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0 지연과 후회 속 마르세유행
어디라도 가야 했다. 번아웃이 오려는 느낌이 들어 스카이스캐너를 띄우고 어디든지 옵션으로 항공권을 검색했다.
???
50만 원대에 프랑스가? 일정을 잘 조정하니 진짜로 내가 갈 수 있는 기간에 56만 원에 마르세유행 비행기표가 검색됐다. 그래서 덜컥 결제해 버렸다. 축구 일정을 먼저 확인했어야 했다. 내가 돌아오고 난 후 그 주 주말에 PSG가 니스로 원정을 온다니! 취소하고 다시 결제를 하려면 20만 원 넘는 차액이 발생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빅경기라서 수수료를 감당하겠지만 비행기값이 싸서 결정한 여행인데 원래 가격에 반이 더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 이대로 가기로 했다.
남프랑스는 정보도 많이 없거니와 이제는 큰 계획 없이 다니는 여행의 맛을 알아버려서 준비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축구경기는 꼭 봐야 했다. 리그1 OGC니스와 AS모나코의 홈경기를 하나씩 예매하고, OGC니스와 레알소시에다드의 유로파 경기까지 예매했다. 그 외엔 10여 년 전쯤에 사둔 프랑스 가이드북에서 관광지를 찾아 구글맵에 등록하는 정도로만 준비했다. 숙소도 여러 군데 다니지 않고 니스 6박, 마르세유 5박만 예약했다. 그리고 떠났다.
며칠 전부터 14호 태풍이 걸리더니 퇴근하고 제주공항에 가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태풍이 온다던데 영향권에 들었나 보다. 택시를 타는데 폭우가.. 갈 수 있겠지?
한 시간 정도 지연은 됐지만 상하이 푸동공항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예상과 다르게 상하이는 비도 안 온다. 라운지에 들러 좀 쉬다가 시간 맞춰 게이트로 갔지만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 불안하다. 아 지연이다. 한 시간 지연에서 다시 두 시간 지연. 오! 게이트 앞에 줄을 서라는 방송이 들렸다. 아~ 출발이 아니구나. 오래 지연되고 있으니 간식거리라도 나눠준다. 물과 비스킷. 새벽 1시 출발 예정이었는데 결국 아침 8시로 변경되었다. 바뀐 순간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약한 와이파이 신호로 예약해 둔 니스행 플리스버스를 겨우 취소했다. 수수료 30유로 하... 환불금액 10유로 그마저도 바우처로 나오는 거라 플리스버스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이 버스를 못 타면 플리스 버스를 탈 일이 언제 또 있을까? 아! 축구도 한 경기 못 보게 됐다. 예약해 둔 축구가 일정이 변경되는 바람에 숙소 변경하는데 수수료 50달러 냈는데! 손해금액 약 15만 원.. 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항공권 취소 수수료 내고 PSG 경기 보는 일정으로 했지 ㅠ
자리도 불편하거니 잠도 안 와 책을 보고 있는데 또다시 웅성웅성. 항공사 직원이 뭔가 QR코드를 붙여준다. 직어보니 중국어로 된 사이트. 중국인에게 물어보니 대충 위챗으로 연결하면 알리페이 머니를 충전해 주는 모양이다. 읭? 난 그거 없는데! 한국어가 들려 봤는데 그분은 뭐라도 해보려는 모양이다. 다시 자포자기하고 책을 보는데 웅성웅성하더니 유럽인들이 다른 게이트에 줄을 선다. 멀리서 봤는데 현금을 주는듯하다. 아까 그 한국분에게 가서 저기 줄 한번 서볼까요? 제안해 봤다. 처음 보는 분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에 약간 힘이 됐다. 어? 진짜로 지연 보상금을 현금으로 준다. 중국돈이긴 하지만 800위안. 한화로 약 15만 원. 여행일정 중 첫날은 날리게 됐지만 그래도 그동안 손해 본 금액이 내 손에 다시 들어왔다. 어?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장사네? 중국동방항공이 지연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고 악명이 높다던데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대처가 아닌가? 지연도 기체결함이나 항공사 문제가 아니고 태풍 때문이니~
아침 6시 라운지 오픈시각에 맞춰 다시 입장해 배도 채우고, 샤워도 다시 했다. 항공 스케줄 제일 윗줄에 내가 탈 비행기가 아침 8시로 지연을 알리고 있었고, 그다음줄에 제주행 비행기가 더 일찍 출발하는 일정이 있어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 맞춰서 게이트에 갔으나 약간 더 지연됐다. 항공기 탑승할 때까지 지연보상금 받았는지 일일이 확인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진짜 대처 잘하는 편 같은데? 남들이야 어떻든 나에게 중국동방항공은 꽤나 괜찮은 항공사로 각인되는 순간이다. 옆자리는 비나 싶더니 마지막에 덩치 큰 사람이 탔다. 지연까지 된 장거리 비행에 크게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다행인 건 그분도 본인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알고 있는 눈치라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했고, 긴 비행 내내 지라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행기는 10시나 돼서야 출발했다.
12시간이 걸려 마르세유에 공항에 도착하고 입국심사에서는 서류작성 없이 쉽게 받을 수 있는 스탬프를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드디어 받을 수 있었다. 도착하고 바로 탈 수 있을 줄 알았던 니스행 오후 출발 플릭스 버스도 간발의 차로 놓치고 마르세유역에 가는 버스표를 구매했다. 카드 찍고 타려 했는데 왕복으로 끊으면 더 싸다기에 16유로로 구매했다. 가면서 마르세유역에서 니스공항으로 가는 플릭스버스를 바우처 써서 얘매했다. 바우처를 이렇게 바로 쓰게 되다니!
니스공항행 버스도 시간이 빠듯할 거 같았는데 버스가 잘 간다. 그래서 예매했는데 예매하자마자 밀리기 시작한다. 아 이번 일정 정말 사람 피말리네. 그래도 한 구간 지나니 버스전용도로 타서 시간에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안 온다. 너무 안 온다. 그렇게 조마조마했던 게 무색하게 버스는 한 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차 탔지. 지연과 후회의 연속이다.
밤 10시 20분 니스공항 도착. 시내행 트램을 타는데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신용카드로는 탑승이 안된다. 그렇게 한대 보내고 티켓 사려니 1회에 10유로다. 왜 이렇게 비싸지? 공항 인포에 물어보니 공항이라 그렇다고 한다. 다음 트램이 20분 후인데 다음 트램역이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그래서 걸어갔다. 여기도 공항행은 10유로인데 2.50유로짜리 1회권이 있다. 어? 내가 아까는 발견을 못 한걸수도 있겠지 싶었다. 트램 타고 10여 분가서 다시 걸어서 10여분. 드디어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이동하면서 호스트와 중간중간 연락을 했는데 그 시간에 없을 거라 해서 문에 달려있는 번호식 보관함을 열고 키를 꺼내 드디어 도착했다. 제주에서부터 숙소까지 오는데 거의 1.5일이 걸린 것 같다. 씻고 정리 좀 하는데 누군가 또 들어온다. 엇? 호스트가 오늘 없을 거랬는데 다른 게스트인가? 인사를 하더니 내게 누구냐고 묻는다. 아 진짜 다른 게스트인가 보다 하고 나는 게스트라고 했더니 뭔가 응? 하는 느낌이라 넌 누구냐 하니 세르반이라고 한다. 아 호스트구나! 다시 내 이름을 얘기하고 오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아 진짜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