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까자까 Sep 25. 2023

룸서비스를 시켜놓고 그러면 안 되죠.


호텔에서 일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특히 호주 멜버른의 개인 호텔은 더욱 스펙터클 했다. 오늘은 잊을 수 없었던 그날의 충격을 담아 보려고 한다.


그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우스키퍼들은 손님이 떠난 호텔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2층 객실 담담이었던 메리는 203호 룸 청소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하얗고 깨끗한 침대 시트를 군인도 울고 갈만한 각 잡힌 마무리로 203호를 마쳤다. 30분에 보통 객실 하나를 끝내는데, 그날은 유독 객실들이 지저분해서 청소를 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서둘러 룸 하나를 마무리한 메리는 하우스키퍼 리스트를 체크하며 다음 룸으로 나가려던 찰나, 작고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얼핏 듣기엔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아기 울음소리 같기도 한..


"...... 냐아아~~ 흐엉 에에~~"


소리가 들리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메리는 2층 복도 맨 끝방 앞에 다가갔다. 소리의 근원이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문 너머 점점 더 크게 들렸고, 메리는 노크를 했다.


'혹시 안에 애기만 있나? 엄마가 잠깐 샤워 중인가? 부재중인가?'

"똑똑똑~ 하우스키핑~~"


몇 번의 노크를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점점 커지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걱정이 된 메리는 하우스키퍼용 마스터 키를 갖다 대었고 손잡이를 돌렸다. 침대 가까이로 다가가자마자 그녀는 울고 있는 아기 옆에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한동안 호텔 안은 떠들썩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30대 메리는 너무 큰 충격을 목격하곤 호텔을 그만두었다.

삶을 비관한 젊은 애기엄마는 아이를 버려둔 채 그렇게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뒤론 호텔 2층에선 가끔 귀신이 출몰한다는 그런 무서운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래서 항상 2층으로 룸서비스를 갈 때면 잔뜩 긴장을 해야만 했다.


특히 복도 끝 방은 정말이지 귀신의 집에 들어가기 직전의 그 공포감이 몰려왔다. 차리리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혔다.


RMIT 파운데이션에도 합격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룸서비스 오더가 들어왔다. 조식 타임에선 룸서비스 배달을 레스토랑 직원들이 직접 했는데 슈퍼바이저는 꼭 나에게 이 일을 시켰다.


룸서비스는 굉장히 번거롭다.

일단 음식을 트롤리에 싣고 끌고 가거나, 큰 트레이에 담아서 들고 가야 하는데 아무리 가벼운 음식이라도 1층에서 3층까지 걸어 올라가다 보면 팔이며 다리며 후들거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웬만하면 가벼워도 트롤리에 올려서 끌고 갔다.


문제는 카펫에 밀려 잘 끌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부드럽게 룸서비스 트롤리가 끌리진 않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얼래고 달래면서 밀고 가야지 손님의 호텔방문 앞에 힘들게 도착할 수 있었다.


룸 서비스에서 제일 번거로운 건 다시 수거를 하러 가야 한다는 점이다.  수거를 하러 갔는데 얼음이 잔뜩 녹은 아이스버킷 여러 개와 술병들과 와인잔이 나 뒹굴면 치우는 것도 여간 번잡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생크림 케이크에 범벅이 된 지저분한 경우는 더더욱. 간혹 아이스버킷 옆에 5불짜리 팁이 있기도 해서 고 부분만 쏠쏠했다.


룸서비스 안내는 평범하다.

노크를 하면 룸에서 손님이 나와 문을 열어주고,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고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하고 나가면 끝나는 것이다. 가끔 손님이 샤워 중이거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땐 참으로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 적도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룸서비스시켜 놓고, 어딜 가는 거야???


때로는 문 앞에 두고 가라는 분도 계시고, 문이 열려있으면 룸에 넣어 두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방해하지 말라는 푯말을 걸어 두신 분도 계신다. 룸서비스를 시켜놓고, 방해하지 말라니... 이건 노크를 해야 해? 말아?


그날은 에그베네딕트와 팬케익을 룸서비스로 시킨 분이셨다. 손님의 정보는 정확히 알 수가 없어 그냥 2명이구나 싶었다. 트롤리에 따끈한 블랙퍼스트와 오렌지 주스 2잔을 싣고 2층으로 향했다. 진회색 복도 카펫을 따라 밀리지 않는 까만 2층짜리 트롤리를 열심히 밀어 드디어 도착한 207호.


나는 아직도 그날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똑똑 룸 서비스~"

(무응답)

"똑똑똑~ 룸 서비스~~"

(또 무응답, 원칙적으로 세 번 노크를 해야 한다)

"똑똑똑~ 룸 서비이이스으~~~~~~"


하아.. 또 어딜 간 거란 말인가..?

매뉴얼대로 3번의 노티스 후 문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열렸고 고개를 빼꼼 넣은 후 최후통첩을 알렸다.

"똑똑똑 룸 서비스~~"

(여전히 무응답)


룸은 불이 꺼져 있어서 깜깜했고, 밝은 복도에 익숙해졌던 나의 동공은 어두운 룸 속에선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룸 복도를 지나 모퉁이를 지나는 순간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소리인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았고, 나는 걷던 걸음을 잠깐 멈추었다. 내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아주 희미했는데 귀신인가 싶어 순간 소름이 돋았다. 투숙객 중에 갓난아기를 옆에 둔 채 젊은 애기 엄마가 자살한 사건이 퍼뜩 기억이 났다. 더욱 무서워진 나는 일단 룸서비스 트레이를 방안 테이블에 얼른 두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용기 내에 한 발짝 더 내디뎠다.


그때였다. 남녀의 교성을 생 라이브로 들은 것은.

어둠 속에 조금은 익숙해진 나의 동공은 침대와 테이블이 보였고 더 다가가려는 찰나 나는 봐 버린 것이다. 지 독한 커플의 애정 행각을. 귀신이라도 본 듯 내 몸은 "어?" 하며 순간 2초간 얼어 버렸고, 후딱 등을 돌렸다. 그대로 나갈 뻔했지만 순간 판단으로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재빠르게 룸서비스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두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분명 눈이 마주쳤다. 썩을 놈과. 둘은 침대에 앉아서 나체로 레슬링을 나누고 있었다. 어두워서 정확하게 보진 못했지만 매끈한 두 실루엣을 얼핏 보았다. 그들은 룸서비스를 들고 온 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니 더 보란 듯이 그들만의 레슬링에 집중했다. 변태인가? 룸서비스를 시켜놓고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일부러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관음증 뭐 그런 거? 그렇지 않고서야 노크를 그렇게 했을 때는 분명 조용했는데, 내가 들어가자마자 그렇게 거친 숨소리를 내다니.  분명 노린 것이 틀림없었다.


심장이 폴짝폴짝 뛰었다.

영화에서도 아니고, 실제로 생 라이브로 남녀가 레슬링을 하는 장면을 쌩눈으로 목격을 하다니. 귀신보다 더한 것들이었다. 그들의 잔상은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다음날 호텔 레스토랑으로 조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의 리스트를 확인했다. 있었다. 207호. 나는 그들의 얼굴이 무척 궁금했다.


'어? 손님 온다! 아... 한 명이네.'

'어? 커플 온다! 저들인가? 아... 303호네.'


"웰컴~ 몇 호신가요?"

"207호요"

너희구나?!


아주 평범한 커플이었다. 길 가다 지나치면 돌아보지 않을 만큼 매우 평범한 얼굴과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뜨겁고 남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커플은 다정하게 아침을 챙겨 먹었다. 하하 호호 웃으며. 그들은 나를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아니 모른 척하는 걸까??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호주 커플은 내 평생 최초의 원초적 경험을 안겨준 위인들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내가 일했던 로이스 호텔 │Royce Hotel   375-385 St Kilda Rd, Melbourne VIC 3004, Austral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