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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Apr 18. 2020

엄마에게도 독서모임이 필요해

'엄마들의 꿈을 가꾸는 독서모임'을 만들기까지

  

  내 인생 전반을 돌이켜 봤을 때, 책(공부 책 말고)을 가장 많이 읽은 기간을 꼽으라면 단연 육아 기간 동안이 아닐까 싶다. 출산도 육아도 처음인 내가 아이를 안고 도무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아이를 너무 잘 키워보고 싶어서,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궁금해서, 집 안에서 세상과의 연결 통로를 찾아보고 싶어서, 아이 때문에 내려놓았던 일들에 대한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어서, 책마저 읽지 않으면 그냥 ‘나’를 통째로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무언가 처음 접해서 잘 모르는 것이 있거나 어떠한 고민이 생길 때, 누군가에게 물어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책을 주로 찾아보는 편이다. 내가 찾는 그 답은, 다른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책은 나에게 해결책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 주기도 하고, 중요한 생각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며, 나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 실마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나의 생각과 고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문장을 책에서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 희열을 맛보고 나니 더더욱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으며 나와 같은 생각에 공감하고 위로받고, 또 힘을 얻으며 문제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가곤 했다.



  그런데 혼자서 책을 읽으니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자주 들었다. 책을 읽고 공감하고 힘을 얻고 답을 얻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것이 너무 빨리 잊히고 ‘실행’으로 잘 옮겨지지가 않는 것이다. 책을 읽기는 하는데 자꾸 증발되어 버리는 느낌. 필사도 해보고 간단한 리뷰를 써 보기도 하면서 나름의 노력을 해보았지만, 혼자서 하니 꾸준히 지속하기도 힘들뿐더러 그 아쉬움이 쉬이 채워지지가 않았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을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깝고 누군가에게 마구 쏟아내고 싶은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신랑도 독서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공감과 피드백 없는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힘만 빠졌다. 책에서 이런 부분이 너무 공감되고 좋더라고 이야기하면 “맞아 나도 그래” 하며 함께 맞장구쳐 줄 사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옥같은 부분을 먼저 발견하여 알려주고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 함께 목표를 세우고 격려해가며 독서에 대한 실천 의지를 함께 다져갈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매우 절실해졌다.



  그래서 독서모임에 대한 열망이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이가 둘씩이나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지 않았던가. 둘째가 4살, 막내가 14개월쯤 되던 무렵이었으니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독서모임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다 커버릴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집에서 잘 놀던 아이들을 엄마 독서모임 하겠다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없으면 내가 직접 만들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지역 맘 카페에 모집 글을 올렸다. 사실 독서모임 자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신청자가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혼자 책 읽기 외로우시죠?
우리 함께 읽어요.
엄마들의 꿈을 가꾸는 독서모임,
엄꿈독 회원을 모집합니다.
아기 동반 가능합니다.
아기 때문에 카페가 힘들면
저희 집에서라도 모여요.


하고 글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꽤 좋았다. 모두 8명이 모집되었고, 우리 집에서 첫 모임이 시작되었다. 100일 된 아기를 안고 온 엄마가 둘이나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갈증과 열망들이 모여 <형식 없는, 비공식적, 아기 동반 가능한, 편안한 분위기의> 엄마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고, 아이들이 곁에서 왔다 갔다 하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모임을 진행했다. 발제자도 없고 발제문도 없었으며, 특별한 형식도 없고 과제도 없었다. 그저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했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육아에 전념하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런 만남에 얼마나 굶주렸던가. 아이 장난감 이야기, 시댁 이야기, 남편 이야기 등의 소모적인 이야기들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오직 나’의 이야기들이 모이는 시간.



  ‘내 꿈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의 꿈은 무엇 인지, 나는 어떤 성향이며 어떤 점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기쁘게 하는지, 어떤 아픔을 품고 살아왔는지’와 같은 이야기들이 책 이야기와 함께 술술 풀어져 나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 당면한 문제들의 실마리가 자연스레 풀리기도 했고, 이유 없이 답답하게 짓누르던 묵은 체증이 가시기도 했다. 한 번 읽고 스치듯 잊혀버릴 이야기들이 이  곳을 거치고 나면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 마음을 적셨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존재가 존재로서 만나 자신을 쏟아내고 또 위로받는 시간, 그 시간이 우리에겐 가뭄에 단비처럼 달콤한 힐링의 시간 그 이상이었다.



  그때 용기 내어 모집했던 독서모임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간 복직과 이사 등으로 멤버가 조금씩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엄꿈독은 여전히 엄마들 곁에 굳건히 존재한다. 책 모임을 원하며 그리워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 반갑고 기쁘다. 더 많은 엄마들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아이가 있더라도 용기 내어 함께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 집 안에서 지쳐가던 마음, 독서모임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어 또다시 그 에너지를 가정과 세상으로 쏟아 주었으면 좋겠다. 책과 함께 꿈을 펼치고 행동하며 성장해가는 엄마들이 우리의 가정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보다 더 아름답게 가꾸어 갈 것을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책을 권하고 함께 읽어보자고, 이 좋은 걸 함께 나누고 실천해보자고, 그렇게 외치고 다닐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아주 잘한 일 중에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엄마들의 독서모임을 만든 일이다.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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