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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액션가면 Oct 25. 2024

무계획 르미디 7 - 엑상프로방스

2024.09.27 세잔과 물의 도시 엑상프로방스

일주일 넘는 여행을 할 땐 꽤나 길게 느껴져 여유가 있는데 번도 안 남은 시점이 되면 급격하게 시간이 별로 안 남은 느낌이 든다. 어젯밤에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4일밖에 안 남았구나! 

그러니 오늘은 좀 더 힘을 내보기로 했다. 아침은 어제 사 왔던 걸로 차려먹고 엑상프로방스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신용카드로도 버스탑승이 가능하다고 나왔지만 체크카드 형태라 그런지 단말기에서 거부돼서 표를 구매했다. 타면서 보니 나뿐 아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부되는 걸 보면 프랑스 신용카드만 되나 싶기도 하다.


엑상프로방스로

예약해 둔 투어가 11시인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쇼핑몰을 구경했다. 보조배터리를 팔기에 살까 고민도 했지만 가격이 싸지 않기도 하고 집에 남아도는 보조배터리가 생각나서 자제했다. 동네 구경 좀 하고 투어장소로 갔는데 가이드가 안 와서 확인해 보니 오후 1시 반으로 연기됐네? 사이트 자체 기능으로 메시지가 와있었는데 앱이 아니라서 알림이 안와 확인을 미처 못 했다. 그래서 오전은 박물관 먼저 보기로 했다.

그라넷박물관을 가볍게 볼까 했는데 생각보다 알차다. 세잔 미술관이지만 아쉽게도 세잔의 작품은 10개 정도밖에 없고, 엑상프로방스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장 다레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미술무지렁이인 내가 미술관을 보는 방식은 이렇다. 일단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몰라도 좀 더 세밀하게 뜯어보고, 모르는 작품은 훑어보듯이 보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으면 약간 그림멍을 한다. 그중 주피터와 테티스라는 작품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몇 번을 다시 봤다.

어제 베이글집에서 키오스크의 맛을 보고 주문과 계산에 하염없이 기다리는 걸 더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키오스크 있는 매장을 찾아 버거집에 들어갔다. 매운 버거가 있기에 매운 버거와 프랑스의 Jade 맥주를 주문하고, 번호표를 챙겨 외부 테이블은 마땅치 않아 내부 창가자리에 앉았다. 기다리는데 웨이터가 맥주병과 버거가 있는 트레이를 들고 밖에서 서빙 대상을 찾고 있다. 내 꺼이지 싶어 창문에서 손을 흔들며 번호표를 보여주니 알아보고 가져다줬다. 맵다는 버거는 역시나 한국인에게는 택도 없다. 어제 먹은 간편 해장국 수준이다.


알찬 투어

오늘의 가이드는 미국계 프랑스인이고, 목소리가 작고 낮았지만 말투가 차분해 반 이상 알아들었다. 투어는 미하보 광장의 세잔 동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엑상프로방스는 물의 도시 또는 천 개의 분수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그 이름에 걸맞게 분수가 220개나 있고 공공장소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분수가 100여 개 정도 있다고 한다.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처럼 이 동네도 대로를 기준으로 부자, 가난한 동네가 나눠졌었단다.

세잔이 다니던 학교 콜레주 미케(콜레주 미네, 미녜중학교로 불리지만 엑상프로방스 지역에선 미케에 가깝게 발음된다.)도 가봤는데 당시 세잔이 다니던 길에 세잔 판을 박아놨다. 이 학교에 다닐 때 베프는 에밀졸라였는데 에밀졸라는 아주 똑똑했지만 말도 더듬어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애들한테 괴롭힘 당하는걸 세잔이 보호해 줬고, 감사의 표시로 사과를 선물했는데 그렇게 사과작품이 탄생했고, 이후에도 세잔의 작품에는 사과가 많이 등장한다.

엑상프로방스는 알랭드롱의 고향이기도 한데 유명해진 후 고향방문 때 있던 건물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몰래 다녔던 뒷문, 파리의 길거리 예술가 스페이스인베이더가 엑상프로방스에 붙여놓은 작품, 전쟁당시 방공호였다는 표시, 집에 들어갈 때 신발 진흙터는 용도의 구조물 등 별 TMI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성당을 방문했는데 오랜 역사를 보여주듯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네오클래식 양식이 섞여있다.


생각지 못한 맛집

투어 중 줄이 길게 선 마들렌 맛집이 있었는데 가이드도 줄을 설 정도로 괜찮다는 곳이라 나도 줄을 섰다. 줄이 긴 듯 보였지만 봉투나 박스에 담아 바로 팔기에 5분 정도밖에 줄을 안 섰고, 6개에 3.70유로라 오렌지, 초코, 기본 두 개씩 주문했다. 그렇게 맛본 마들렌은 아 맛있는 거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 느꼈다. 향이 기분 좋게 나서 오렌지맛이 제일 맛있었고, 겉이 약간 바삭한 게 식감도 좋다. 먹는데 줄 서있는 아까 같이 투어 했던 사람을 마주쳐서 눈인사하며 월씻하고 따봉날라고 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갔다. 콘으로 한 스쿱 주문하고 한국에서 왔다니 감사합니다 인사해 준다. 한국드라마 많이 본다고 하며 오징어게임 알고 있기에 가방에 있던 달고나 아몬드 하나 꺼내줬다. 서비스로 작은 스쿱 하나 얹어주셨다

그라넷박물관 표를 끊으면 세잔섹션과 피카소섹션 두 개를 볼 수 있는데 오전에 본 게 세잔섹션이라 나머지도 보러 갔다. 그냥 덤 느낌이었는데 시작부터 고흐, 모네가 반겨주고 작품수도 꽤 많다. 앙티브의 피카소는 좀 어두웠는데 여기는 화려해서 볼만하다. 작품명을 번역기 돌려보는데 주제가 비슷하기도 해서 짧은 단어 몇 개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 언어 천잰가?(그럴 리가 없지)

암스테르담에서 갔던 파이브가이즈는 내 기억에 감자튀김 말고는 그리 인상에 남지 않는데 서울에서 왜들 그리 핫한지 눈에 보여서 들어가 봤다. 진작에 발견했으면 아까 점심때 왔을 것을. 배가 안 고파 리틀버거랑 쁘띠 감자튀김을 시켰는데도 양이 많다. 역시 기억대로 버거는 그냥 그렇고 밀크셰이크에 찍어먹는 감자튀김이 최고다.

숙소 근처 돌아오는 길에 까르프시티가 있어 들렀는데 규모가 작지 않다. 일단 카야킹에 가져갈 물을 1리터만 사고 나왔다. 간단한 거 뭐 살 거 있으면 여기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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