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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학관 Jan 19. 2020

게임 스토리텔링의 미개척지

비선형적 구조 속에 담는 선형적 드라마는 어떤 모습일까?

TUN: The Shandiciation of Fallout, MrBtongue


"폴아웃의 섄디화 (The Shandification of Fallout)"라는 게임 스토리텔링에 대한 흥미로운 동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섄디화'라니, 유추할 수 조차 없는 신기한 단어인데, 이것이 <폴아웃>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선 섄디화라는 단어는 이 동영상의 제작자 MrBtongue이 만든 용어이다. <트리스트람 섄디>라는 소설의 제목을 본떠서 만든 신조어라고 보면 되겠다. 섄디화가 의미하는 것을 표출하는 문학적 용어로는 아무래도 의식의 흐름 기법(streams of consciousness)이 가장 가깝겠지만, 섄디화라는 용어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고, 섄디화라는 단어에 내재된 구조적 특성이 더욱 뚜렷하기 때문에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도록 하겠다. 여기서 트리스트람 섄디의 소개:


트리스트람 섄디는 영국 작가 로렌스 스턴이 1760년대에 쓴 소설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을 인용하자면, 트리스트람 섄디는 "짜인 줄거리 없이 소설 중간에 작가의 서문(序文)이나 기묘한 도표가 삽입되어 있는 파격적 양식의 작품으로, 최초로 의식의 흐름을 소설 기법으로 이용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소설의 내용이 전통의 선형적(linear) 구조를 따르지 않고, 멋대로 이곳저곳으로 작가의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골든 레트리버 강아지가 A에서 출발하여 D라는 목적지로 가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거쳐야 할 B와 C라는 지점을 무시하고 지나가다 발견한 풀꽃이나 날아가는 나비를 쫓는 등 랜덤한 지점을 찍으며 사방을 마음대로 헤매다가 어느 순간 D에 도착하는 것이다.


MrBtongue의 섄디화 다이어그램을 살펴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된다.



일반적인 스토리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A라는 사건을 시작으로 BC로 이어져서 결국엔 D라는 결말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들은 어째서 이렇게 진행이 되었는가?라고 고대 그리스 문학가에게 물어본다면, 그는 '운명'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문학가의 시선에서 볼 때 사건의 흐름은 하늘이 정해주는 어떠한 뜻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사건의 과정을 18세기 계몽주의자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훗날 현실주의(realism)의 기반을 마련할 학파답게 아마 '인과관계'로 인하여 결정된다고 말할 것이다.



즉, D라는 사건은 C가 있었기에 발생했고, C는 B로 인해, 그리고 B는 A로 인해 발생한 것. 모든 사건은 그 전 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사실 B라는 사건이 A뿐만 아니라 E랑 F라는 추가적인 요소로 인해 발생하였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밥을 먹고 나서 양치를 하러 갔는데, 굳이 밥을 먹었기 때문에 양치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전날 치과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분명 매일 아침에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에 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건 그렇다 쳐도, 최초의 A라는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그것의 근원은?



사실 "현실"이라고 하는 이야기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모든 일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무한한 변수와 요소로 인해 결정이 된다. 그때의 기분, 마음속 숨겨진 의도, 당시의 상황, 환경, 날씨, 혹은 필연적인 운명도 포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문학가들은 이 세상을 관리하는 어떠한 미지의 힘, 즉 '운명'적인 힘에 의해 만사가 결정된다고 믿었고, 계몽주의 문학가들은 현실주의에 의존하여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타당한 선에서 사건의 흐름을 최대한 설명하려고 했다.



이처럼 거미줄처럼 무한히 퍼져나가는 변수를 무슨 수로 다 계산하고 파악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야기를 서술할 때 이 모든 변수를 다 담는다면 아마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사건들만 집어서 선형적인 틀을 그려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기승전결은 우리가 집중해야 할 신호이고, 그 외에 모든 변수와 배경과 디테일과 알 수 없는 무한한 요소들은 굳이 서술에 담을 필요가 없는 잡음인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트리스트람 섄디라는 소설은 이 신호와 잡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비선형적인(non-linear) 서술을 구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한 변수를 타고 마음대로 진행이 되는 서술을 섄디화(shandification)된 이야기라고 한다.


게임 스토리와 섄디화


게임 스토리텔링은 사실 그 어느 매체보다 비선형적이고 섄디화된 서술을 구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게이머는 광활한 오픈 월드에서 직접 게임의 스토리를 개인의 페이스대로, 개인의 취향대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개발자가 지정해준 A부터 D라는 기승전결을 따라가지 않고, 게이머가 게임 속 다양한 요소를 탐험하며 스스로 능동적으로 스토리를 찾아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섄디화된 서술을 구사할 수 있는 매체라고 하여 그것을 따르라는 법은 없다. 스토리텔링이 엇나갈 리스크도 있거니와, 사실 무수히 많은 변수를 담아낼 수 있을 정도의 광활한 게임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게임은 전통적인 구조의 서술을 구사했고, 최근 들어서야 섄디화된 서술로 실험을 하는 게임들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런 섄디화된 서술이 좋은 스토리텔링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여기서 두 개의 게임을 예로 들어보겠다.



<폴아웃 3>와 <폴아웃: 뉴 베가스>는 둘 다 엄청난 자유도를 자랑하지만 서술적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벌어진다.


폴아웃 3는 오픈 월드 게임의 틀 속에서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내용의 나름대로 체계적인 A->B->C->D의 선형적 서술을 구사하고 있다. 아버지의 행방을 둘러싼 서술적 구조 위에 게임이 만들어졌으며, 플레이어는 이러한 선형적 방향을 타고 (아무리 자유롭거나 아무리 사이드 퀘스트가 많다고 해도) 결국에는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어있다. 위에서 언급한 '잡음'은 최소화하고, '신호'에 집중을 하였다.


반면 폴아웃: 뉴 베가스는 게이머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속칭 섄디화된 비선형적 서술을 구사했다. NCR의 이야기, 시저의 이야기, Mr. House의 이야기 등 여러 가지 방향으로 게임을 마음대로 진행할 수가 있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만큼 뉴 베가스의 세계가 광범위하며, 폴아웃 3와는 다르게 최대한 많은 '잡음'을 세계 곳곳에 흩뿌린 채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이머는 '잡음'과 '신호'가 뒤섞인 방대한 게임 세계에서 굉장한 능동적 자유를 누리며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과연 이 두 가지 서술적 구조 중에서 어떤 게임이 더욱 효과적인 스토리텔링 경험을 선사했을까? 두 게임 모두 많은 호평을 받은 성공적인 게임이었다. 폴아웃 3의 선형적인 스토리텔링이 더욱 직관적이며 하나의 잘 설계된 드라마를 전달할 수 있어서 크게 와 닿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뉴 베가스의 비선형적 서술은 혼잡했고 드라마성이 부족하여 밋밋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뉴 베가스의 세심한 디테일과 광활한 세계관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폴아웃 3의 세계관이 비교적 한정적이고 서술적 폭이 좁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구조가 더욱 효과적이었는지 분간하는 접근보다는 각 서술적 구조가 갖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여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게임이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게임이 갖고 있는 섄디화의 가능성, 즉 게이머들이 능동적으로 스스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나가는 자율성을 극대화하며, 그렇게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이 선형적 서술의 감동이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조화는 게임만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미개척지인 셈이다.


폴아웃 3에서 아버지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이유도 선형적인 틀 속에서 드라마성을 강조했기 때문


능동적인 공명을 일으키는 스토리텔링을 추구하며


게임이라는 매체는 게이머와 게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능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경험이다. 다시 말해서, 확실한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이 발생하는 매체이다. 게이머가 조종하는 마리오가 물음표 상자를 머리로 깨부수면 동전이나 버섯이 바로 튀어나오듯이, 게임 스토리도 게이머가 직접 주인공의 시점에서 산전수전을 거쳐가야지만 주어지는 경험이다.


이러한 능동적인 구조를 기본적으로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게임들은 이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대신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가벼운 '선택지'를 여러 개 주면서 게임 스토리에 능동성의 가면을 씌우는 데만 그친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는 겉만 번지르르한 착시현상일 뿐이다.


게임이 가진 능동성을 맘껏 표현할 수 있는 광활한 환경 속에서 전통적인 선형적 서술이 가진 호소력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능동적인 공명을 자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스토리, 즉, 이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내가 직접 찾아낸 이야기가 뒤죽박죽 된 엉터리 서술이 아닌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수 있다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스토리텔링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역은 아직까지 미개척지겠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게임을 하며 그 가능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이 글은 MrBtongue님의 "폴아웃의 섄디화 (TUN: The Shandification of Fallout)"라는 동영상을 인용하고 부분적으로 번역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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