했다. 다만 앞선 질문과 추후에 나올 질문의 답변도 모두 김기환이 대답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사진 5, 6

 이어서 컷이 전환되고 무덤과 묘비가 등장한다(사진 5). 묘비에 새겨진 십자가와 세례명을 통해 천주교식으로 매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른쪽 묘비에 쓰여 있는 남평 문 씨와 ‘라파엘’이라는 세례명을 통해 이 무덤이 지존파 중 한 명인 ‘문상록’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계속해서 영상에 등장하던 이 장소가 지존파 멤버들이 묻힌 묘지였다는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그리고 자막으로 ‘지옥에 가더라도 같이 갈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라는 대장 김기환의 대답이 나타난다. 실제로 멤버들이 묻힌 묘지를 배경으로 지옥에 함께 갈 것이라 말하는 장면은 자못 섬뜩하다. 그리고 컷 전환이 되는데 이번에도 브릿지 이미지가 나타난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으로 추정되는 두 인물의 뒷모습을 잡고 있다(사진 6). 장소는 묘지이지만, 곳곳에서 종교의 상징들이 발견되면서 어딘가 숭고하고 신비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3 세 번째 문답 (16s)    

사진 7, 8

 컷이 전환되고 묘지의 전체적인 모습이 나온다(사진 7). 그리고 ‘본 건에 대하여 유리한 증거나 진술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그리고 컷이 전환되고 무덤 옆에 놓인 색색의 헌화를 프레임 중앙에 잡아준다(사진 8). 그러면서 ‘유리하게 하고 싶은 것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라는 대답의 자막이 깔린다. 앞선 문답들에 비하면 자막과 배경 이미지 사이에 큰 연관성을 찾긴 어렵다. 모든 배경 이미지들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배치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굳이 의도를 부여해보자면 묘지 전체적 모습을 배경으로 한 질문은 지존파 전체를 향한 질문임을 의미하고 이어지는 헌화의 클로즈업은 이 질문에 답하는 지존파 개개인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4 마지막 문답 (50s)

사진 9, 10

 컷이 전환되고 장면을 환기하는 브릿지 이미지가 나온다. 사진 6에서 뒷모습으로 확인했던 동상들의 정면 모습이 등장한다(사진 9).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 동상 가운데 아이의 동상도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이 아이는 미래세대(다음 세대)를 대변하는 불특정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이 아이가 어린 예수님이고 뒤의 남녀가 성모 마리아, 그리고 그와 혼인서약을 맺은 목수 ‘요셉’ 일 수도 있다. 컷이 전환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등장한다(사진 10). 그리고 ‘더 할 말이 있나요’라는 자막이 뜬다. 이 문답의 종료가 멀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질문과 십자가 위에서 최후가 머지않은 예수님이 모습이 묘하게 일치된다.  

   

사진 11, 12

 이어서 컷이 전환된다. 앞서 본 예수님의 모습보다 좀 더 먼 거리에서 사선 각도로 찍고 있고 그 옆에 감시카메라(CCTV)가 프레임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사진 11). 그리고 자막으로 ‘세상을 두려움 없이 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뜬다. 사실 예수님 옆에 CCTV는 미관상 이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각도로 CCTV가 안 보이게 촬영할 수도 있었다. 굳이 프레임을 차지하게 내버려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도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CCTV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것이지만, 감시와 처벌을 연상시키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CCTV를 설치한 주체는 정부이다. 즉, 이런 CCTV의 정면에서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되지 말고 영상에서 담아낸 것처럼 CCTV 사각에서 세상을 두려움 없이 살라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컷이 전환되고 자막으로 처리된 문답 장면도 끝이 난다. 마지막 숏은 묘지의 전경이다(사진 12). 사진 1, 2의 천사와 죄수 그리고 사진 10, 11의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동상들이 묘지 앞쪽에 배치되어있고 무덤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전체적인 윤곽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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