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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토리 Mar 11. 2024

'나'라는 고정관념

내가 말하는 '나'는 누굴까

편안한 20대, 어색한 조합이다. 역시 불안한 20대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 나의 20대 역시 목적 없이 흔들리는 배와 같았다. 어른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막연하게 무언가 성숙하고,멋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반면, 현실의 나는 소심했고, 어리숙했다. 이런 모습으로 대학에 가기 두려웠다. 어른의 세계에서 아직 나만 고등학생으로 보일 것만 같았다.


한 동네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다. 대부분 아는 친구들이었고, 공부해서 대학 가는 것이 목표였기에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딱히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새로운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를 소개하고 설명해야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어른이 되자마자 겪은 첫 고초였다.

      

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를 멋지게 설명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나를 잘 모르는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사람을 동경했다. 나를 알기에 흘러나오는 확신, 자기 확신이 있는 자의 여유, 마주하는 상대를 압도하는 아우라. 하지만 경험도 없고 나도 나를 잘 몰라, 우물쭈물되기 일쑤였다. 그 모습이 친구들에게 자신감 없고 매력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 됐고, 나는 점점 위축됐다. 내가 참 별로라고 느껴졌다. 나에 대해 모르는 것에 대해 자격지심이 생겼다.

      

그때부터였다. 

일기장엔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기 시작한 게.


나를 잘 알고 싶었기에 나를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해방감을 느꼈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짐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나의 성향과 특징이 정리된 노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노트가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와 같다고 느꼈다.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남들에게 설명까지 하고 나면, 제대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감 있어 보이는 나를 본 일부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까지 받고 나면 우월감까지 들었다. 이런 생각은 나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럼 나도, 남도 모두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선택하는 두려움도 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느낄 필요 없이 그냥 설명서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면 되니까.

      


하지만 나를 정의하는 말들이 늘어갈수록 투명한 박스 안에 갇힌 것 같았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지만,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투명한 박스였다. 성장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가 눈에 보여도, 이 박스는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가두었다. 제대로 살고 있음을 증명해 줬던 나의 정의들이 이제는 발목에 채워진 족쇄와 같았다. 스스로 정의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자책하였고, 남들에게 했던 말과 다르게 행동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사방에 나를 지켜보는 감시자가 있는 것 같았다. 자의식과 자기검열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내가 만든 숙제를 억지로 해치우는 기분이었다. 그저 이 박스의 문을 열고 나오면 됐지만, 밖으로 나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박스가 나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줬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스에 머물 자신도, 떠날 용기도 없었다. 앞뒤가 막힌 도로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더는 못 견디겠다 싶을 때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만든 정의들 앞에 ‘지금은’ 이라는 말을 붙이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의 영화 제목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이라는 이 세글자는 나의 투명 박스에 문을 만들었다. 이 문은 투명 박스 밖에 나와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었다. 불안함 없이 말이다. 마음이 불편하면 언제든 다시 투명박스 안으로 돌아가면 된다. 지금껏 나를 만들어온 이 투명박스를 갑자기 없애거나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오히려 나를 더 돌아보게 했다.

     


그동안 나에 대해 내렸던 정의들을 앞으로도 가져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내게 맞는 것들만 추려 갔다. 이전 경험과 새로운 경험을 되짚어보면서 기존의 정의들도 조금씩 변화하기도 하였다. 딱딱한 얼음이 살얼음이 되고, 물이 되고, 다시 딱딱한 얼음이 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기분이었다. 이 유연한 순환 과정을 겪어가며 나란 사람을 아직도 발견하고,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숙제 같은 하루만 있지 않다. 조금씩 달라진 내가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기도 한다. 이전보다 확실히 사는 것이 재밌어졌다.

     

모두에겐 이래야만 '나'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때론 나를 편하게도 하지만, 때론 나를 조여오는 족쇄가 된다. 이제는 ‘지금은 나는 이런 사람인데 앞으로는 아닐 수도 있어. 뭐 같을 수도 있고! 뭐 어때’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스스로에게 한번 말해보자. 이 별것 아닌 것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이 별것 아닌 것이 더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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