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번갯불에 콩 볶듯이, 겨우 집 세 군데를 보고 바로 계약을 했다. 모아둔 돈도 얼마 없었고,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당장 나와 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20대에 불안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 20대 후반은 20대 초반만큼이나 세차게 흔들렸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20살의 서투름과 방황은, 서른을 앞둔 지금 또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내 두 발로 단단히 서 있지 못한 것은 20살 때와 다르지 않았다.
보수적인 우리 집에서 나의 독립 선언은 온 집안의 통곡을 불러왔다. 엄마는 내가 나가면 어떻게 살겠냐며 울었고, 아빠는 결혼하면 평생 떨어져 살 텐데 왜 벌써 그러냐며 호통을 쳤다. 돌이켜 보면, 나의 독립은 부모님에게도 큰 변화였다. 아빠와 엄마의 나이 차가 띠동갑을 넘은 만큼, 가치관의 차이도 컸다. 그런 만큼 다투는 일도 많았고, 다툼이 잦아질수록 두분 사이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그 사이, 두 살 터울인 언니와 내가 있었다. 언니와 나는 부모님에게 헤어지지 않는 이유이자, 적막한 집안의 공기를 채우는 역할을 했다. 특히 나는 고3 때까지 엄마와 방을 같이 쓰고 잠도 함께 잤기 때문에, 엄마는 나에게 유독 의존했다.
이사 가기 전까지의 날들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나가야 한다는 이유를 꺾지 않고 고수할 수 있었던 건 ‘결혼’이었다. 당시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그를 핑계 삼아 독립을 밀어붙였다. "결혼 전에 한 번쯤은 혼자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속된 말로 이미 머리가 컸을만큼 컸는데, 나 혼자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가족에 속해있다 또 가족을 만드는 것은 정말 싫다며 엄마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남자친구를 핑계로 내세웠지만, 사실 나는 혼자서는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고, 부모님 사이에서 눈칫밥을 먹는 환경을 견딜 수 없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의 독립이 시작됐다. 도망치듯 급하게 시작됐지만, 이상하게도 자신감은 있었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꿈꾸던 무언가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먹고 싶지 않을 때,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강제로 먹지 않아도 되고, 듣기 싫은 티비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해낸 듯한 기분이었다.
호기롭게 집을 떠나는 망토리
나의 첫 집은 문을 열면 침대와 싱크대가 한눈에 보이는,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집 구경이 끝나는 작은 공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몸 하나 누일 곳이면 어디든 뛰쳐나오고 싶었던 그 조급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오늘의 집, 쿠팡 앱을 수시로 확인하며 살림살이를 채워 나갔다.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이면 돈이 없어도 주문하고, 집에 쌓아두었다. 내게 필요한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숨이 자꾸 나왔다. 독립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던 그 순진한 생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오랫동안 독립을 꿈꿨기에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명확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독립 자체에만 에너지를 쏟았을 뿐,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생활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취향이 뚜렷하다고 여겼지만, 나의 집은 부모님 집과 닮아 있었고, 내가 싫어했던 것들까지 그대로 묻어 있었다. 물리적 독립은 이루었지만, 정신적 독립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정신적 독립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던 중, 나의 방과 그 안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방이, 이 물건들이 내 정신과 내면의 일부분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어수선한 방을 보며 서둘러 청소했지만, 조금 정리가 되었을 뿐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6개월도 채 살지 않고, 생활 공간이 분리된 곳으로 이사했다. 빨리 나와 살겠다는 생각만 했지,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하지 않았던 대가였다.이사를 하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지금까지의 살던 방식과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은 부모님과 함께한 것이었기에, 혼자 살아온 경험의 데이터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기준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를 잠시 뒤로 두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야 했다. 먹는 것, 자는 것, 사는 모든 것에 나름의 컨셉을 잡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기도 하고, 올빼미처럼 생활해보기도 했으며, 모든 걸 유기농으로 먹어 보기도 했다. 때로는 내 수입보다 럭셔리하게 살아보기도 했고, 적은 예산으로 1,500원짜리 커피를 살까 말까 한참 고민해보기도 했다. 무엇이 좋고 싫은지 결론을 내리기 전에,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고 싶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재밌고 의미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명확하게 드러난 부분도 있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도 발견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생활 방식을 경험하며 나에게 맞는 삶의 리듬과 소비에 대한 관점도 생겼다. 올빼미처럼 사는 것은 나와 전혀 맞지 않았고, 다양한 가격대의 물건과 음식을 경험하면서 어떤 것이 내게 가치 있는 소비였는지 알게 됐다.
만약 과거의 나처럼, 부모님이 보여준 선택지 안에서만 살았다면,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사람의 모습이 마치 와장창 깨진 유리조각만큼 다양하다고 믿는다. 그 깨진 조각들은 이미 존재하지만, 내가 그것을 찾아내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조각으로만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내 모습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존재했던 것들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