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세계
만 3살이 된 아이는 요즘 부쩍 말이 많아졌다. 궁금한 것도 많고 왜?라는 질문은 대답의 꼬리를 물고 몇 번이고 반복되어 무한루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이와 말이 되는 듯, 안 되는 듯한 소통은 재밌고 사랑스러운 순간, 엉뚱하고 기발한 순간들이 펼쳐져 내 하루의 엔도르핀이 되어 몇 날 동안 곱씹으며 피식 웃게 되는 작은 선물꾸러미들이다.
며칠 전 아이를 따뜻한 샤워를 시키고 침대에 누워 동화책 몇 권을 읽어주니 벌써 잘 시간이 되었다. 자기 전에 내 핸드폰으로 아이에게 사진들을 보여주니 아이는 핸드폰 속 엄마, 아빠와 자기 사진 구경에 흠뻑 빠진다.
사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대학생 때 일본에 살던 내 사진이 나왔다. 아이도 조금은 변했지만 그 사진을 보고 바로 엄마인지 알아봐 주니 기특하고 스스로 아직 많이 늙지 않았구나 하며 내심 안도하게 된다. 아이는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나는 어디에 있어? 엄마 뱃속에 있었어?”
“아니. 그때는 규민이는 뱃속에 없었지.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야.”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얼굴이 어두워진다. 마치 자기 없이 이 세상에 엄마 혼자 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표정이다.
“엄마, 나는 뱃속에도 없으면 어디에 있어?”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아들이 생겼어. 엄마, 아빠가 만나기 전에는 아들이 없었지.”
뭔가 큰 공포심을 느끼는 듯한 아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다. ‘나도 없고 엄마랑 아빠도 함께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니 어디 비참하고 절망적인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눈동자가 커지며 갈길을 잃는다. 그래서 내가 달래듯 말했다.
“아들이 엄마 뱃속에 있기 전에는 엄마 마음속에 있었지.”
“그럼 여기에 내가 있는 거네!?”
아이가 사진 속 내 가슴 부분을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묻는다.
“응. 여기 엄마 마음속에 있었지.”
“그럼 나는 가슴에 있다가 배로 내려왔다가 태어나는 거네! 히히히”
아이는 나의 설명을 통해 어딘가 존재했다는 안도감을 느꼈고 설득이 되어서 다시 행복해했다.
아이는 자기가 존재하지 않는 엄마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랑하지 않았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조금은 귀여운 설명을 덧붙여 나와 항상 함께 하고 있었다 안심시켰다.
그 후로도 아이는 사진을 볼 때면 묻는다.
“엄마! 이때는 나 마음에 있었어, 뱃속에 있었어?”
아이는 마음, 배, 그리고 이 바깥세상이라고 하는 3가지 세상 속의 항상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