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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관우자앙비 Mar 29. 2024

40살이 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아직 어리고 젊은것 같은 나에게

이제 삶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도 건방지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이 생각 자체가 건방질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나이 정도로 해석하면 좋겠다. 몸뚱이는 예전 같지 않고, 생각은 다채롭지 않다. 현실과 이상은 더 이상 타협하지 않는다. 현실을 사는 것에서 만족을 찾고, 이상과 현실이 진짜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주변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꽤나 충격적이다. 남의 아이는 빨리 크고, 남의 군생활은 빠르다는데, 이제 모든 시간이 빠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언 15년이 지났다. 20대의 사회 초년 생이던, 당연히 실수할 수 있던 나이도 지난 지 오래다.


세상은 나에게 이제 프로의 모습을 원한다. 개인 레벨에서, 회사 레벨에서, 또 사회 레벨에서 능숙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만을 기대한다. 그 모습이 없다면 이제 나의 가치는 사라진다. 아직도 나는 어렸던 그 시절의 상처를 잘 받고 숨기 좋아했던 사람인 것 같은데도, 나 역시 타인이 원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한다. 내 나약한 모습은 이제 나도 밖으로 쉽사리 꺼내기 어렵고, 나에게서 조차 잊혀져 가고 있다. 40살, 아직 30대의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적 전성기를 맞이해야 하는 시점에 새로 키보드를 장만한 김에 그냥 글을 써 본다.


나는 100명이 넘는 IT 회사의 임원이며, 회사에 두 개 밖에 없는 사업 조직 중 하나를 총괄하고 있다. 본부장이라는 타이틀은 33살부터 달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 본부장이 너라며, 낄낄대던 친구의 소주잔에 빠진 고춧가루를 기억한다. 회사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한 번 올라간 지위는 내려가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 그렇기도 했다. 사회생활이란 나의 능력을 금전과 등가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 자신이 있었다. 자신감. 내 30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했다.


어느덧 내가 이야기를 하면 귀 기울여 듣고, 필기를 하며, 그 지시 사항을 이행하려 하는 사람들도 12명이다. 가정을 꾸린 사람도 있어, 내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의 총원은 20명이 넘을 것이다.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평생직장은 없는 이 시기에 좋은 처우를 찾아 떠나는 사람이 부지기수 이겠지만, 나와의 사회적 인연이 이어지는 동안만큼은 나의 책임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자녀의 학비, 그들이 금요일 밤에 시켜 먹는 치킨 두 마리, 아침에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까지도. 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이 조직에 있는 이유가 바로서고, 나의 지위가 보장되며, 또한 사내에서 나의 발언권이 강해지기도 하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LLM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AI가 사람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40이 되니, 당연하게 느껴지던 임원이라는 자리가 무겁게 다가온다. 단순히 책임감뿐만이 아니다.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시각각 찾아온다. 이런 고민은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문제다. 이 팀과 저 팀의 관계, 새로 온 나이 많은 팀장의 꼰대스러움, 본인의 일만 똑소리 나게 잘하는 사람들. 성과에 비해 저평가받는 사람, 별거 없는데 엄청나게 추앙되는 사람. 이 사람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을지. 내가 빠진 술자리에서 나온 나에 대한 이야기, 그 자리에서 오갔던 타 팀에 대한 불만, 특정 개인에 대한 각기 다른 평가와 감정의 골.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숙제이지만, 정답이 없다.


40이 되는 순간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인체의 장기는 만 40세가 되면 급격히 성능이 하락하는 것이 분명하다. 운동을 조금만 하면 맛있는 자극이 오는 것은 뭔가 부상 같지만 사실 하락한 신체 능력을 의미한다. 약해지는 몸뚱이에 예전과 다른 강도의 고민이 중첩되니 해답을 찾기 이전에 숨어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니, 사실 이제 해답을 알지만 그 길을 가기가 어떤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장면을 목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신기한 것은 막상 그 장면을 만들어내고 나면 타격도 별로 없다. Fear Management라 해야 하려나, 이제 두려움은 핑계가 되지 않는 인생의 시기를 살고 있다. 사실 두려움은 애초부터 핑계가 될 수 없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두려움은 그것을 외면하는 좋은 핑계일 뿐이었다. 말은 쉽다.


지금 이 글은 잘 쓰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막 쓰고 있다. 곧 4월 1일 만우절이 될 테다. 2분기의 시작은 항상 그렇게 거짓말 같았다. 거짓말 같은 환희가 찾아오기도, 거짓말이어야 했던 좌절이 찾아오기도 했다. 늘상 그렇듯 신년을 시작하고 1년 농사를 준비하는 1분기가 지나면, 2분기부터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개소리를 언제까지 써야 할지 모르겠다. 브런치에 간만에 글이나 하나 올리려고 계획 없이 새로 산 기계식 키보드 타건음에 취해있다 보니 벌써 꽤 글이 길어졌다. 주제 없고, 구성없고, 그냥 대충 일기처럼 간만에 취한 것처럼 써봤다. 아, 술을 안 마신 지 이제 3년이 되어간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12시가 넘었으니,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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